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영, 어떤 옷도 입을 수 있는 몸

[컬처]by 맥스무비
이유영, 어떤 옷도 입을 수 있는 몸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의 민정은 천진하면서도 의뭉스러움을 가득 품은 인물이다. 민정을 연기한 이유영은 특유의 신비로운 이미지로 극중 인물들과 관객을 사로잡는다. 사진 영화제작전원사

홍상수 감독의 열여덟 번째 장편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는 그야말로 알 수 없는 여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민정이란 이름의 그녀는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연남동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와 술을 마시고 어떤 이야기들을 하거나 숨긴다.

 

‘내 앞의 당신은 내가 알던 당신인가, 과연 당신을 누구라고 확언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할까’라는 물음은 영화의 마지막까지 지속된다. 그리고 그 물음은 영화 속 민정의 남자친구 영수(김주혁)에게도, 민정과 영수를 지켜보는 관객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다.

 

마치 담벼락에 가볍게 올라앉는 고양이처럼 부드럽고 날카롭게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의 캐릭터들과 스크린 밖 관객들을 동시에, 마치 홀리듯 이끌고 간 민정은 대체 누구일까. 수많은 답들 중 정답에 가장 가까운 해답을 찾는다면 그것은 아마 민정을 연기한 배우 이유영이 아닐까.

이유영, 어떤 옷도 입을 수 있는 몸

2014년은 이유영이 관객에게 얼굴을 알린 해다. <봄>에서는 누드모델이 되어야 했던 여인, <관상>에서는 치마폭에 비수를 숨긴 설중매로 등장해 또렷한 인상을 남겼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2014년 가을, 조근현 감독의 <봄>을 통해 관객들에게 얼굴을 알린 배우 이유영은 지난 2년간 변화무쌍한 행보를 선보였다. 숨조차 편히 쉬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오롯이 스스로의 움직임으로 시대를 통과해야했던 여인의 몸은 두 편의 작품을 통해 전혀 다른 부피와 질감으로 구현되었다.

 

불과 6개월의 차이를 두고 개봉한 <봄>과 <간신>을 통해 비슷하지만 또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 이유영은 작품 속 역할의 가장 깊은 곳으로 뛰어드는 배우다. 그가 끝을 모르는 우물과 같은 공간 안에 자리한 덕에 우리는 이유영이라는 배우의 인상 대신 ‘누드모델이 되어야 했던 민경’과 ‘치마폭에 비수를 숨긴 설중매’의 또렷한 잔상을 간직할 수 있었다.

 

그 간극은 아찔할 정도로 강력했고 작품의 누구보다 인상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낸 이유영에게 밀라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52회 대종상영화제 신인여자배우상 등 2015년 신인상 트로피들이 별처럼 쏟아지기도 했다.

이유영, 어떤 옷도 입을 수 있는 몸

이유영은 2015년 <그놈이다>에서 죽음을 예견하는 여인으로 등장해 서슬 퍼런 눈빛부터 공포에 질린 떨림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이후 출연한 <그놈이다>(2015)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죽음을 예견하는 시은을 연기한 이유영은 여전히 작품 속에서 고정된 인상으로는 찾을 수 없는 배우였다. 이유영은 차라리 크레딧에서 이름을 보고 짧은 탄성을 선사하는 배우에 가깝다. 얼굴을 지우고 역할에 몸을 숨기는 일에 능하다는 것은 이유영이 배우로서 어떤 옷도 입을 수 있는 몸을 만들어놓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다른 이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민정을 연기한 이유영은 끝내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고 민정 그 자체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앞으로 우리가 이유영이라는 배우를 만날 순간마다 우리는 그녀를 더 잘 모르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모름은 어쩌면 배우가 관객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이유영, 어떤 옷도 입을 수 있는 몸

글 진명현(독립영화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2016.12.1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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