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무대에서 만나는 ‘괴물 작가’의 언어, '방바닥 긁는 남자'

[컬처]by 매리킴
오랜만에 무대에서 만나는 ‘괴물 작가

최근 연극계에서 그의 이름을 접하지 못한 지 꽤 되었지만, 김지훈 작가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괴물 작가”라는 무시무시한 수식어가 붙어 다녔다. 2004년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고, 이듬해 처음으로 쓴 희곡 <양날의 검>이 대산대학문학상 희곡부문에 선정되며 연극계에 첫 발을 디딘 김지훈 작가는 2008년, 연희단거리패 22주년 기념작인 <원전유서>를 통해 단번에 우리 시대 가장 주목받는 극작가 중 하나로 발돋움했다. 

 

4시간 반의 러닝타임 동안 쓰레기산이란 거대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광대한 사상과 관념을 끝없이 쏟아낸 <원전유서>는 그해 연극계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된 작품이었다. 작품에 대한 감상과 평가는 사람마다 달랐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작가가 탄생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원전유서>는 초연 직후 동아연극상 대상을 비롯해 연출상 · 희곡상 · 연기상· 무대미술상 등 5관왕을 수상했고,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과 여자연기상까지 수상하며 연희단거리패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2012년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른 <풍찬노숙>은 4시간이 넘는 공연시간, ‘희생을 통한 신화 만들기’라는 주제를 비롯해 여러 면에서 <원전유서>의 계보를 잇는 김지훈 작가의 두 번째 대작이었다. <풍찬노숙>은 ‘코시안’ 즉, 혼혈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를 현실적인 문제로 접근하지 않고 신화적인 상상력으로 풀어내면서 다시 한 번 무대 위에 거대한 담론을 펼쳐보였다. 이어 국립극단에서 제작한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을 통해 김지훈은 개국 신화 3부작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장르와 새로운 작품의 구상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무대에서 만나는 ‘괴물 작가

한편, 이러한 대작 시리즈와 함께 공연한 소극장 연작도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바로 <방바닥 긁는 남자>, <길바닥에 나 앉다>, <판 엎고 퉤!>로 이어지는 3부작이다. <방바닥 긁는 남자>가 방구석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풍자와 날 선 독설을 보여주었다면, <길바닥에 나 앉다>는 우화의 형식을 빌려 사회를 비틀고 해부한 작품이다. 그리고 마지막 무대 <판 엎고 퉤!>는 아무 장치도 없는 빈 무대 위에서 배우들의 언어로만 승부하는, 그야말로 맨몸으로 접근하는 ‘연극에 대한 연극’이었다. 이 소극장 3부작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사회를 향해 쏟아내는 거침없고 신랄한 풍자라는 점에서, 비록 규모는 작지만 매우 단단하고 강렬한 여운을 남긴 바 있다.

 

이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인 <방바닥 긁는 남자>가 연희단거리패 창단 30주년을 기념하는 첫 공연으로 오랜만에 게릴라극장 무대에 올랐다. 다 쓰러져 가는 단칸방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네 명의 지독한 ‘루저’들. 이들이 쏟아내는 허무맹랑한 궤변과 독설, 그리고 이들이 벌이는 엉뚱한 짓거리들이 공연의 전부이다. 그런데 이 더럽고 게으른 인간들, 자칭 ‘누룽지형 인간’들이 펼치는 독설과 궤변을 가만히 듣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정신이 번뜩 들 때가 있다. 때론 말장난처럼, 때론 진지하게 이어지는 이들의 대화가 어느 순간 우리 사회의 이면을 날카롭게 해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식욕, 성욕, 권력욕을 통해 드러나는 이들의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욕망과 폭력성, 코딱지만 한 방안에서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행태들은 한없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축소판 같아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오랜만에 무대에서 만나는 ‘괴물 작가

7년 만에 무대에서 다시 만난 <방바닥 긁는 남자>는 여전히 시대를 향한 날선 비판을 거침없이 던지는, ‘아직 유효한 이야기’였다. 연희단거리패라는 걸출한 극단의 30주년을 기념한다는 의미에서도 뜻 깊고 주목할 만한 공연이지만, 무엇보다 오랜만에 ‘괴물 작가’ 김지훈의 언어를 무대에서 만나는 반가움이 컸다. 김지훈 작가를 특징짓는 여러 요소 중에서도 그의 언어는 유독 도드라지는데, 일상과 신화를 넘나드는 언어들이 거침없이 교차하고, 허공을 날아다니는 관념어와 흙 냄새나는 삶의 언어들이 묘하게 얽혀 들어간다. <방바닥 긁는 남자>는 그러한 작가의 언어가 무대와 배우를 통해 어떤 식으로 생생하게 구현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공연정보 2월 28일까지, 게릴라극장

글 매리킴, 사진제공 연희단거리패

2016.10.2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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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문학과 연극학을 공부하고, 무대 뒤와 객석을 오가며 공연에 관련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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