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역의 또라이는 나야 '데드풀'

[컬처]by 맥스무비

“내가 누군지 모르겠거든, 꺼져줄래!” 마블 역사상 가장 매력 터지는 안티히어로 ‘데드풀’의 자신만만하고 잘난 척 가득한 자기소개서. 이규원(그래픽 노블 번역가)

이 구역의 또라이는 나야 '데드풀'

치미창가!

안녕하십니까. 참신도 여러분! 신도 어쩌고 한다고 사이비 종교라고 오해하진 말아주세요. 물론 제가 한때는 온 세상을 파란 스머프로 만들려던 사이비 종교에 짧게나마 몸담았던 적이 있긴 합니다만,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을 참신도라고 부른 건 아닙니다. 우리 마블 코믹스의 아버지이신 스탠 리 옹께서는 열혈 독자 여러분을 참신도라고 부르시기도 하거니와, 내가 멕시코 요리인 치미창가를 너무나 좋아하고, 만화 세계에서 처음으로 현실 세계에 살고 있는 독자 여러분을 보며 건넸던 말이기도 해서 기념차, 인사차 한번 써 본 겁니다.

 

어쨌든 저로 말씀드리자면 탱탱한 엉덩이가 매력인 마블 최고의 섹시남, 말빨 하나로 우주를 구한 사나이, 공식적으로는 떠버리 용병, 라이언 레이놀즈의 얼굴에 샤페이 견의 상판을 엎어놓은 외모를 지니게 된 사연 많은 인물, 칼과 총을 주무기로 사용한다고 알려졌지만 무기 보다는 유료 텔레비전 채널 Cinemax(씨네맥스) 감상용 리모콘을 더 애용하는 남자, 좀 더 고급스런 직업명은 ‘고소득 사회 지도층 전문 해결사’ 데드풀입니다. 보수만 많이 준다면야 도둑질이건 암살이건 무슨 일이든 해결해 드리죠.

 

그래도 잘 모르시겠다 싶으신 분들에게는 1997년 <데드풀 4호>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제가 만화책 페이지를 뚫고 나와서 독자 여러분에게 했던 바로 이 말을 기억해주면 좋겠군요. “내가 누군지 모르겠거든, 꺼져줄래!” 어차피 몰라도 됩니다. DC 유니버스든 마블 유니버스든 캐릭터 하나 소개해서 저스티스 리그랑 어벤져스까지 올라가려면 주절주절 떠들어야 하니까요. 우리 부모가 누구였네, 실은 내 과거가 어쨌네 하며 히스토리를 다시 쓰고 영웅담을 풀어야 하지만 이 몸 데드풀께서는 약간의 탄생기가 있긴 해도 그까짓 거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별 상관이 없거든요. ‘원작 만화를 뭐부터 읽어보라느니, 영화와 관계는 이렇다느니 하는 소리가 필요 없는 캐릭터’다, 그런 말씀이 되시겠습니다. 히어로 서사시의 영웅이 아니라 그냥 히어로 시트콤이라 생각하라 그 말이죠. 배꼽 잘 붙어 있나 확인한 다음, 페이지 넘기고 곧바로 액션 시작하죠. 치미창가! 소류겐! 브리짓 닐슨을 위하여!

4차원 돌파의 슈퍼파워~

영화 보셨나요? 아님 예고편은? 제가 화면 밖의 여러분을 보면서 ‘놀랐지? 이건 색다른 슈퍼히어로 영화야!’라고 말하잖아요. 배트맨도 슈퍼맨도 아이언맨도 울버린도 그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었죠. 아! <아이언맨 3>(2013)에서 토니 스타크가 시작할 때 했던 내레이션은 관객 여러분이 아니라 ‘헐크’에게 상담하면서 했던 이야기였던 거 잊지 말아 주세요. 물론 저랑 비슷한 케이스가 있긴 해요. 제가 영화판 <엑스맨>에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엑스맨의 리더이신 자비에 교수 역의 제임스 맥어보이가 안젤리나 졸리랑 주연했던 2008년 영화 <원티드>(2008)에서 스크린 밖 관객을 쳐다보면서 ‘넌 이제껏 뭐하고 있었냐?’라고 말했죠. 절판되긴 했지만 번역판으로 출판되었던 마크 밀러의 원작 만화 <원티드>에서도 비슷하게 만화책 밖 독자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며 끝을 냈답니다. DC 코믹스 <3 세계의 리전>에 나오는 최악의 악동 슈퍼보이 프라임 역시 자기가 만화 세계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죠. 그게 바로 4차원을 뚫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능력이 바로 저에게 있습니다. 만화 속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에 가로놓인 4차원의 벽을 뚫는 능력 말입니다. 다른 만화 주인공들과 다르게 저는 제 자신이 만화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거죠.

