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 "히트곡 내고 싶다는 어리석음 깨닫고 '내 자리' 다시 찾아"

[컬처]by 머니투데이

37년만의 솔로 음반 '문' 낸 김창완…“말끔한 하모니에 지쳐…발가벗은 민낯 보여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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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만에 솔로 음반 '문'을 낸 가수 김창완. 그는 \"새 음반을 내고 나서 나로부터 멀어진 내 자신을 다시 찾은 느낌\"이라며 \"시간에 대한 정의나 질감도 새롭게 느꼈다\"고 했다. /사진=김휘선 기자

그의 새 음반 ‘문’(門)의 타이틀곡 ‘노인의 벤치’를 듣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어떤 무력감을 안겨준다고 해야 할까. 그 순간 심장도 멎고 판단도 멈춘다. 듣는 이를 그렇게 만들었듯, 들려주는 이도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노래를 ‘부르지’ 않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장 낮은 저음의 읊조림은 ‘나’에게만 속삭이는 유일한 독백 같고, 그 목소리에 동행하는 기타도 6번 줄의 뮤트로 제소리를 죽인다. 어떻게든 굉음을 만들려는 소리 천국의 시대에, 이런 음악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산울림 2집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들었을 때 그 신선하고 독특한 질감의 음악에서 느꼈던 충격과 파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기타가 있는 수필’ 이후 37년 만에 내놓은 솔로 앨범은 ‘김창완은 누구이고 그의 음악은 무엇인가’를 되묻게 했다.


60대 후반의 뮤지션이 건넨 음악은 적응이나 협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노인’이 마술처럼 엮은 실험은 우리를 또 긴장의 세계로 안내한다.


“‘노인의 벤치’를 처음 만들어놓고 보니 유치해서 발표하기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낸 아이디어가 제 목소리로 공기의 흐름을 만들어서 ‘노인의 심정’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였어요. 그러려면 소리를 한없이 낮춰야 했죠. 제가 낼 수 있는 가장 낮은 저음을 찾아 했더니 비로소 색깔 있는 ‘노래’가 되는 것 같았어요. 음이 너무 낮아 마이크도 소리를 담지 못해 제 목에 직접 마이크를 대고 떨리는 소리 그대로 잡았어요. 그제야 발표할 용기가 생겼죠.”


목소리와 기타만의 최소 구성으로 입힌 ‘맨살’과 ‘날 것’의 향연은 수록곡 대부분에 이어져 있다. 기타 조율이 10분의 1 정도 약간 어긋나 보이는 삐딱함도, 보컬의 생소리가 있는 그대로 노출되는 약간의 부끄러움조차 모두 이 ‘작품’의 소재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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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음반 수록곡 '시간'에 쓰인 코드 진행이 이색적이라고 하자, 김창완이 직접 시범을 보이며 \"사랑의 어느 순간에 가슴이 철렁하는 느낌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사진=김휘선 기자

14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만난 김창완은 “10곡 중 6곡은 한 번에 모두 불렀다”며 “꾸미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음악적 충격은 ‘시간’에서 정점을 찍는다. 구성의 형식에서 스토리의 내적 질감까지 하나로 연결된 유기적 파장은 ‘노인의 벤치’로 이미 멎은 심장의 정상 복귀를 만류하는 듯하다.


‘아침에 일어나 틀니를 들고 잠시/어떤 게 아래쪽인지 머뭇거리는 나이가 되면/그때 가서야 알게 될 거야 슬픈 일이지/사랑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얼마나 달콤한지 ~/그걸 알게 될 거야~’(‘시간’ 중에서)


