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의 여군이 20억의 은밀한 제안을 해왔다

[테크]by 머니투데이

[편집자주] IT 업계 속 '카더라'의 정체성 찾기. '이진욱의 렛IT고'는 항간에 떠도는, 궁금한 채로 남겨진, 확실치 않은 것들을 쉽게 풀어 이야기합니다. '카더라'에 한 걸음 다가가 사실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는 게 목표입니다. IT 분야 전반에 걸쳐 소비재와 인물 등을 주로 다루지만, 때론 색다른 분야도 전합니다.

[페북 카톡서 미군 가장해 접근후 금전 요구…이성적 감정 악용해 피해자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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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한 여성에게서 페이스북 친구 신청이 왔다. 프로필을 슬쩍 보니 미국 캘리포니아주 출신에 현재 거주지는 시리아 다마스쿠스.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들이 보이길래 여군이려니 했다. 어차피 눈팅만 하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공간이었기에 별 생각없이 친구수락을 했고 잊고 있었다.


신세 한탄하던 그녀에 측은지심…500만달러 중 40%를 준다고?


며칠 전 페이스북 메신저로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외국인들과의 페이스북 교류는 예전에도 몇차례 경험이 있어 자연스레 대화에 응했다. 그녀는 번역기를 돌린 듯한 어색한 한글로 자신을 소개했다. 이름은 카스트로 킴. 32살에 미혼이고 시리아 파병 군인이라고 했다.


신세 한탄으로 이어졌다. 본인은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이 8살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형제도 친척도 없는 외톨이란다. 11월에 한국으로 와서 민간인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필요하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믿을 사람이 나뿐이란다. 경계심이 살짝 들었지만, 측은한 맘이 앞섰기에 일단 얘기를 들어봤다.


요지는 이렇다. 시리아에서 작전중 탈레반의 돈 가방을 뺏어 500만달러가 생겼는데, 받아서 보관해 줄 수 없냐는 것. UN의 감시 때문에 본인 계좌로 보내기 어려운 돈이라고 했다. 이 모든 내용은 비밀로 해야 하고 40%를 내 몫으로 준다고 했다. 무슨 소린가 싶어 잠시 멍한 사이, 그녀는 달러로 가득찬 돈 가방 사진 2장을 보냈다.


사진을 본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잊고 있던 5년전 같은 순간이 오버랩됐다. 사기당할 뻔한 기억이었다. 그때와 같은 사진이었다. 흐릿한 화질마저 그대로였다. 당시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여군이었는데, 그 역시 불우한 사연을 구구절절 늘어놓으며 동정심을 유발했다.


수백만달러의 돈가방을 획득했다며 보관해주면 돈을 나눠준다는 내용도 같다. 돈 가방을 보내려면 통관 수수료가 필요하다며 1500달러를 요구하길래 계정을 차단했었다. 이번에도 결론은 뻔했다. 이름·주소·전화번호 등 상세정보를 보내주면 돈을 요구하는 수순이기에 그녀가 보낸 이메일을 마지막으로 대화를 끊었다. 이메일 마지막 문구를 보곤 헛웃음이 나왔다. '사랑하는 카스트로 킴으로부터'는 무슨.


"나 미군이야" 신뢰감 형성 후 이성적 접근…수백에서 수천만원 뜯긴 피해자 속출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국내에 유입된 이 사기 수법은 '로맨스 스캠'으로 불린다. 로맨스와 신용사기를 뜻하는 스캠(Scam)이 합쳐진 말이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등 SNS(사회관계망서비스)상에서 특정 직업군이나 미모의 이성으로 가장해 대상을 물색한다.


군인이나 의사 등 신뢰가 가는 직업으로 신뢰감을 형성한 후, 호감이 가는 외모로 감정을 흔들어버린다. 피해자의 관심사에 따라 사진이나 글을 공유하며 친밀감을 형성하는데, 이 과정이 수개월까지 지속되기도 한다. 레퍼토리도 다양하다. 파병 지역에서 죽기 싫다며 대체휴가 비용이 필요하다거나, 한국에 들어가서 결혼을 하자며 항공비를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범죄자들의 국적은 나이지리아나 라이베리아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물가가 싸고 IT(정보기술) 환경이 어느 정도 갖춰진 태국, 인도네시아 등지를 거점으로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달엔 로맨스 스캠 조직에 가담해 1억3000만여원을 뜯어낸 라이베리아 국적의 20대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다소 황당하고 허술한 수법에 누가 속을까 싶지만 의외로 피해자가 적지 않다. 최근까지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를 뜯긴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동해에서는 이들 사기집단에 속아 6000만원을 입금한 피해자도 있다. 전문가들은 먼저 SNS에 개인정보 공개범위를 제한하고, 무분별한 친구 추가는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누구나 자신은 당하지 않을거라 생각하지만 막상 닥치면 빠져나가기 어렵기 때문에 사전 차단이 최선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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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으로부터 돈 가방을 확보했다면서 보낸 사진.

이진욱 기자 showgun@mt.co.kr

2020.10.1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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