 

모르는 작자들은 저를 보고 똘끼충만이네, 병맛이네, 정신분열이네, 소시오패스네 하는 소리들을 합니다만, 저는 마블 유니버스를 어지럽히는 말썽꾸러기가 아니라 <매트릭스>(1999)의 네오처럼 구세주 같은 캐릭터라고요. 생각해봐요. 내가 사는 세상이 진짜 세상이 아닌 허구의 세상이라는 것을 안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어메이징하다느니 얼티밋하다느니 수식어를 치렁치렁 달고서 날아다니는 스파이더맨도, 자뻑에 젖어 사는 아이언맨도 전혀 이 세계의 진실을 모르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걸 알고 있죠.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자부하며 허구한 날 만화책 속에서만 치고받고 싸움질하는 ‘어벤져스’ 애들과 나는 차원이 다른 존재인 거죠. 최근의 만화 <데드풀의 마블 유니버스 죽이기(Deadpool Kills the Marvel Universe)>의 제목만 봐도 제가 어느 경지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알 수 있죠?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꼴통은 마블에서도 퍼니셔 정도 밖에 없어요. 마블 유니버스를 호의적인 관점에서 보신다면 제가 악마처럼 보일수도 있겠지만, 뭐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아무튼 <매트릭스>의 키아누 리브스가 차원 돌파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듯이 저도 1991년에 처음 만화 캐릭터로 태어난 이후 이 경지에 이르기까지 나름 단계별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세운 자랑스러운 기록이 하나 있으니 고급진 자랑질 좀 하고 갑시다. 음악감독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화음악이 배경으로 깔렸으면 좋겠군요.

이 구역의 또라이는 나야 '데드풀'

데드풀의 등장

저 데드풀은 1991년 <뉴 뮤턴트> 98호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뉴 뮤턴트>라는 만화는 <엑스맨> 시리즈의 스핀오프 정도로 생각하면 되는데, 제목처럼 어린 뮤턴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화였습니다. 영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에 등장했던 워패스와 선스팟 등이 모두 <뉴 뮤턴트> 시리즈 출신입니다. 저를 창작한 작가 롭 라이펠드는 응답하고 싶은 1988년 영화 <트윈스>를 보고 저를 떠올렸다더군요. 거기 보면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우성 유전자, 대니 드비토가 열성 유전자를 물려받은 쌍둥이로 나오잖아요? 롭 라이펠드는 ‘언제까지 남이 만든 캐릭터만 그릴 거냐, 내가 캐릭터를 만들어서 히트쳐 보자’는 정신을 가지고, 우성에 해당하는 울버린 세계에 집어넣을 열성 유전자 울버린을 새로 하나 창작했답니다. 그게 바로 저라네요. 짜자잔!

 

그래서 저는 디자인도 기존 캐릭터들을 바탕으로 변형한 것이랍니다. 마블에서는 스파이더맨, DC에서는 데스스트로크가 제 디자인의 원조죠. 제 이름 ‘웨이드 윌슨’ 있죠? 데스스트로크의 본명이 슬레이드 윌슨이거든요. 데스스트로크가 웬 듣보잡이냐 하실 분들도 있겠으나, 나름 배트맨과 그린애로우의 강적 중의 하나랍니다. 미드 <애로우>(CWTV)에도 등장하구요, 최근에 화제를 모았던 <배트맨: 아캄 트릴로지> 비디오 게임 시리즈에서도 강력한 보스 중 하나로 등장했죠. <뉴뮤턴트>의 글을 담당하던 작가 파비안 니시에자는 제 디자인을 딱 보자마자 데스스트로크를 본 딴 것인 줄 알아봤다죠. 그래서 슬레이드 윌슨을 변형해 제 이름을 웨이드 윌슨이라고 지었답니다.


스파이더맨에는 롭 라이펠드 작가의 추억이 있습니다. 원래 스파이더맨하면 ‘다정한 이웃’이라는 별명답게 밝고 명랑한 캐릭터지만, 90년대의 스파이더맨은 아주 어두운 분위기였거든요. 롭 라이펠드의 추억에 남아있는 밝고 명랑한 스파이더맨이 바로 접니다! 치미창가! 그래서 지금의 저는 롭 라이펠드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스크린 너머, 책장 너머 관객 여러분, 독자 여러분께 대놓고 들이댄답니다. 그런 맥락으로 이해하시면 되겠네요. 나 좀 봐줘요! 관심 좀 가져줘요! 치미창가! 치미창가! 치미창가!

