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나홍진 ① 현혹의 본진(本陣)

[컬처]by 맥스무비
'곡성' 나홍진 ① 현혹의 본진(本陣

<곡성>의 흥행이 파죽지세다. 개봉 2주 만에 450만 명 고지를 넘었다. 일단 나홍진의 데뷔작 <추격자>(2008)의 500만 명 기록은 무난히 깨뜨릴 것이다. 그의 첫 15세 영화라서? 그 이유도 무시할 순 없겠다. 하지만 <곡성>의 관객 층은 넓고 얇은, 툭 치면 바삭 깨질 살얼음 같은 양상이 아니다. 이 영화는 관객을 홀려서 빨아들이곤, 들이파게 한다. 관객은 이미지와 이야기를 파고 파서, 그 아래 일렁이는 실체를 기어이 확인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곡성>은 굽이굽이 갈래길 앞에 각각의 이정표를 세워놓는다. 각각의 이정표는 꽤 그럴싸하게 ‘이 길이 맞다’고 손짓한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이럴 땐, 본진으로 직진해야 한다. 나홍진 감독을 만났다.

무엇을 보았나

<곡성>은 세 배우를 이정표처럼 쓰는데, 곽도원이 가장 선명하고, 황정민은 헷갈리며, 천우희는 따라가야 할지 의심이 든다. 곽도원은 이 영화를 통해 봉인이 풀린 것 같다. 어떤 믿음이 있었나? 

<곡성>엔 다양한 장르가 섞였다. 그러다 보니 각 부분마다 느낌이 다르다. 영화 속 사건을 바라보고, 느끼고, 다가가려면 관객이 종구를 따라가야 했다. 그런데 <곡성>은 처음엔 매우 밝게 시작해서 마지막 장면에선 가장 어두운 곳으로 떨어진다. 종구가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낙폭을 최대치로 만들어야 했다. 그 차이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벌릴 수 있을까. <곡성> 시나리오를 쓰면서 배우를 고민할고민할 때 가장 크게 생각했던 지점이다. 만약 나도 <황해>에서 곽도원과 호흡을 맞춰본 적이 없었다면, 그가 항상 보여주는 ‘특출한 그 부분만’ 잘하는 배우인 줄 알았을 거다.

 

황정민은 어땠나? 

진짜 좋다.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배우다. 촬영장에 그가 오면 그냥 좋았다. 그는 뭔가 시작하면, 밥도 안 먹고, 다른 건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그일에 매달린다. 끝을 봐야 밥도 넘어가는 모양이다. 그런 모습도 좋았다. 촬영 환경, 분위기, 스태프 체크, 배우들 체크 체크, 이런 오지랖도 되게 넓다.(웃음) 그와 함께 일하는 매 순간이 행복했다. 그가 현장에 오면 든든한 기둥이 하나 세워진 느낌이랄까.

'곡성' 나홍진 ① 현혹의 본진(本陣

무명은 시나리오에만 적힌 이름이다. 아무도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셋 중 가장 다양한 해석이 난무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왜 천우희여야 했나? 

무명이 여성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곡성>에선 항상 결정적인 순간, 자연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무명이 그 자연과 비슷한 존재이길 바랐다. 영화에서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천둥이 치고, 또 맑아지는데 그런 자연의 느낌을 담은 인물이길 원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단단함, 굳건함, 절대적인 느낌. 여러 배우를 만났는데, 천우희가 제일 적합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대사가 거의 없는데도,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무명은 종구를 찾아온 일광을 쫓아내면서 가공할 힘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외지인 문제를 직접해결하지 않고, 지켜보는 건지 궁금해 하는 관객도 많다. 

<곡성>은 한편으로 신과 인간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신께서 존재한다고 믿는다. 다양한 종교의 성직자 분들을 만나면서 든 생각은 신께서 신의 지위를 가지는 가장 핵심 방식이 ‘방관’인 것 같다. 개입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우리는 ‘신에 대한 야속함’을 이야기할 때가 있다. 왜 이렇게 우리는 고통스러운데 도와주시지 않는가! 하지만 신이 신일 수 있는 지점에 대해 무명이라는 캐릭터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무명이 끝까지 개입하지 않고,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영화 속 모든 물음표에 대해, 무명의 존재가 마침표를 찍으면서 명확히 답을 주고 끝낸다는 게 오히려 불경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치열한 현장

<곡성>은 어떤 사건으로 넘어가기 직전, 해가 뜨고 지고, 안개가 서렸다가 사라지는 등 매직 아워의 풍광을 보여준다. 강박적으로 매직 아워에 집착했다고 들었다. 배우들이 허탕치고 집에 갈 때도 있었다고?

