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인형이 아니다" 웨딩드레스 거부하는 신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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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성평등 의식 상승'과 '실용주의' 맞물려 웨딩드레스 대신 웨딩 정장 입는 이들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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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 팬츠를 선택해 결혼하는 신부들이 늘어나고 있다./사진=디자이너 김해연 제공

"신부 대기실에만, 인형처럼, 가만히 앉아있고 싶지 않았어요. 주체적으로 '내 결혼식'을 즐기고 싶었어요."


결혼식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흰 드레스를 입고, 신랑의 손에 의지해 조심스레 걸어가는 신부나 자칫 긴 드레스가 밟힐까 우려돼 화장실을 갈 수도, 하객들을 맞을 수도 없는 신부의 모습은 구시대적이고 비실용적이라며 흰 정장(웨딩수트·웨딩팬츠)를 입고 결혼하는 이들이 늘고 있어서다.


23일 웨딩 업계에 따르면 최근 몇년 사이 움직임이 불편한 드레스 대신 활동에 제약이 없는 흰 정장을 입고 결혼식장에 들어서거나 웨딩화보를 찍는 신부들이 늘고 있다. 조금 더 주체적으로 일생 일대의 이벤트인 '결혼'을 즐기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기존 웨딩 드레스는 드레스 전용 보정 속옷을 입고 와이어와 코르셋 등으로 몸을 타이트하게 조여 식사도 편하게 할 수 없고, 치렁치렁하고 무겁게 드레스 밑단이 내려와 화장실도 함부로 갈 수 없다.


유명 유튜버 '유트루'는 "결혼식 당일 날 물을 잘 먹지 않고, 식까지 서너 시간만 있으면 괜찮다"며 생각보단 불편함이 적다고 했지만, 불편함을 감수해야하는 건 사실이다. 만일 물을 마셔 피치 못하게 화장실을 가고 싶다면, 도우미 여러 명의 부축을 받으면서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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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루 브라이덜(Sahroo Bridal) 2020 스프링 컬렉션

이 때문에 행동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예식 예절에도 걸맞는 정장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직장인 김모씨(28)는 "'내 결혼'이고 '내 하객'인데도 웨딩드레스를 앉고 신부대기실에만 앉아있어야하는 걸 생각하니 싫었다"면서 "내년에 결혼할 예정인데, 정장을 입고 결혼하기로 했고 이미 예비 시댁 식구들과 예비 남편에게도 양해를 구해뒀다"고 말했다. 김씨는 동등한 결혼을 추구한다는 이유에서 "아버지의 손 대신 처음부터 신랑과 손을 잡고 동시입장할 예정"이라고도 설명했다.


여성들끼리 정장을 입고 식을 치른 후기를 공유하며 이를 추천하는 문화도 확산하고 있다. 한 여성은 최근 결혼식을 올리고 여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에 '수트 결혼, 엄청 편한데 같이 용기내보자'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정장을 입고 결혼을 하니 베일에 악세서리까지 하고 커피도 마시고 화장실도 가고 편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장을 입고 결혼하는 게 금전적 측면에서도 유리한 부분이 있다며 "정장은 인터넷에서 16만원 정도에 구매했다"고 했다. 해당 글은 댓글만 2500여개가 달릴 정도로 많은 여성들의 공감과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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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머-안현모 부부/사진=라이머 인스타그램

위 같은 이유 등으로 연예인들도 정장을 입고 결혼식 행사를 치르고 있다. 2017년 9월 결혼한 방송인 안현모씨도 결혼식 피로연에서 수트 타입 흰 바지를 입었다. 해외서도 가수 비욘세의 언니 솔란지 노울스가 자신의 결혼식에 모던한 디자인의 웨딩 점프수트를 입어 화제가 됐다.


김해연 디자이너 겸 한국꾸띄르디자이너기술개발교육원 원장은 "처음 웨딩팬츠를 디자인했던 2016년까지만 해도 주변에서 '이걸 누가 입냐'는 반응을 보였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웨딩팬츠를 입고 결혼하는 신부들이 정말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강소영 규젤린웨딩 실장도 "최근 몇년 사이 웨딩촬영이나 피로연에서 정장(웨딩 수트·웨딩 팬츠)을 입는 이들이 급격히 늘었다"며 "이전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양성평등 담론에 익숙한 세대가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면서 일어난 변화로 해석했다.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 연구소 교수(여성문화연구소 대표)는 "여성들의 경제적 조건이 높아지면서 성평등 의식이 상승했고, 여성들이 드레스를 아름답게만 바라보던 과거의 미적 의식에도 변화가 있던 것 같다"며 "이전엔 결혼은 현실과 동떨어진 낭만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엔 현실화가 돼 허례허식이 사라지고 좀 더 실용적으로 변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재은 기자 jennylee11@mt.co.kr



2019.11.2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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