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미국에 보낸 '1달러'…1만명 생계가 폈다

[비즈]by 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편집자주] 포스트 코로나 시대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 국가로 발돋움 하기 위해서는 국부의 근간인 기업의 기운(氣)을 끌어올려(UP)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의 발목을 잡는 불필요한 규제를 줄이고 기업가 정신을 함양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머니투데이는 한국의 기업가들과 기업가 정신의 뿌리 찾기에 나섰다.

[기업(氣-UP)하기 좋은 나라]<3>외국의 해외기업 유인책

삼성은 어쩌다 베트남의 '최애' 기업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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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만 해도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고 하면 중국이었지만 지금은 베트남을 따라올 수 없습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중소기업 A사 대표 김모씨의 전언이다. A사는 2000년대 초반 중국에 공장을 지었다가 10년만에 베트남으로 이전했다. 이미 중국에 투자한 돈을 생각하면 이전을 결정하기 쉽지 않았지만 베트남의 조건이 워낙 좋았다.


김 대표는 베트남행을 결단했던 당시를 떠올릴 때마다 "하늘이 도왔다"고 말한다. 매출은 물론, 영업이익도 중국에서 공장을 돌릴 때보다 3배 이상 늘었다. A사가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긴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베트남은 한국 기업들이 '최애'(최고로 애정)하는 진출국으로 꼽힌다.

베트남, 과감한 稅감면·빠른 인허가 등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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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삼성공장. /박닌(베트남)=김창현 기자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인들은 베트남을 선호하는 이유가 한국의 4분의 1 수준인 인건비만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해외 기업 유치에 적극적인 베트남 정부의 정책이 발길을 잡아끈다는 것이다.


베트남 하이퐁에서 사업을 하는 또 다른 중소기업 관계자는 "당장은 인건비 수준도 매력적이지만 저임금 노동력을 무한정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기업인은 없다"며 "인건비 자체보다 베트남 정부에서 기업하기 좋도록 도와주는 분위기가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은 해외 기업의 현지 투자에 대해 법인세를 면제해준다. 한국에선 두세 달 넘게 걸리는 인허가도 1주일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정부가 공장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10대 그룹 계열사 임원은 "기업이 직원들에게 임금을 주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굳이 세금을 걷지 않더라도 남는 장사라는 게 베트남 정부의 판단"이라며 "정부 정책이 이런 기조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인데도 기업하기가 훨씬 좋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거치며 기업유치 눈떠…'당근' 흔드는 나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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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인도 첸나이공장에서 직원들이 차량을 조립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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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만 해도 베트남은 해외 기업에 이렇게 적극적이지 않았다. 과감한 개혁·개방을 표방하는 도이머이 정책을 1986년 채택했지만 초점은 농업에 맞춰졌다. 외국 기업의 투자 유치는 내국인과 철저하게 차별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하자 베트남은 51개에 이르던 민간자본투자 금지업종을 6개로 축소하는 등 획기적인 정책을 내놨다.


중국에 이어 아시아의 경제대국을 꿈꾸는 인도도 이맘때부터 철도 같은 인프라부터 보험·유통 등 서비스업까지 개방하면서 해외기업 유치에 나섰다. 인도 정부는 2~3년 전부터 중국에서 빠져나오는 전 세계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현지 생산량을 목표 수준까지 달성할 경우 매출 증가분의 4~6%를 인센티브로 제공하는 생산연계인센티브(PLI) 정책도 펴고 있다.

美·사우디·UAE 등 부유국도 기업유치 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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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유치를 위해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게 일부 개발도상국만의 얘기는 아니다. 최근 기업 유치 경쟁에서는 선진국이나 부유국도 예외가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입주한 글로벌 기업을 자국으로 유치하기 위해 최대 50년 동안의 감세와 고용 혜택을 앞세운 '프로그램 HQ' 정책을 내놨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초기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차 등 우리 기업에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면서 현지 공장 건설을 압박한 것도 기업 유치 정책의 일환이다.


더 나은 시장과 입지를 찾는 것은 기업의 본능이다. 세계 시장을 상대로 장사하는 글로벌 기업일수록 더 그렇다.

韓, IT 발달 등 장점…정책적 변화 노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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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가 2020년 10월20일 베트남 총리공관에서 협력 방안 논의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면 삼성전자는 베트남에 진출해 성공한 글로벌 기업으로 손꼽힌다.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의 수출액은 베트남 전체 수출액의 20%를 차지한다. 삼성전자라고 하면 베트남에서 유독 엄지손가락을 들며 국빈 대우를 해주는 이유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IT가 발달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한국도 글로벌 기업이 R&D(연구개발)센터로 탐낼 만한 조건을 갖췄다"며 "정부가 민간과 외국기업의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정책으로 손발을 맞춘다면 우리도 충분히 기업 유치의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공장 부지 717만㎡가 '1달러'…도시 운명 바꾼 기업유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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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앨라배마주 현대차 공장. /사진제공=현대차

미국 남동부 앨라배마주 주도(州都) 몽고메리시(市) 외곽에 자리잡은 현대차 생산공장(HMMA). 몽고메리는 1960년대 버스 안에서 백인에게 자리 양보를 거부했던 로자 팍스 여사의 저항을 계기로 흑인 인권운동을 촉발한 본거지로 유명하지만 현대차 공장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사양길에 접어든 섬유산업과 목축업에 의존하던 농촌의 작은 도시에 불과했다.