동일한 장소를 반복해서 몇 번 보여주는데, 시간에 따라 그 장면의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사실 많은 분들이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곡성’이라는 공간이 굉장히 중요했다. 인서트 컷을 촬영할 땐 정확하게 이 장면 앞에 넣겠다고 생각하고 찍진 않는다. 그렇게 작정하고 찍으면 꼭 실패한다. 일단 찍어두는 거지. 그런데 놀라웠던 건, 두 신 사이에 매직 아워가 한 번 들어가야 하는데 그 수많은 인서트 컷 중 딱 하나만 붙더라. 오로지 그 샷 하나. 생각하기엔 어떤 풍광이 들어가도 다음 신으로 넘어가는 데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영화에서 보여준 딱 그 샷이 아니면 이야기가 안 넘어갔다. 신기했다.

'곡성' 나홍진 ① 현혹의 본진(本陣

‘매직 아워’라고 근사하게 이름 붙여도, 결국 지구가 자전해서, 해가 뜨고 지는 기계적인 순환 아닌가. ‘매직’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물리적으로 이야기하면, 지구가 돌고 해가 뜨고 지는 것 뿐이다. 지금 대화에서 좋은 느낌을 받았다. 물리적이고 분명한 이유가 있음에도, 우리는 다른 감정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곡성>이 물리적 이유보다 ‘다르게 느낀다’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화일 수도 있겠다.

 

직접적인 악의 감염은 이제 ‘좀비’로 불리게 된 사람들의 육체로 표현된다. 감염자 디자인과 연출, 연기도 고생스러웠을 것 같다. 그런데 ‘좀비’는 아니지 않나? 병원에서 죽은 첫 번째 감염자도 시체처럼 있다가 갑자기 엄청난 힘을 뿜다가 죽고, 박춘배도 트럭 속에서 숨이 붙어 있는 상태였으니까. 물론 박춘배는 외지인의 주술과 연관된 인물처럼 보이지만, 외지인이 그를 조종하는 것 같은 느낌은 못 받았다. 

일단 ‘좀비’라고 불리게 된 그를 나는 ‘박춘배’라고 불렀다. 마을 사람들은 비슷한 ‘증상’을 겪는데, 그 증상을 디자인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무속인들을 쫓아다니면서 공부하던 중에 ‘빙의’ 환자들을 봤는데 그 움직임은 <곡성>의 사람들과 비교도 안될 만큼 기이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우리가 ‘좀비’라 불리는 캐릭터의 움직임이 오히려 ‘빙의’ 환자에서 기인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배우들은 안무가에게 그 동작들을 배웠다. 피부 역시 악화 과정을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눴다. 처음엔 수포가 생기고, 나중엔 온 몸으로 퍼져 딱지가 앉고, 나무껍질처럼 퍼지는 디자인이다. 각 배우들이 증상에 맞게 특수 분장을 했다.

 

나홍진 감독 고된 촬영 현장은 <추격자> 때부터 익히 알려져 있다. <곡성>도 비슷했나 보다. 일반 관객들이 관객 대화에서 촬영 현장 분위기를 물어볼 만큼, 소문난 현장이기도 한데. 

나는 광고 현장 연출부 생활을 오래 겪었다. 영화 데뷔하기 전에 이미 현장 경험이 있었던 거지. 문제는 이런 거다. 현장이 익숙하다 보니 보이는 게 많다. 그리고 내가 간이 콩알만해서 위험한 상황이 생기는 걸 견디지 못한다. 액션을 찍는다거나, 배우가 높은 곳에서 촬영한다거나, 그럴 때 아주 조금이라도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굉장히 긴장한 상태로 곤두서는 것 같다. 또 내 영화가 거칠고 다크한 분위기라서 현장에서 별로 ‘이가 드러나게’ 웃을 일이 없다.(웃음) 배우가 피칠갑하고 고생하는데, 잘했다고 웃기도 뭐하고. 현장 분위기가 다크하긴 하다. 나도 밝고 웃음 많은 로맨틱 코미디를 하면, 현장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영화의 성격이 현장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니까. 내 영화는 촬영 신도 많고, 공간 이동도 많고, 요구하는 것도 힘든 것들 것 요구한다. 배우, 스태프가 타 영화에 비해 힘든 현장인 건 분명하다.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다.

 

글·구성 박혜은 박소연 | 사진 김소연

 

<곡성> 나홍진 ② | "<곡성>은 인간의 존재 이유를 질문하는 영화다"로 이어집니다.

2016.05.3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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