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보다 지독한 ‘여자라서’의 망령

[컬처]by 맥스무비

'고스트버스터즈'가 8월 25일 한국에서 개봉한다. 미국에선 개봉(7월 15일) 몇 달 전부터 영화 매체들이 특집호를 내고, 배우들이 토크쇼를 점령하듯 시끌벅적했다. 한국에선? 예매순위 6위다. 무더위에도 찬바람이 쌩하니 분다.

 

알려졌다시피 북미에선 다른 의미로 뜨거웠다. 내용은 그대로 두고 여자 주인공으로 ‘젠더 스와프’한 영화에 ‘별점 테러 설’이 나왔고, 유튜브 예고편에 ‘싫어요’가 ‘좋아요’의 세배다. 북미 박스오피스는 개봉 첫 날 1위를 기록했지만, 월드와이드 매출은 아직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물론 오리지널 '고스트버스터즈'는 신화이자 전설이고 시대의 아이콘이다. 폴 페이그 감독도 고백했다.

“처음엔 아무도 안 건드리려고 했다. 오리지널 '고스트버스터즈'는 코미디 영화계의 '대부'같은 작품이거든. 하지만 주인공들이 여성이 된다면? 새로울 것 같아서 욕심이 났다.”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일까, 익숙함을 빼앗겼다는 반감일까. '고스트버스터즈'를 둘러싼 논란은 ‘여성’에서 불이 붙었다.

유령보다 지독한 ‘여자라서’의 망령

'고스트버스터즈'(1984)

젠더 스와프

‘젠더 스와프(Gender Swap: 성별 교체)’란 용어가 요사이 영화계에서 심심찮게 쓰이고 있다. 속편이나 리메이크 영화를 만들면서 등장인물의 성별을 반대로 바꾼다는 뜻이다.

 

남성 주인공을 여성 주인공으로 바꿔 재창조할 때, 남성이 중심이고 여성은 보조적인 기존 관계의 전형성이 전복되면서 성정치적으로 진일보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중에는 '국가대표2'가 1편의 남성 스키점프 선수들 이야기를 여성 아이스하키 선수들의 서사로 바꿔 젠더 스와프를 시도했지만, 시도는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여성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체라기보단 감성에 호소하고 우연에 기대는 존재로 그리는 것에 그쳤기 때문이다.

유령보다 지독한 ‘여자라서’의 망령

'고스트버스터즈'

'고스트버스터즈'(8월 25일 개봉)라면 '국가대표2'를 포함해 젠더적 답보 상태인 한국영화에 대한 갈증을 해갈할 ‘사이다’가 될 수도 있다. 리메이크작은 1984년작 '고스트버스터즈'의 4인조 남성 유령 퇴치단을 뛰어난 여성 희극 배우들로 ‘젠더 스와프’하면서 원작의 향수와 개성 넘치는 유머를 두루 전한다.

유령보다 지독한 ‘여자라서’의 망령

'고스트버스터즈' LA현지 프리미어 인터뷰 현장

개성 있는 캐릭터 코미디

영화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현대적인 유머를 동시에 구사하는데, 후자 쪽이 더 강하다. 잘 만들어진 캐릭터 각자의 매력과 그들의 합은 유머의 8할 이상을 차지한다. 네 여자 주인공은 저마다 한가지씩 지적인 재능을 갖췄지만 어딘지 ‘2% 부족한’ 모습으로 친근한 캐릭터를 완성한다.

 

멜리사 매카시는 종종 심드렁하지만 좋아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우리가 잘 아는 그녀의 모습대로 나와 유령에 심취한 과학자 애비를 연기한다. 애비의 오랜 친구이자 역시 유령에 빠진 과학자 에린은 크리스틴 위그가 나사 하나가 풀린 듯 다소 얼빠진 ‘헛똑똑이’로 표현한다.

 

말수는 적지만 엽기적인 표정과 몸짓을 일삼는 괴짜 엔지니어 홀츠 역의 케이트 맥키넌, 불평불만을 달고 살지만 뉴욕의 지리와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춘 패티 역의 레슬리 존스도 맞춤복처럼 어울리는 열연을 펼친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패티가 유령 퇴치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과정 묘사가 다소 미흡하긴 하지만, 유령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뭉친 이들은 서로 어우러지지 않는 듯 어우러지는 묘한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유령보다 지독한 ‘여자라서’의 망령

'고스트버스터즈' 크리스 헴스워스

영화에서 ‘금발 백치미’ 캐릭터를 맡고 있는, 비서 케빈 역할의 크리스 햄스워스는 의외의 웃음을 터뜨리는 감초다. 영화는 천문학적인 임대료에 혀를 내두르며 차이나타운 중식당의 허름한 방에 사무실을 차리는 설정으로 땅값 비싼 뉴욕의 세태를 반영하고, 평범하지 않은 여자들에 대한 편견을 직접 꼬집어 풍자하기도 한다.