2005년 당시 14억달러를 투자해 연간 30만대 생산능력을 갖춘 완성차 공장의 입주는 이 소도시에 상전벽해의 변화를 몰고 왔다. 현대차 생산공장이 채용한 직원만 3000여명에 달했고 현대모비스 등 동반 진출한 협력사 직원까지 더하면 1만명 이상의 신규 고용이 이뤄졌다. 당시 현대차 직원 모집에만 2만명 이상이 몰렸다. 현대차 공장에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인구가 계속 유입되면서 몽고메리는 항구도시인 모빌을 제치고 앨라배마주 제2 도시로 부상했다.


자동차 산업에 의존했던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가 포드와 크라이슬러, GM(제너럴모터스) 등 완성차 기업들의 잇단 이탈로 '유령 도시'로 전락하는 동안 앨라배마주는 남동부주에서 실업률이 가장 낮은 '모터시티'로 거듭났다. 제대로 된 기업 하나만 끌어와도 도시 전체의 스카이라인이 바뀐다는 것을 간파한 주정부 정책이 이끌어낸 변화다.

美앨라배마 '현대차 유치' 위해 법까지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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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019년 수석부회장 시절 미국 조지아 기아차 공장을 방문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기아차

현대차 유치전에서 앨라배마주가 보인 노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외국인에게 토지소유권 이전을 금지한 주정부 헌법을 개정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주정부는 공장 부지 717만㎡를 단돈 1달러에 현대차로 넘겼다. 앨라매바주의 성공 사례를 목격한 조지아주까지 1달러에 기아차 공장(893㎡)을 유치하면서 미국에선 '1달러'가 기업 유치 전쟁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당시 주지사와 주정부 관계자들은 현대차 한국 본사까지 찾아와 기업 유치를 시도했다. 2005년 공장 준공식에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저명 인사들이 대거 출동했다. 주정부는 현대차 공장 준공 이후 주소를 한국의 현대차 울산공장 번지수와 같은 '700번지'로 배정했다. 현지인들은 이 길을 '현대길'이라고 부른다.

파격 세금 감면으로 기업 유치 사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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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생산법인(HMMA)의 프레스 공장 생산성이 2009년 경영컨설팅업체 올리버 와이먼의 조사(하버리포트)에서 토요타·혼다 등 글로벌 메이커를 제치고 북미 최고에 올랐다. 왼쪽부터 미쉘 힐 하버리포트 부사장, 존 루씨 하버리포트 파트너, 현대차 앨라배마 직원, 김회일 현대차 앨라배마 법인장이 당시 수상 트로피를 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세계 최대 경제대국 미국에서 벌어진 기업 유치전은 앨라배마주만이 아니다. 자동차 산업의 '메카' 타이틀을 뺏길 위기에 처한 디트로이트는 2005년 LG화학의 콜로라도주 자동차용 배터리 연구소에 10년 동안 법인세 감면과 연구장비 부가가치세 면제를 내걸어 연구소 이전을 이끌어냈다.


생산공장이 있는 앨라배마주로 옮겨가려던 현대차 디트로이트 기술센터도 12년 동안 세금 2200만달러(240억원)를 깎아주는 조건으로 이전을 무마시켰다. 미시간 주정부는 일본 토요타자동차에도 당시 1000만달러의 세제 혜택을 내세워 연구소를 유치했다.


파격적인 혜택을 쏟아내며 기업 유치에 올인하는 사례를 두고 당시 한국 재계에선 "평소 콧대 높은 미국이 맞나 싶다"는 말까지 나왔다.

한국은 제대로 된 입주 데이터 비교 시스템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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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이 2009년 칼럼에서 현대차의 미국시장 돌풍을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따르면 미국 중앙정부는 자국 기업과 해외 기업을 차별하지 않고 투자 혜택을 고루 제공한다. 자유무역지역이나 경제자유구역에 입주하는 외국 기업에만 우선 혜택을 주는 한국 정부와는 정책의 결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외국 투자기업에는 조세감면이나 현금 지원, 입지 지원 혜택을 주지만 국내 기업은 대상기업으로도 다루지 않는다.


미국 진출을 준비하는 한국 기업들 사이에선 50개 주의 투자 정보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 하나만 봐도 한국과는 차이가 크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역별 입지 조건과 투자 혜택을 비교하려면 한국에선 각 지방자치단체나 관련 기관의 홈페이지를 일일이 찾아서 하나씩 확인해야 한다.


재계 한 인사는 "기업 유치 혜택이라고 하면 베트남이나 동남아처럼 우리보다 뒤처진 나라를 떠올리기 쉬운데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기업 하나를 유치하기 위해 법을 개정할 정도로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재계 인사는 "일목요연한 투자정보시스템 하나 구축하지 못한 채 특혜 시비와 규제 우선주의로 일관하는 한국의 아마추어 행정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멀었다"고 말했다.


심재현 기자 urme@mt.co.kr

2021.01.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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