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모 브리짓 존스가 한국에서 아기를 낳았다면?

[컬처]by 맥스무비

43살, 미혼, 임신, 아이 아빠 후보는 두 명. 그녀의 이야기가 한국에서 퍼졌다면?

비혼모 브리짓 존스가 한국에서 아기를

물론 상단의 글과 댓글은 허구다. 하지만 현실에선 위처럼 인터넷 게시글 속에서 조리돌림 당하며 각종 게시판을 뜨겁게 달굴 가능성이 높다.

 

이 설정은 12년 만에 돌아온 '브리짓 존스' 시리즈 3편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9월 28일 개봉) 속 브리짓 존스(르네 젤위거)의 현재 상황이다. 결혼하지 않은 43세 직장 여성으로서 임신을 한다. 아이의 아빠가 옛 애인 마크 다시(콜린 퍼스)인지 현 ‘썸남’ 잭 퀀트(패트릭 뎀시)인지 확실치 않다.

 

똑같은 상황에 처한 한국의 여성을 그린 영화나 드라마라면 불안과 절망에 휩싸일 테지만, 브리짓은 기죽지 않는다. 영화는 사랑스런 대리인 브리짓 존스를 통해 연애와 결혼, 임신에 대한 여성들의 이상적인 판타지를 전한다.

비혼모 브리짓 존스가 한국에서 아기를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의 미혼 임신부 브리짓(르네 젤위거, 왼쪽)은 샤저(샐리 필립스) 등 좋은 친구들에게 지지와 응원을 받는다. 사진 제공 UPI코리아

평범하지만 매력있는 여자 주인공이 멋진 남자들에게 동시에 사랑받는다는 연애 판타지는 로맨스 영화에서 익숙한 설정이다.

 

추가로 브리짓은 30대에 갖지 못한 날씬한 몸을 40대에 비로소 갖게 됐으며 좋은 직장과 아늑한 집도 가진 ‘골드미스’다. 늘 타이밍이 어긋났던 워커홀릭 변호사이자 전 애인 다아시(콜린 퍼스)는 그녀를 여전히 사랑하는데다 이혼 소송 중이니 이번에는 타이밍도 나쁘지 않다. 록페스티벌에서 만나 하룻밤 사랑을 나눈 남자는 알고 보니 연애 어플리케이션으로 굴지의 성공을 이룬 억만장자 CEO 잭(패트릭 뎀시). 50대 근처의 두 사람은 외모도 훌륭하다. 그러나 이는 영화의 부분적인 판타지다.

 

한국 관객의 입장에서 50대 남친의 매력적인 외형보다 더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이 영화의 진짜 판타지는 그녀의 임신을 둘러싼 스스로와 주변의 태도다. 브리짓은 임신 사실을 친구와 가족들에게 알리고, 두 명의 ‘아빠 후보’와 셋이서 함께 태교에 돌입한다. 사랑을 두고는 예전처럼 서툰 그녀이지만 임신 이후 아이에 대한 책임감을 내비치며 전에 없이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아빠 후보로 꼽힌 두 남자 역시 자신의 아이일지도 모를 아기에 대한 책임감이 충만하다. 경쟁자를 경계하며 브리짓에게 구애하려 갖은 노력을 다할망정, 아빠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아이를 임신했다 해서 결코 브리짓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이해심 많은 부모님과 든든한 친구들은 미혼인 그녀의 임신 소식에 아낌없는 축하와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다.

 

영화 속 인물들은 부모가 되는 일이 두렵고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출산과 육아에 공포를 느끼지는 않는다. 비단 브리짓 존스와 연인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40대 이상 싱글의 사랑이 다수의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처럼 음험하게 왜곡된 모습으로 그려지지도, 미혼 여성이 아이를 갖는 일이 최근 어떤 한국 영화에서처럼 변심한 남자의 발목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그려지지도, 아이 아빠 후보가 두 명이라고 해서 여성을 도덕적으로 단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 남녀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여전히 차별적인 인식부터 아이를 낳아 기르기에 불안하기만 한 사회상까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한국의 관객들에게 브리짓의 임신과 출산에 내려진 축복은 이 곳에선 상상만으로도 사치다.

