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짓는 승부사 박보검

[컬처]by 맥스무비
미소 짓는 승부사 박보검

박보검의 눈과 입가엔 해사한 미소가 떠날 줄을 모른다. 하지만 상대를 순식간에 무장해제 시키는 미소와 느긋한 말투는 일종의 방패다. ‘보검(寶劍)’ 왕이 가장 귀한 순간에 쓰는 검, 이라는 이름처럼, 그는 연기가 시작되면 잘 벼린 칼을 뽑아드는 천상 승부사다.

미소 짓는 승부사 박보검

<응답하라 1988>(tvN)과 박보검, 어떤 쪽이 더 큰 수혜자일까. 이상한 질문처럼 들릴 수도 있다. 당연히 몇 년의 조단역 시절을 지나 <응답하라 1988>로 전 국민의 ‘우리 택이’가 됐으니 박보검이 수혜자일 것도 같다. 하지만 2011년 영화 <블라인드>로 데뷔해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박보검이 거쳐 온 캐릭터들을 기억한다면 저울추는 반대쪽으로 기운다. <응답하라 1988>의 최택은 실제 인물 이창호 9단을 모델로 만들었다고는 하나, 굉장히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바둑의 신’이라 불리는 천재 바둑 기사지만, 친구들은 그를 세상물정 모르는 다섯 살배기 동생 취급을 한다. 거의 진주(김설)와 동급으로 본다. 생긴 건 소녀 뺨치게 예쁘게 생긴 얼굴로 해사하게 웃으면, 순정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캐릭터 안 부럽다. 하지만 승부 앞에선 전혀 다른 얼굴이 드러난다. 반달눈과 입매가 일직선으로 팽팽해지면, 시퍼렇게 날선 칼을 들고 서 있는 승부사가 보인다. 심지어 사랑 앞에서도. 미소와 칼날, 둘 중 하나라도 작위적인 기색이 엿보이면, 최택이라는 캐릭터는 무너졌을 것이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응답하라 1988>의 최택은 박보검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캐릭터다. 실제로 박보검을 만나 본 적 있다면, 이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것이다. 그에겐 훼손되지 않은 해맑음이 있다. <차이나타운>(2015)의 한준희 감독은 어둠의 세계에서 ‘쓸모’를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던 일영(김고은)의 삶을 깨뜨리는 무기로 ‘박보검의 해사한 얼굴’을 활용했다. “석현(박보검)과 일영의 관계가 깊어지는 과정을 더 설명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석현이 아파트 문을 열고 빼꼼히 얼굴을 드러내는 장면을 촬영하면서, 그런 설명들이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그냥 박보검의 얼굴만으로 다 설명되는 것 같았다.” 일영이 창문 없는 지하 감옥에 갇혀 살던 죄수라면, 석현은 그녀가 처음 본 햇빛 같은 존재다. 보자마자 낯선 눈부심에 짜증을 내겠지만 본능적으로 그 따스함에 몸을 맡기고 싶어지는, 거부할 수 없는 존재. 박보검이 가진 해사함의 위력이다.


그의 해사함이 타고난 선물이라면, 승부사의 칼날은 드라마와 영화 현장을 ‘막내’로 누비며 얻은 선물이다. 나이보다 훨씬 앳된 얼굴 덕에 스무 살 가까운 나이에도 성인 배우의 아역을 연기해야 했고, 거의 매일 전쟁하듯 찍어내는 드라마 현장의 막내 경력만 4편이다. 여장부터 사이코패스까지 이미 극적인 캐릭터를 넘어서 여기까지 왔다. “현장에서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냥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대신 준비는 오래하는 편이다. 재미있으니까. 혼자 연습할 때도 재미있는데, 현장에 가서 실제로 연기하면 더 재미있으니까 계속하게 된다.” 재주는 노력을 못 따르고, 노력은 즐김을 못따른다는 말이 있다. 재주를 타고난 배우가 노력을 즐기니, 말다 했다. 박보검의 칼날이 어디로 향할지 궁금할 뿐이다.

 

글 박혜은 | 사진제공 블러썸엔터테인먼트, K-SWISS 

미소 짓는 승부사 박보검

그를 처음 만난 날

에디터에게도 특히 애정하는 결과물이 있다. 에디터와 배우가 통했을 때,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가 나오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맥스무빙’ 영상 중 가장 아끼는 것이 바로 박보검의 우크렐레 연주 영상이다. “오늘 우크렐레 연주 콘셉트라고 해서, 미리 연습하고 왔어요. 잘 하고 싶어서요. 일단 제가 연습한 것부터 해 볼게요.” 이렇게 먼저 나서는 배우에게 반하지 않을 에디터가 어디있을까. 특유의 환한 웃음을 지으며 카메라 앞에 선 그는 완벽하게 포즈를 해내고, 코믹한 콘셉트도 척척 소화했다. 잠시 카메라가 멈추면 민망하다는 듯 “파하하하” 크게 웃었다. 그날의 분위기가 잊히지 않는다. 촬영 내내 모든 스태프가 이렇게 웃었던 기억도 처음이다. 촬영 현장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스며들면 영화가 대박난다는 말이 있다. ‘맥스무비 레전드 영상’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건, 몸을 아끼지 않으면서 스튜디오를 웃음으로 가득 채웠던 박보검 덕분이다.


그는 “원래 가수가 꿈”이었다고 고백했다. 지금은 연기에 집중하고 있지만, 노래 실력도, 진행 실력도 훌륭하다. 2015년 연말 시상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시키는 건 빼지 않고 웃으면서 다 해낸다. 이건 박보검의 성격이기도 하지만, 천부적으로 내재된 ‘끼’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당시 촬영을 맡은 포토그래퍼는 우크렐레로 장난치는 박보검에게 “카메라 앞에 서려고 태어난 사람 같다”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최근엔 대학 연기 실습으로 뮤지컬 단막극 연출도 맡았단다. 그 현장의 분위기가 어땠을지 눈에 선하다.


이지영

 

위 글은 월간 「맥스무비」 2016년 2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6.02.25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영화로 꿈꾸고, 영화로 소통하는 진짜 영화 관객을 만족시킬 단 하나의 영화 월간지
채널명
맥스무비
소개글
영화로 꿈꾸고, 영화로 소통하는 진짜 영화 관객을 만족시킬 단 하나의 영화 월간지

    이런 분야는 어때요?

    ESTaid footer image

    Copyright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