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추천 도서, 영화 읽는 맛

[컬처]by 맥스무비

우연히도 모두 모험의 이야기다. 9월 초 개봉하는 '고산자, 대동여지도' '거울나라의 앨리스' '로빈슨 크루소'를 하나로 꿰는 공통의 열쇳말은 ‘모험’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으로 원작 소설을 지닌 이 영화들에서 주인공은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곳을 찾거나 누구도 해 본 적 없는 일을 이룬다. 영화를 길잡이 삼아 각 영화의 원작 및 관련 도서를 추천한다. 여름의 끝에서, 갈망하고 성장하고 생존하고 전복하며 모험에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을과 영화를 예습하자.

성장하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

9월 추천 도서, 영화 읽는 맛

'거울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 펭귄클래식코리아

혼돈은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루이스 캐럴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 출간 7년 후 발표한 '거울 나라의 앨리스'(원래 제목은 '거울 속으로'였다.)는 ‘속편인 듯 속편 아닌 속편 같은’ 속편이다. 앨리스가 등장한다는 사실 말고는 내용 면에서 별 관련성이 없기 때문이다. 말하는 토끼를 따라 나선 땅속 이상한 나라 모험에서 돌아온 지 여섯 달째, 앨리스는 이번엔 방 안의 거울 속으로 뛰어들어 거울 나라 모험에 나선다. 시간과 방향이 반대로 움직이는 거울나라에선 머무름이 곧 뒤처짐이다.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선 최소한 두 배로 빨리 움직여야 한다. 숨가빠하는 앨리스에게 거울나라를 지배하는 ‘붉은 여왕’은 “같은 장소에 있으려면 네가 달릴 수 있는 만큼 힘껏 계속 달려야 한단다. 다른 데 가고 싶다면 최소한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해!”라고 종용한다. 붉은 여왕의 강압적인 질서에 맞서 성장해가는 앨리스의 모습이 12장의 소설에 펼쳐진다. 독자의 혼돈을 즐기는 캐럴답게, 실컷 이야기를 펼쳐놓고는 맨 마지막에 가서 짓궂게도 “여러분은 누가 꾼 꿈이라고 생각하나요?”라고 재차 물으며 혼란을 가중시킨다. 팀 버튼의 동명 영화는 소설을 원작 삼고 있지만 사실 전혀 다른 이야기다. 앨리스는 과거를 바꾸기 위한 시간여행을 떠난 앨리스의 여정이 화려한 색감과 기괴하면서도 환상적인 표현 속에 펼쳐진다. “‘불가능’한 것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라고 말하는, 굳세고 용감한 앨리스의 면모가 영화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강조된다. 9월 7일(수) 개봉.

갈망하다 '고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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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박범신 | 문학동네

박범신은 자신의 소설 '촐라체'(2008) '고산자'(2009) '은교'(2010)를 일러 스스로 ‘갈망 3부작’이라고 명명했다. 각 소설에서 빙벽을 향한, 지도에 대한, 노년을 흔든 욕망은 단순한 바람이라기보다는 삶을 결정적으로 움직이는 유인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소재를 다루는 세 작품이 ‘갈망’으로 묶이는 건 합당해 보인다. 소설 '고산자'는 김정호가 지닌 지도에 대한 갈망의 근원에 어린 시절 겪은 아버지의 죽음이 놓여 있다고 주장한다. 홍경래의 난을 진압하러 산속에 들어갔다가 얼어 죽은 채로 발견된 까닭이 엉터리 지도 때문이라고 여긴 김정호에게 정확하고 실용적인 정보를 담은 지도 제작은 필생의 목표가 됐다는 설명이다. 아버지에게서 출발한 갈망은 나아가 조정이나 양반 아닌 평범한 백성, ‘사람’을 살리는 지도라는 목표로 발전한다. “땅의 흐름과 물의 길을 잘 몰라 떠도는 사람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합리적이면서도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바람이 갖은 고비를 넘기면서도 그의 걸음을 이끈 갈망의 요체였다. 강우석 감독의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제작기에 초점을 맞춘다. 강우석 감독 특유의 뜨거운 연출이 배우 차승원의 인간미를 어떤 방식으로 끄집어내, 얼마만큼의 온도로 김정호의 갈망을 그려낼지가 관람 포인트다. 9월 7일(수) 개봉.