비혼모 브리짓 존스가 한국에서 아기를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속 브리짓(르네 젤위거, 가운데)은 임신한 아이의 친부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두 명의 후보인 마크(콜린 퍼스, 왼쪽), 잭(패트릭 뎀시, 오른쪽)과 함께 태교 수업을 듣는다. 사진 제공 UPI 코리아

따라서 임신과 결혼, 신구 세대의 갈등 같은 동시대의 문제를 영리하게 건드린 이 영화는 한국의 관객에게 ‘먼 나라의 판타지’로 들릴 수 있다. 사랑스럽게 나이 들어 행복하게 사랑받는 브리짓을 통해 메마른 연애 감정을 ‘대리만족’하는 동시에, 연애에 당당하고 임신에 행복한 그녀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라면 그저 희화화되거나 음울하게 그려졌을 중년 여성의 연애, 고통스럽고 우울하기만 했을 미혼 여성의 임신을 주변인의 조력과 스스로의 성숙을 통해 유쾌하고 밝게 그린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는 불가능했을 영화다.

 

그렇다고 영화가 한국 관객들에게 허허로운 부러움만 남긴다면 지나치게 씁쓸한 결론일 것이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는 한국의 40대 여성들에겐, 혹은 그 미래가 곧 다가올 2030여성들에게 충분히 재밌는 로맨틱 코미디다.

 

로맨스 영화의 명가 워킹타이틀이 '어바웃 타임'(2013)과 '사랑에 대한 모든 것'(2014) 이후 오랜만에 내놓은 이 로맨스는 15년 전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로 30대의 브리짓 존스, 마크 다시와 처음 만나 동시대를 보낸 기성 세대는 물론 콜린 퍼스의 매력을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2015)의 ‘슈트 입은 미중년’을 통해 처음 접한 젊은 관객이든 두루 즐길 수 있을만큼 유쾌하고 즐겁다.

 

중년의 사랑이 뭐가 그리 달콤하고 재밌겠냐고? 천만의 말씀, 15년 전 그대로(옷 사이즈는 줄었지만) 사랑스러운 실수투성이 브리짓 존스와 무뚝뚝하지만 불쑥 자기도 모르게 달콤한 사랑 고백을 꺼내는 마크 다아시, 전편의 다니엘 클리버(휴 그랜트)보다는 훨씬 선하면서도 젊은 감각을 지닌 잭 퀀트의 얽히고 설킨 ‘친부 찾기’ 소동극은 로맨스로서도 코미디로서도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준다.

 

시리즈의 고유 넘버인 옛 명곡 ‘All by myself’부터 카에오로 출연하는 에드 시런의 2016 그래미어워드 ‘올해의 노래상’ 수상곡 ‘Thinking Out Loud’, ‘악동’ 이미지로 사랑받는 영국 가수 릴리 알렌의 ‘Fuck You’, 싸이의 ‘강남스타일’까지 삽입곡도 폭넓은 세대의 관객을 아우를 만하다.

 

여성들의 일상을 녹여내 호평받은 시리즈답게 이번에도 나이 들어가면서 여성들이 느끼는 일과 사랑에 대한 고민을 자연스레 담아낸 데는 여성 연출자, 각본가의 공이 크다. 1편을 연출하고 2편에선 잠시 손을 뗀 샤론 맥과이어 감독이 녹슬지 않은 연출력으로 복귀했다. 2편 역시 여성 감독인 비번 키드론이 연출한 바 있다.

 

이로써 브리짓 존스는 메이저 영화사가 만든 시리즈 영화 가운데 세 편 모두 여성 감독이 연출한 첫 번째 영화가 됐다. 소설 '브리진 존스의 일기'를 쓴 소설가 헬렌 필딩과 브리짓 존스의 산부인과 주치의로 출연하기도 한 배우 엠마 톰슨은 각본가 댄 마저와 함께 시나리오를 썼다. 앞서 두 편이 헬렌 필딩의 소설을 영화화한 반면, 이번에는 영화를 위해 온전히 새로 창작한 이야기다. 영화 내용을 책으로 옮긴 소설은 다음달 11일 영국, 미국 등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이 영화가 2016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여성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당신은 ‘자궁 나이’와 상관없이 사랑해도 괜찮다.” 브리짓 존스의 귀환을 두 팔 벌려 환영하고픈 이유다.

 

by 박보미

2016.09.3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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