에세이 같은 장문의 가사에 드리운 서사 한쪽도 그냥 흘겨 넘길 수 없는 데, 이 짜릿한 스토리를 더욱 긴장으로 몰아넣는 역할은 역시 반주다. E코드에서 시작한 ‘시’음이 ‘도#’이라는 안정적 코드로 이행하지 않고 ‘도’라는 반음으로 넘어가면서 불편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왜 이런 하모니를 썼냐고 물어보면 갑자기 다가온 ‘철렁함’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답할 수밖에 없겠네요. 누군가를 사랑했거나 미워한 경험은 겉보기엔 모두 사랑 이야기이고 배반의 이야기 같아도 그걸 흑백으로 전환하거나 차원을 달리 해보면 그 시간이 휘청거리고 가슴이 철렁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시간에 대한 그의 해석은 농밀하고 복잡하다. 가사처럼 시간은 앞으로도 가고 뒤로도 가고 멈춰 서 있기도 한 뒤엉킨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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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대한 그의 정의는 수록곡 '시간'에서 현실적 사랑을 얘기하고, 타이틀곡 '노인의 벤치'에서 동화 속 사랑을 그린다. 시간의 문은 그렇게 미래로 가거나 과거로 회귀할 만큼 뒤엉켜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시간에 대해 새로운 질감을 느꼈어요. 내 시간에 당신이 침범하고, 당신의 시간에 내가 훼방 놓는 경우는 흔한데, 같은 시간에 빠져 당신과 나의 시간이 서로 흐르고 있다는 느낌은 아예 이상한 느낌이거든요. 그것은 어떻게 보면 끔찍하고 내가 사라지는 경험이에요.”


‘시간’에선 동화책을 던져버려야 너의 진짜 사랑을 알게 될 것이라는, ‘있는 모습 그대로 날 기억해달라’는 주문이 현실로 각성된다면, ‘노인의 벤치’에선 다시 동화의 꿈으로 시간이 재소환된다.


“‘노인의 벤치’에선 자신의 인생이 어디서부터 서술돼야 할지 잘 모를 정도로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가 불분명해요. 때론 자기 모습과 동떨어진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죠. ‘~그렇게 우린 만났어 세월의 흔적처럼/노인의 벤치에 앉아서/날 보고 빙긋 웃었지 나도 그녈 보고 웃었어/주름을 볼 용기가 없었으니까~’하는 가사는 제가 쓴 일종의 동화인 셈이에요. 동화를 통해 꿈꾸던 사랑을 쥐어 주고 싶었다고 할까요?”


김창완은 “내가 문을 어떻게 여느냐에 따라 미래(동화)나 과거(경험)의 문이 될 수 있다”며 “시간이 이렇게 부직포 같은 존재일 줄은 나도 몰랐다”고 했다.


‘시간의 문’이라는 음반 주제는 깨달음에서 나왔다. 얼마든지 튠(tune, 조율)이 가능한 세상에서 단조롭고 어색한 소리를 내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자문, 여전히 히트곡을 내고 싶은 어리석음 등이 발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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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만의 솔로 음반 '문'에서 김창완은 '맨발로 걷는 음악 산책' 같은 느낌으로 수록곡 대부분을 단 한번에 녹음하는 등 어색함이나 실수조차 '날 것'의 재료로 사용했다. /사진=김휘선 기자

“픽션과 다큐를 가르는 척도는 제 음악에서 ‘단 한 번의 레코딩’이었어요. 두 번 레코딩해서 포장(픽션)하지 말고 어색함이나 부족함, 실수도 그날의 운명이라고 여기고 현장 그대로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말끔한 하모니에 귀가 지쳐 있던 상태라 맨발로 걷는 음악 산책 같은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었죠.”


음반은 ‘시간’이라는 큰 주제 뒤에 숨어있는 사랑과 위로의 테마에도 불을 비춘다. ‘부질없는 약속은 잊고 너만 행복해라’(먼길)고 위로하고 ‘글씨나무가 자란다 사과를 써서 붙여라’(글씨나무)고 아이들의 꿈에 동행한다. 힘든 인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의미가 담긴 ‘자장가’는 이 음반을 낸 진짜 이유다.


김창완은 “내가 아직 히트곡을 내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고 나에게 젊은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달으면서 ‘노인’이라는 사실도 상기했다”며 “나로부터 한동안 멀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음반을 계기로 내 자리로 다시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창완의 ‘시간의 문’에 같이 들어가고 싶어졌다.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2020.10.1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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