 

'고스트버스터즈'의 심볼과도 같은 OST와 빌 머레이 같은 1편 배우들의 까메오 출연은 관객의 향수를 자극하는 억지스런 전략이라기보다는 ‘원작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장치에 가깝게 기능한다.

유령보다 지독한 ‘여자라서’의 망령

'고스트버스터즈'

그래도 ‘싫어요’를 눌러야겠다면

누가 봐도 재능 있는 배우들이 이끌어가는 제법 재미있는 영화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을 테지만, 아니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마음 깊은 곳에서 반발심이 생길 수도 있다.

 

‘여자라서 싫음’으로 간단히 정리될 불만은 지난해 1월 캐스팅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제기됐다. 남성 영웅들이 만들어놓은 좋은 기억을 여자들이 망치지 않겠냐는 우려는 곧, ‘여자 고스터버스터즈는 별로’라는 볼멘소리였다.

 

불만은 행동으로 이어져, 지난 3월 유튜브에 공개된 트레일러는 두 달 만에 60만 건의 ‘싫어요’를 얻었다. 미국 현지 영화 개봉(7월 15일)이 두 달이나 넘게 남았을 때였다.

유령보다 지독한 ‘여자라서’의 망령

유튜브 사이트 화면 캡쳐 (2016년 8월 24일)

현재까지 누적된 ‘싫어요’는 100만 건을 훌쩍 넘긴다. 전체 조회 수 3,900만 건 가운데 ‘좋아요’가 28만여 건이라는 점과 대조된다. 개봉 이후 나쁘지 않은 평단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IMDb 등에서도 야박한 평가가 많이 나왔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싫다고 한 이들 가운데 (스스로 설정한 성별에 따르면)남성의 숫자가 여성의 8배라는 사실. 소수의 여성들은 이 영화에 남성들보다 평균적으로 2배 더 높은 평점을 매겼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싫어하는지, 볼 생각도 없이 나쁜 점수만 주는 건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 영화에 일부(라기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젠더적인 이유로 평점 공격을 일삼았다는 점은 사실에 가까워보인다.

 

SNS상에서 ‘나는 성차별주의자가 아니지만 이 영화는 싫어’ 하며 짐짓 점잖은 체 풀어놓는 말들도 여성이라 싫다는 느낌 외에 구체적인 불호의 이유를 대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싫어요’를 눌러야겠다면 차라리 한번 더 ‘젠더 스와프’적으로 영화를 비판해보는 건 어떨까. 왜 금발에 잘생긴 남자는 멍청해도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지, 미치광이 악당은 또 왜 못생긴 남자 ‘너드’여야 하는지 같은 지적 말이다.

 

물론 양심에 손을 얹고 잠깐만 생각해보면 일상적으로 ‘굴욕 없는 민낯’이나 ‘착한 몸매’를 따지는 쪽과 그러한 품평에 내몰리는 쪽이 대개의 경우 누구였는지 금세 깨달을 수 있다.

유령보다 지독한 ‘여자라서’의 망령

'고스트버스터즈'

더 재밌을 수도 있었던 가능성

모자람 없이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후반부로 가면서 지나치게 급격히 전개되는 이야기는 집중력을 분산시킨다. 고택에서 살인마 여자 유령이 등장하는 도입부는 괴기스러우면서도 신비롭고, 괴짜 주인공들이 하나씩 소개된 뒤 모여 고스트버스터즈로 거듭나는 중반까지는 크게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영화의 가장 큰 위기 상황이라 할 수 있는, 유령을 풀어 뉴욕을 파괴하려는 악당의 시도와 그것을 해결하는 4인조의 활약은 지나치게 급작스럽게 전개된다.

 

특수효과는 후반부로 갈수록 다소 과해져 피로하다는 느낌을 준다. 영화의 완성도를 놓고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건 언제나 합당한 일이지만, 그 이유를 오로지 여자들에게 돌리는 건 비겁한 손가락질이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각 배우의 연기톤이나 개그 스타일이 싫을 수는 있지만 그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싫다면 이미 당신은 성차별주의자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스트버스터즈'는 훌륭한 배우들을 모아 각자의 매력을 끌어내는 데 상당 부분 성공했다. 그러나 이야기의 흐름과 편집의 완성도 면에서는 일정 부분 실패했다. 엔딩크레디트가 다 올라간 다음 나타난 쿠키 영상은 속편을 예고한다.

 

여러 논란을 차치하고 ‘더 재밌어질 수도 있었던 영화의 가능성’을 속편에서 확인해보고 싶은 바람이다.

 

글. 박보미

2016.08.2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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