악당에서 히어로로 진화하다.

악역으로 출발해서 <데어데블>이니 <어벤져스>니 하는 시리즈들에 엑스트라로 기웃기웃 하던 차에 슬슬 팬들이 늘더군요. 그래서 1993년에 파비안 니시에자의 미니시리즈가 하나 만들어졌어요. 여기서 저의 정보원 겸 장비 공급 담당이자 은밀한 취미의 덕업상권 관계에 있는 위즐이 처음으로 등장했답니다. 그리고 이때 처음으로 저는 사람을 죽이는 킬러가 아닌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히어로가 되었어요. 짜잔! 그 다음 미니시리즈가 1994년에 연이어 터졌는데, 이때 스토리를 맡아준 사람은 마크 웨이드였습니다. 이 사람 작품 중 번역된 책을 소개하자면 <킹덤 컴> <슈퍼맨: 버스라이트> <스타워즈: 레아 공주> 그리고 미국 만화 관련 교양서인 <슈퍼히어로 미국을 말하다> 등이 있습니다. 슈퍼히어로 박사로 명성이 자자한 이 양반이 마블로 넘어와서 처음 쓴 만화가 바로 1994년의 <데드풀> 미니시리즈였으니, 제 입장에서도 영광인 일입니다. 제가 히어로인 걸 알아보고 히어로 대가가 절 맡아줬잖아요. 치미창가!

 

그리고 이 짧은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저는 진정한 아버지를 만난답니다. 우리 미국 만화 캐릭터들은 항상 작가진이 바뀌기 때문에 여러 아버지들을 둔다고 볼 수 있는데요. 예를 들면 <배트맨> 시리즈라고 하면 전통적으로는 원작자 ‘밥 케인’을 떠올립니다만, 최근 그랜트 모리슨과 스콧 스나이더가 배트맨의 신화를 혁신적으로 진화시키며 새로운 거장으로 부상했죠. 그래픽 노블 <다크나이트 리턴즈>와 <이어원>의 프랭크 밀러는 모던 배트맨의 아버지로 통하구요. <엑스맨>의 경우도 원작자는 마블의 스탠 리와 잭 커비 두 사람이지만, 70년대 이후 <울버린> 등을 포함해 다국적·다인종의 <엑스맨> 팀을 선보이며 오늘날까지 발전시킨 ‘현대 <엑스맨>의 아버지’ 크리스 클레어몬트를 빼놓을 수 없죠. 저한테도 프랭크 밀러나 크리스 클레어몬트 같은 분이 두 명 있는데 바로 조 켈리와 크리스토퍼 J. 프리스트입니다.

 

두 사람은 제가 ‘데드풀’이라는 이름의 장편 시리즈물로 독립하면서 제 이야기를 맡아주신 작가들인데요. 조 켈리는 저에게 ‘블라인드 알’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붙여주셨고, 저의 영웅성을 더욱 진화시켜주셨습니다. 저의 구성진 말빨과 대중문화에 대한 풍부한 덕력을 듬뿍 담은 재미있는 농담들도 이 두 분 밑에서 일취월장했죠. 저에게 4차원 돌파의 능력을 선사해 주신 분도 바로 조 켈리였습니다. 크리스토퍼 J. 프리스트 선생은 조 켈리 선생의 뒤를 이어서 4차원 돌파의 능력을 훨씬 더 폭넓게 응용하면서 키워주신 분이구요.

이 구역의 또라이는 나야 '데드풀'

4차원 돌파 능력

1997년 <데드풀 11호>. 이건 커버부터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대표 커버를 패러디한 것이었습니다. 더 재미있는 건 표지를 넘긴 첫 페이지에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1994)의 포스터를 완벽하게 패러디한 제 모습이 떡하니 박혀 있다는 겁니다. 거기에 제목도 <스파이더맨>의 모토인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를 변형한 ‘큰 힘에는 큰 우연이 따른다’가 포레스트 검프 스타일로 붙어있죠.


여기서 저는 블라인드 알과 함께 그 옛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만화 시리즈로 시간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블라인드 알은 메이 숙모 역할을, 저는 피터 파커 역할을 하게 되죠. 그런데 학교에 갔는데 거기 위즐이 있더군요. 저의 장비 공급 담당 겸 정보원이자 친구이자 은밀한 취미의 덕업상권 관계에 있는 위즐. 이 친구가 잭 해머라는 이름으로 피터 파커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등장합니다. 게다가 이 녀석의 친구 그웬 스테이시를 남몰래 넘보기까지 합니다.

