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술 사전』

[컬처]by 문학동네
일상으로 철학하기. 이것만큼 공감하기 어려운 말이 또 있을까요?
작심하고 앉아서 책을 들여다봐도 바로 하품이 나는 게 철학인데, 일상 속에서 철학을 한다니 전혀 공감할 수 없다 하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일상으로 철학하는 게 별거 아니라는, 아니 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미 철학을 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삶의 기술 사전』입니다. 철학은 어렵고 따분하다 생각하며 주눅 들어 있는 분, 이 책을 통해 그 유리벽을 한번 깨보시는 게 어떨까요?

일단, 가벼운 주제로 얘기를 시작해보죠.
매일 너무도 자연스레 치르는 반복적 일상에도, 어김없이 철학은 깃들어 있습니다.
바로, 먹고 마심의 문제입니다.
하루에도 서너 번 먹고 마시는 우리는, 하루에도 서너 번 철학자가 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로 말이죠.
무의식에 매몰되어 재료 상태에 머물고 있는 우리 안의 철학을, 의식의 수면 위로 끄집어내어 맛있게 요리해보기로 하죠.
『삶의 기술 사전』

『삶의 기술 사전』(안드레아스 브레너, 외르크 치르파스 지음 | 김희상 옮김)

먹고 마심이 곧 우주다?

요새 우린 먹고 마시는 문제에 아주 민감합니다.
열심히 맛집을 찾아다니기만 하는 건, 벌써 지난 유행 축에 듭니다.
이제 텔레비전에선 스타의 냉장고를 스튜디오로 싣고 와, 거기서 나온 자질구레한 식재료들로 멋진 요리를 만들어내 보이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그 레시피를 받아 적고는 짬 날 때 직접 요리를 만들어 먹어보기도 하지요.
이젠 먹고 마시기를 즐기는 사람을 탐욕스럽다고, 먹보라고 낮추어 보는 시대가 아닙니다.
좀더 맛있는 음식을 찾아내어 그것을 먹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그 느낌을 다른 이와 공유하는 데에 전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먹고 마시는 우리의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생각의 지점을 만나게 됩니다.
먹고 마심은, 일차적으로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입니다.
생명을 유지하려는 내 몸의 기본적 욕구에 따른 행위죠.
조금 나아간다면, 음식의 맛을 즐기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려는 행위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행위는 공동체의 결속과 유지와 직결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적어도 하루 한 끼는 가족 또는 지인들과 더불어 식사를 치르니까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식사 문화’라는 게 만들어졌습니다. 우리에겐 ‘밥상머리 예절’이라는 말로 더 익숙하죠.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문화가 형성되어, 조금씩 변모하며 나름의 형태로 오랜 세월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종의 윤리라 부를 만한 게 생긴 겁니다.
이처럼 함께하는 식사는, 한편으론 미각과 취향의 문제로도 이어집니다.
미각과 취향은 사람마다 다 다르기 마련인데, 함께하는 식사를 겪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를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고, 이로써 미각과 취향의 합치점을 찾아 ‘이성 공동체’의 일원으로 거듭납니다.
그러고 보니, 원래 이성이란 게 맛보고 냄새 맡고 만져보는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네요.
먹고 마시는 사소한 행위에서, 우리는 벌써 윤리라는 문제, 그리고 이성이라는 문제를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먹고 마심의 한 인위적 형태랄 수 있는 ‘식습관 조절’을 잠시 들여다볼까요?
적당량의 식사, 적당량의 음주를 추구하는 사람은, 스스로 ‘절제’라는 덕성을 연마하고 있는 거라 볼 수 있습니다.
욕구대로 살라는 몸의 뜻에 따르느냐, 아니면 욕구를 억제하라는 정신의 뜻에 따르느냐…
몸과 정신의 한중간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고자 애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생을 ‘즐기느냐’ 아니면 ‘연장하느냐’의 선택을 앞에 놓고, 우리는 나름 진지한 철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느냐 죽느냐의 고민이죠.
지은이들은 말합니다. 먹고 마시는 일은 의심의 여지 없이 중요한 철학적 주제라고요.
“먹고 마시는 일. 이는 곧 몸과 정신이, 자연과 문화가, 개인과 사회가, 경제와 의학이, 허무주의와 도덕이, 몹쓸 어리석음과 이성이, 함께 만나 향연을 벌이는 현장이다. 먹고 마시는 일이 신과 우주 그리고 영혼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철학의 경합을 벌일 만한 게 못 된다고 누가 감히 주장하랴?”
철학은 이처럼 일상 속 모든 상황과 감정으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스스로 고민하고 궁리하는 일상의 순간마다 색이 덧입혀집니다.
보다 많은 고민과 궁리를 통해 하루하루를 채색해나가다보면, 자연스레 우리의 삶은 자기만의 독특한 색감을 갖게 되겠죠.
『삶의 기술 사전』

일러스트_이효진

철학의 눈으로 들여다본, 일상의 60가지 숨은 얼굴

『삶의 기술 사전』은 이 밖에 어떤 이야기들을 담고 있을까요?
이 책은 일상에서 만나는 60가지 상황과 감정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그것들이 우리를 곤란하게 하는 까닭이 뭔지 차근차근 밝혀봅니다.
일, 대화, 인사, 돈 불리기, 먹고 마심, 이웃과의 관계, 친구 사이…
그야말로 일상적인 이런 일들에 대해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또 그런 일들을 겪을 때 마음속에 치솟는 화, 고통, 혐오, 위선, 증오, 쾌락, 행복 같은 감정들에 대해서는요?
매일 몸소 겪으며 고민하고 갈등하는 일들인데, 그리고 그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데…

우리는 이처럼 어렵고 복잡한 일상의 경험들을 시간의 먼지 속에 내버려둔 채, 잠시 후 닥쳐올 또 한 번의 폭풍에 마냥 몸을 내맡깁니다.
아주 바쁘지 않다면 잠시 쳇바퀴에서 내려와서, 이런 상황과 감정들의 정체를 알아보는 건 어떨까요?
한 꼭지씩 공감하며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생각은 저만치 나아가 있을 것입니다.
일상의 껍질을 벗기고 속살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느끼는 버거움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알게 됩니다.
알면, 놀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좀더 알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더 알면, 일상에 꺾이지 않는 유연한 태도를 갖출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은 개인의 일상적 고민을 넘어,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할 문제들도 짚어봅니다.
쓰레기 배출, 권리와 의무, 성매매 문제, 장애인 차별, 학대 문제, 패거리주의 등, 우리 공동체의 안녕과 발전에 직결되는 고민거리들을 언급하죠.
겉보기에 좀 무거운 주제들이라 읽기도 전에 질릴지 모르겠는데,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데 여러 모로 도움을 주는 생각의 지점들을 친절히 제시해줄 뿐, 그에 대한 판단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대화에 참여할 수 있을 정도의 교양을 원한다면, 이 책이 더없이 맞춤하게 지식과 생각의 힘을 길러줄 것입니다.

자, 그럼 『삶의 기술 사전』과 함께,
내 삶에서 멀어진 나를 다시 불러오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문학동네 편집부 장영선
2015.08.0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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