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 아닌 김봉진을 샀다…DH 5조원 베팅의 내막[이진욱의 렛IT고]

[테크]by 머니투데이

[편집자주] IT 업계 속 '카더라'의 정체성 찾기. '이진욱의 렛IT고'는 항간에 떠도는, 궁금한 채로 남겨진, 확실치 않은 것들을 쉽게 풀어 이야기합니다. '카더라'에 한 걸음 다가가 사실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는 게 목표입니다. IT 분야 전반에 걸쳐 소비재와 인물 등을 주로 다루지만, 때론 색다른 분야도 전합니다.

[국내 2위 요기요 팔고 배민 택한 DH…김봉진 리더십 미래 청사진에 베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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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육참골단(肉斬骨斷).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한 격이다.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는 요기요 대신 배달의민족(배민)을 택했다. 배민을 가지려면 DH한국법인(DH코리아)을 팔라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다소 무리한 기업결합 승인조건을 받아들였다. 척박한 한국시장에서 국내 배달앱 시장 2위 '요기요'를 키운 한국법인을 내치면서까지 경쟁사였던 배민을 품으려는 이유는 뭘까. 그속엔 '진짜' 뼈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이사회 의장이 있다.


김봉진에 亞 사업 전권 준 DH…합작사 의장돼 12개국 사업총괄


DH는 요기요 매각에 대한 아쉬움보다 김 의장과 한배를 탔다는 것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니클라스 외스트버그 DH 최고경영자(CEO)는 28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DH와 우아한형제들의 기업결합 승인은 양사와 배달 시장에 기쁜 소식"이라며 "특히 김봉진 의장을 새로운 가족으로 맞는 것이 더 기쁘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DH와 우아한형제들이 절반씩 출자해 싱가포르에 세우는 ‘우아DH아시아’의 의장 겸 집행이사(Executive Director)를 맡는다. 우아DH아시아는 '푸드판다' 등 DH의 아시아권 사업과 우아한형제들의 한국, 베트남, 일본 사업을 총괄한다. 현재 푸드판다아시아의 CEO인 제이콥 안젤레와 우아한형제들의 현 CFO겸 CSO인 오세윤 부사장도‘우아DH아시아’의 공동 대표로 선임돼 김 의장을 돕는다. 앞으로 우아DH아시아는 배달·공유주방·퀵커머스(즉시배달서비스)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DH 입장에선 한국 적장인 김 의장에게 아시아 사업의 전권을 준 셈이다. 이는 DH가 배민의 현재 가치보다 김 의장의 능력을 높이 산 결과로 풀이된다. DH는 지난해 매각 소식을 전할 당시 "경쟁이 치열한 한국 시장에서 업계 1위라는 성공을 이룬 김 의장이 아시아 전역에서 경영 노하우를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사실 DH는 독일 기업이라기보다 다국적 기업에 가깝다. 본사가 베를린에 위치했을 뿐 현지 사업도 하지 않고 있는데다, 주주들도 독일 외 글로벌 기업들로 구성돼 있다. 최대 주주는 남아공의 네스퍼스그룹(22%)이며 이외 영국 투자사와 미국계 사모펀드 등이 대부분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주요 경영진 역시 독일인은 전무하고, 유럽과 미국인이 대부분이다. 외스트버그 CEO 역시 스웨덴 출신이다. 이쯤되면 게르만민족이라는 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글로벌 자본을 기반으로 단행한 투자와 M&A(인수합병)가 성장 동력이다. 이 때문에 매년 적자가 따라왔다. 2019년 매출이 14억5550만 유로(약 2조원),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4억3000만 유로 적자였다. 다만, 시장은 DH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점친다. 최근 주가만 해도 우아한형제들 인수 발표 전보다 40% 가량 올랐다. DH는 이같은 성장 가능성을 김 의장이 입증해 주길 바라는 눈치다.


DH는 아시아 ‘푸드판다’, 중동 ‘탈라바트’ 등 20개 이상의 음식 배달 서비스 브랜드를 거느리며 50여국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주류 시장인 중국과 미국이 아닌 신흥국 위주로 사업을 확대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는 중국, 미국처럼 이미 선점된 지역보다 성장세에 접어든 동남아를 중심으로 지배력을 넓히겠다는 의도에서다. DH코리아 관계자는 "DH는 최대 시장인 북미와 중국엔 진출하지 않았다"며 "아직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신흥국 시장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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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독일 베를린에서 우아한형제들과 딜리버리히어로 M&A 논의 과정에서 촬영한 기념사진. 왼쪽부터 강석흔 본엔젤스 대표, 니클라스 외스트버그 딜리버리히어로 CEO,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김광수 우아한형제들 전 CTO. /출처=강석흔 본엔젤스 대표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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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는 DH 전체 주문량과 수익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시장이다. 그간 DH는 아시아 시장에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새로운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이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베트남 등 일부 아시아 국가들이 연간 40% 수준의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DH는 배민의 감성에 주목했다. 한국에서 입증된 김 의장의 브랜드 마케팅 능력이라면 아시아 시장에서도 충분히 먹힐 것으로 봤다. 실제 배민의 ‘B급 감성’ 마케팅은 아시아 시장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다. 지난해 6월 베트남 시장에 ‘BAEMIN’으로 진출해 1년여 만에 그랩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올초 모조품까지 탄생시키며 인기를 끌었던 세뱃돈 봉투도 한몫했다. ‘이거 엄마한테 맡기지 마’,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보지 마’, ‘아직도 세뱃돈을 받지’ 등의 메시지가 담긴 봉투는 하루에만 1000장이 넘게 팔리며 'BAEMIN'을 각인시켰다.


김 의장이 구상하는 미래 청사진도 DH와 맞아 떨어진다. 김 의장은 로봇과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다. 실내 서빙로봇 ‘딜리’를 비롯해 다양한 자율주행 로봇을 개발하며 상용화에 앞장서고 있다. 개별 가구까지 배송이 가능한 배달 로봇 대중화를 이룬다는 목표다. 또 배민은 AI 기술을 개발해 배차 최적화, 리뷰 검수 등에 도입했다. “드론, 로봇 등장은 배달음식 시장에 혁신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수차례 밝혔던 외스트버그 CEO의 전망을 김 의장은 이미 실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DH는 라스트마일 딜리버리 시장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라스트마일 딜리버리는 상품이 고객에게 전달되는 마지막 배송 단계를 의미한다. 배민은 서울에서 초소량, 즉시 배달을 앞세운 ‘B마트’ 서비스를 시작했다. 간편식과 생필품 등 2500여개 제품을 5000원부터 주문할 수 있고, 1시간 내 배송한다. 서울 지역 곳곳에 도심형 물류센터를 마련하고, 음식배달 노하우를 배달 영역 확장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 배달음식을 넘어 주문 물류 플랫폼으로 도약을 노리는 DH의 지향점과 일치한다.


이진욱 기자 showgun@mt.co.kr

2020.12.3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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