 

크리스토퍼 J. 프리스트는 <데드풀 34호>에서 아예 자신이 손댔다가 망한 만화 캐릭터들의 세계를 등장시킵니다. 앞서 33호에서 조 켈리가 저를 죽여 놓고 시리즈를 떠났는데, 34호에서 눈을 떠보니까 제가 이상한 방 안에 있는 겁니다. 거기서 저는 진실을 독자에게 알렸습니다. “이건 실제 일어나는 일이 아니야. 타자기 앞에 앉은 한 남자가 전부 상상해낸 이야기라고!” 이 4차원 돌파의 능력이 가장 빛을 발한 스토리가 바로 2012년 <데드풀의 마블 유니버스 죽이기>였고, 마블 유니버스를 박살낸 것으로도 성이 덜 차서 마블 캐릭터를 창작해내는 상상의 원천인 동화와 고전문학의 주인공들도 없애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죠. 그리하여 모비딕, 삼총사, 셜록 홈즈와 대결전을 벌이는 만화가 2013년 나왔는데, <데드풀: 킬러스트레이트>랍니다.

 

크리스토퍼 J. 프리스트 이후엔 게일 시몬이 저를 맡았었는데, 미국 만화는 편집부와 작가가 왜 그렇게 의견이 안 맞는지, 편집부에서 <엑스맨>의 인기에 저를 끼워팔겠다며 제 이름을 ‘에이전트 엑스’로 바꿔버렸지 뭐에요. 덩달아 제 절친이자 테스토스테론이 팍팍 솟는 초능력의 보유자이며 엑스맨의 리더 싸이클롭스의 아들인 네이던 데이 스프링 아스카니 썬 써머스 케이블도 ‘솔저 엑스’라는 이름으로 바뀌어버렸죠. 결과는 쪽박. 덕분에 케이블과 저는 파트너가 되어서 <데드풀과 케이블> 시리즈로 히트를 쳤답니다. 물론 중간에 케이블이 <엑스맨> 스토리의 <메시아 트릴로지>의 구원자 노릇을 한다고 바쁜 바람에 이름만 걸쳐놔서 저 혼자 노는 시리즈가 되긴 했지만, 파비안 니시에자 혼자서 장장 50 이슈나 연재했으니 성공작이랄 수 있겠죠?

 

그 뒤를 이어 저를 맡아준 작가가 다니엘 웨이랍니다. 2008년판 <데드풀> 시리즈는 스크럴 침공과 함께 스토리를 시작해서 저를 진정한 다중인격으로 만들었죠. 제가 다중인격이냐 아니냐를 놓고 호불호가 갈렸던 시리즈기도 합니다. 그 뒤 2013년에 ‘마블 나우’ <데드풀> 시리즈가 새로 론칭할 때 작가 브라이언 포센은 그 첫 이야기로 죽은 미국 역대 대통령들을 모조리 되살렸어요. 2012년 말에 미국 대선이 있었잖아요? 겸사겸사 했던 건데, 그때 조지 워싱턴을 위시해 에이브러햄 링컨, 해리 트루먼, 프랭클린 루즈벨트, 테디 루즈벨트, 윌리엄 태프트,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등 역대 대통령들이 모조리 묘지에서 튀어나와 미국을 대혼란에 빠뜨립니다. 저는 이 언데드 유령 좀비들을 무찌르고 혼란에 휩싸인 미국을 구하는 구국의 영웅이 되죠. “여성 유권자들의 이름으로 널 처단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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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판 키퍼 서덜랜드, 지난 줄거리의 창시자

예를 들면 미드 마니아의 귀에는 지금도 메아리처럼 쟁쟁한 키퍼 서덜랜드의 목소리 “뚜 뚜 뚜 뚜루루루루 프리비어슬리 온 트웨니포”. 이렇게 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등장인물이 직접 내레이션으로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죠. 마블 코믹스에서 그 원조가 바로 조 켈리가 쓴 <데드풀>이었습니다. 마블 코믹스와 DC 코믹스의 주요 만화들을 비교해보시면 DC는 지난 줄거리 란을 찾아보기 힘들어요. 그런데 마블은 지난 줄거리 란을 대부분 꼬박꼬박 넣습니다. 최근 시공사에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과 <미즈 마블>을 원작 이슈 그대로 출판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보면 지난 줄거리가 꼬박꼬박 들어갑니다. 그 원조가 1997년에 출판을 시작한 <데드풀> 시리즈로, 시리즈 6호를 보면 저랑 똑같이 생긴 제 클론인 위들 웨이드라는 친구가 등장해서 ‘여러분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이라는 제목으로 저와 제 친구, 아니 정확히는 제 포로인 블라인드 알과 제 친구 위즐의 지난 이야기를 소개해줍니다. 이게 원조가 되어서 1998년부터 마블의 만화에는 ‘캡틴 아메리카’ 등을 위시해서 지난 줄거리가 슬슬 들어가기 시작했고, 2000년대부터는 거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대단하지요? 나도 나름 역사에 한 줄기 영역 표시를 했다구요!