생존하다 '로빈슨 크루소'

당대의 솔직하고 충실한 기록이거나, 제국주의의 본의 아닌 자기고발이거나. 영국 작가 다니엘 디포는 무인도에서 4년 반을 살다 구조된 선원 알렉산더 샐커크의 실화에 영감을 받아 1719년 '요크 선원 로빈슨 크루소의 기이하고 놀라운 생애와 모험'이라는 긴 제목의 책을 출간한다. 익히 알려진 '로빈슨 크루소'다. 디포는 감상적인 인간승리 서사에 집중하는 대신, 생존이라는 목표에 철저히 부합한 실리적이고 경제적인 인간형을 구축한다. 이른바 ‘근대적인 인간’의 상을 처음으로 소설을 통해 그려냈다고 평가받는 지점이다. 그러나 디포의 서술은 후대의 문인과 사상가들에게 그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지주의적인 시각’을 비판받았다. “로빈슨 크루소는 영국 제국주의의 진정한 원형”이라는 제임스 조이스의 분석이나, “머나먼 비유럽 지역에 자신을 위한 영지를 건설하는 한 유럽인의 이야기”라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적이 단적인 예다. 백인 로빈슨 크루소는 스스로를 조난당한 섬의 영주이자 왕으로 칭하고, 흑인 원주민들을 야만인으로 부르며 자신에게 복종시켜 위계질서를 만들고자 시도한다. 한 원주민에게는 자신이 그를 금요일에 만났다는 이유로 ‘프라이데이’라고 이름붙이고는 철저한 지배-피지배 관계를 꾀한다. 자신의 언어와 종교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계몽된’ 유럽인에게선 어떠한 성찰도 찾아볼 수 없다. 실제로 디포는 남미 해안 지역, 특히 소설의 배경인 오리노코강 유역 영토를 식민지로 확보하자고 강력히 주장했다. 생존에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모조리 배척하고 자신의 관점만 강요하는 디포의 인간형은 각자도생의 과업을 안은 지금 이곳의 삶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귀여운 동물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인간과 자연의 어우러짐을 그린 애니메이션 '로빈슨 크루소'는 물론, 원작의 심각함은 덜어낸 영화다. 9월 8일(목)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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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크루소' 대니얼 디포 | 열린 책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미셸 투르니에 | 민음사

전복하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로빈슨 크루소'의 제국주의적 관점에 대한 비판은 1967년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의 첫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하 '방드르디')이라는, 창조적이고 전복적인 결과물을 낳는다. 지난 1월 타계한 프랑스 소설가 투르니에의 대표작 '방드르디'는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원형 삼아, 요즘 용어를 쓴다면 일종의 부분적인 ‘미러링’을 시도한 소설이다. 본래 크루소의 1인칭 시점이었던 서술 방식이 프라이데이, 즉 방드르디(Vendredi, 프랑스어로 금요일이라는 뜻)의 1인칭 시점으로 완전히 뒤집히지는 않았지만 소설의 3인칭 시점은 방드르디와 크루소의 관계를 보다 중립적이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환기시킨다. 이름의 뜻만 두고 보면 '로빈슨 크루소'과 같은 명명이지만 '방드르디' 속 방드르디는 디포의 소설 속에서와 달리 스스로 생각하고 제 의지에 따라 판단하며 움직인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방드르디를 제목에 내세워 강조한 이유다. 크루소 역시 방드르디에게 문명을 전수하는 일을 포기하고 방드르디를 따라 수염을 기르거나 일광욕을 즐기며 다른 삶의 방식을 받아들인다.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경계를 비판한 구조주의 인류학의 창시자 레비스트로스의 영향을 받은 그답게, 투르니에는 자신의 철학을 독특한 소설적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동등한 인격과 저마다의 문화를 지닌 사람으로서 크루소와 방드르디가 맺는 관계는 공감 대신 몰이해로 일관하며 공존 대신 복종을 강요하는 모든 권력에 대한 풍자이다.

 

글 박보미 | 사진 김미애

201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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