때로는 작은 커피잔 속에 출렁이는 부드러운 거품이 거대한 지구를 상상하게 할 때가 있다. 푸른 바다 앞에 서서 생뚱맞게 깊은 산속의 바위 하나를 떠올릴 때가 있듯이. 무시로 생각나던 곳. 화려하지도 거대하지도 않던 작은 길이 파도를 따라 펼쳐지는 곳. 세상 모든 사람이 당신을 비난한다 해도 내게는 전부인 그대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커다란 섬의 서쪽 끝에서 아직도 열렬하게 나를 끌어당기고 있는 듯하다. 가능하지 않던 모든 상상이 푸른 파도처럼 넘실대던 곳. 섬이었으나 내게 가장 큰 대륙이었고, 잠시 스쳐지나 듯 며칠을 살았을 뿐인데
춤추고 노래하라.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라. 단 하루라도 그렇게 하라. 삶이란 의도적인 행위에 길들여지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지면 너 또한 아름다워 보이리니.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일부러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나. 계절은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내가 부르는 것이어야 한다.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 창문을 열고 바깥의 모든 것을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내 안에 쌓인 것들 또한 바깥으로 보내자. 단절하고 살 수 없는 모든 것들을 봄맞이하자. 춤추고 노래하라. 내가 어찌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서도
그때도 기차를 탔었다. 정체 모를 공허가 점점 깊어지거나 안락한 방안에서도 불안함이 엄습해 올 때면 어김없이 늦은 기차 시간을 알아보고 있었다.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강원도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으로 깊어진다고 믿으며, 늦은 밤 오래도록 거인 같은 산들을 끼고 달렸다. 일단 기차를 타고나면 적당히 분리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나는 세상에서 분리되기 위함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세상을 끌어안기 위해서라고 위로하며 자주 기차 안에서 새벽을 맞이했다. 그 생각이 다시 들었던 것은 반다라 아바스
50년 만에 폭설이라는 뉴스를 들은 것은 비행기를 타기 몇 주 전이었다. 덕분에 홋카이도에 내린 눈은 이미 온몸에 뿌려진 것처럼 실감 나는 소식이었다.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남쪽 지방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어쩌다 눈이 한 번이라도 내리는 겨울이면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을 받는 기분이 들곤 했다. 찔끔거리는 눈이라도 보는 해에는 제대로 된 겨울을 맞았다거나 행운을 맛보는 느낌이 들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내리는 눈은 오로지 영화에서만 가능한 일들인 줄로만 알고 살았다. 더는 사랑을 믿지 않던 나이에는 더욱 그랬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그래도 떠나겠지, 마음은 떠나겠지! 그래도 떠나겠지, 마음이라도 떠나겠지! 중요한 것을 떠나보낸 사람은 걷지 않고서도 늙거나, 걷지 않고서도 깊어진다는 것을 안다. 떠난 사람은 항상 허공에 걸려있어 남은 자를 수시로 끌고 다닌다. 그래서 그대가 떠나 있는 동안 나도 그대 뒤를 끌려다녔다. 그러다가 그대가 돌아오기 전에 먼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떠난다는 것에 홀로는 없다. 그러므로 멀어진다는 것에도 홀로는 없다. 떠나더라도 멀어지더라도 결국 나 아닌 누군가를, 그 무엇인가를 안고 간다는 것이다. 혼자 떠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살아야 한다면 지금처럼. 크게 나쁘지 않다면 지금처럼. 누군들 지금보다 나아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없겠냐만 이대로 조금 춥고 쓸쓸하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12월엔 누구나 이 정도일 거라고 위로하면서 지금처럼. 한 해가 끝나고 있는 거리에 서면 늘 욕심이 앞질러 갔다. 추위에 떨며 움직이지 못하던 거리에서 마음만 먼저 보내고 자책하는 밤. 크리스마스트리도 꺼져버린 밤엔 별빛을 의지하는 안간힘으로 기도를 한다. 부디, 누구의 말도 아닌 누구의 마음도 아닌 나의 말과 나의 마음으로 스스로 먼 곳을 볼 수 있기를.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아도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해 달라 조르고 싶었다. 그 말이 가장 큰 위로처럼 느껴지던 때는 많이 지쳐있었을 것이다. 때로는 여행이라는 것이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는 일이기도 하지만 비슷한 삶을 바라보며 위로를 받는 일이기도 하다. 나의 작고 나약한 마음을 걸어둘 곳 없고 단순한 일상이 미로처럼 여겨질 때, 그렇다면 한 번쯤 그곳으로 가라. 차라리 지금보다 더 거대한 빌딩 그늘에 가려진 인간의 삶에 대해서, 그 속에서 마주치는 나와 같은 나를 만나 이야기하자. 그래서 더 뜨거워지고 더 명랑해질 당신을 부탁한다. 비록 단 한 번의 뉴요
모든 인연에게는 냄새라는 것이 있다. 향기가 아닌 냄새. 각자가 걸어 온 세월만큼의 냄새. 그것은 어느 날 향기일 때가 있고 냄새로 남을 때가 있다. 상상 밖의 낯선 곳에서 마주치는 풍경 속 너의 냄새를 기억한다. 커피 한 잔에도 교회 종소리에서도 덜컹거리는 기차의 창가 자리에서도 그렇다. 지나간 시간이 데려오는 향기가 아닌 냄새. 향기는 가깝고 냄새는 멀다고 생각한 것도 그 포도밭 어귀에서였다. 아득해진 시간의 냄새를 기억할 수 있는 곳. 그 해, 마지막 가을의 향기 속을 걸으며 나는 알았다. 순간순간의 아름다운 향기들이 쌓여 냄
국경을 넘는 기분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무엇인가를 마무리 짓는 느낌이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기도 하다고. 하지만 그 무엇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몰라도 된다고. 아니, 모르는 게 낫다고. 지금까지 많은 국경을 넘었지만, 그 모르는 것에 대해서 알려고 한 적 없다고. 알려고 하더라도 알 수 없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국경은 그저 너를 처음 만나거나 너와 영원히 헤어지는 것과는 다른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곳. 그냥, 오늘처럼 잘 지내다가도 마음이 틀어져 잠시 외면하는 사이, 너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
바람 같은 말이다. 너의 친절도, 나의 노력도, 결과 없는 결말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바람이다. 태어나고 죽는 것이 나의 의지가 아니라 할지라도, 살며 사랑하는 일만을 나의 의지로 받아들여 굳은 뼈는 생명을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냥, 그렇기 때문이다. 사는 게 욕심인가? 사랑하는 게 욕망인가? 모두가 한 바퀴 생의 굴레에서는 한 줄기 바람 같은 것이다. 심하게 불면 휘어지고, 잔잔하게 불면 잠들 듯. 모든 것이 바람 같다. 파란 하늘을 짊어진 그 언덕의 평화에 비한다면 너의 아름다움쯤이야 실바람도 못 되는 것을. 잡으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