 

지난 줄거리가 가장 재미있게 빛을 발한 작품들 중 저의 장기를 이어받고 있는 작품이 바로 <이리디머블 앤트맨>이죠. 영화 <앤트맨>(2015)의 스콧 랭이 아니라, 몸이 작아지는 앤트맨의 능력을 손에 넣자마자 한다는 짓이 여자 목욕탕에 숨어들어서 훔쳐보기나 하는 꼴통 중의 꼴통 에릭 오그래디라는 녀석이 주인공인 만화입니다. 작가는 <워킹데드>의 원작자 로버트 커크먼. 구미가 당기죠? 여기에 보면 앤트맨이 부리는 개미들 중 한 마리가 계속 독자에게 지난 이야기를 주절주절 읊어줍니다. 그러면서 배가 고프다느니 어쩌느니 투덜대거나 에릭 녀석을 꼴통이라고 내내 씹어댔죠. 원조가 바로 저예요 저.

 

프리비어슬리 온 데드풀의 목소리는 절 연기한 라이언 레이놀즈의 목소리로 상상해서 읽어주시고, 혹시 제 영화가 잘 돼서 <스타워즈>처럼 더빙판이라도 나온다면, 글자 수 제한과 가독성을 위한 자막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만의 리듬감 있는 유머를 한국어판으로 즐겨볼 수도 있겠죠. 레이놀즈 목소리를 맡았던 성우 구자형, 최원형, 심규혁, 장민혁의 목소리 등 아무나 상상해 주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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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풀 탄생기

읊어대다 보니 이 몸의 탄생기가 빠졌네요. 탄생기 필요 없다니까! 내가 그렇게 좋으면 책을 사서 읽어요, 안 그러면 또 폐간된다고! 뭐 그래도 궁금하다니 서비스로 간략하게 요약해드리죠. 어린 시절에 저는 엄마와 아빠에게 번갈아 얻어터지며 자랐어요. 엄마, 아빠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18살 때던가, 군대에 들어가 용병이 돼서 세계를 돌며 임무를 수행했고, 그러던 중에 잠깐 도망자 신세가 됐죠. 그 때 한 부부가 절 도와줬는데 그 남편 이름이 ‘웨이드 윌슨’이었어요. 그때부터 저는 웨이드 윌슨으로 살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암에 걸렸다지 뭐예요. 그걸 치료하겠다고 울버린이 아다만티움을 이식받았던 웨폰엑스 프로그램에 지원했어요. 거기서 제게 회복 능력을 이식해 주었던 인물이 ‘아약스’랍니다. 암은 치료됐지만, 젠장. 새로운 세포만 계속 재생되는 게 아니라 암세포까지 계속 재생되는 바람에 온몸이 흉한 몰골로 변하고 말았죠. 이 회복 능력이 얼마나 강력한가 하면 한번은 목이 잘린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새 머리가 다시 솟아나더군요. 와우! 심지어 <엑스포스 케이블: 메시아 워> 만화책에서는 핵폭탄으로 세계가 멸망할 때 해리슨 포드 옹이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2008)에서 써먹었던 냉장고 대피술을 떠올려 산업용 냉장고 속에 숨었다가 그만 800년을 그 안에 갇혀서 살아야 했답니다. 800년 동안 벽에 낙서질하면서 버티다 보니 정신분열이 오긴 했지만 그래도 회복 능력 덕분에 죽진 않았어요. 냉장고에서 탈출한 뒤 만난 울버린이 제 머리에 클로를 박아 넣고는 그간 가려웠던 뇌를 긁어주던 일이 생각나네요. 이쯤하면 어느 정도 나에 대해 파악이 됐겠죠? 혹여 아직도 나를 잘 모르겠다 한다면 그냥 영화를 보세요. 아니면 꺼지시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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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월간 「맥스무비」 2016년 2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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