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은밀하게 나를 사랑한 남자』 하나쯤은 있다

[컬처]by 문학동네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을 주는 책들이 있지 않습니까? 도대체 무슨 뜻일까 해서 한번쯤 들춰보게 되는 책..

 

편집자에게는 그렇게 들춰보게 만드는 원고가 있는데요.. 입고 원고들이 모여 있는 파일함에서 제목만 보고 괜히 궁금해서 기어이 클릭을 하게 만드는 제목.. 저에게는 『은밀하게 나를 사랑한 남자』가 그러했지요.

 

은밀하게 나를 사랑한 남자... 그는 누구인가.. 누구길래 말을 못하구 왜 은밀하게만... 사랑을 하고 있나.. 궁금하지 않았겠습니까. 도대체 누구일까.. 파일을 열어본다.. 원고를 읽기 시작한다..

 

그는 바로..

..아버지였습니다..

누구에게나 『은밀하게 나를 사랑한 남

“사랑한다는 말을 할 줄 몰랐던 아버지는, 그저 말없이 나를 사랑했다.”

그렇습니다.

 

『은밀하게 나를 사랑한 남자』는 작가의 아버지에 대해 쓴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자식을 사랑하지만 쉽게 말하지 못하는, 그래서 말없이 은밀하게 사랑만 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죠.

 

그렇다고 이 책이 감성으로 가득차서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예찬만을 늘어놓는 그런 책은 또 아닙니다. 흥미진진한 서스펜스적 요소가 숨어 있기도 하지요.

2008년 3월 11일 날이 저물 무렵, 라 로셸 북쪽 어느 구역에서 아버지는 엽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조수석에 앉아 있었는데, 아마도 핸들이 걸리적거려 그랬던 것 같다. 그는 좌석을 조금 뒤로 젖히고 두 다리를 쭉 뻗은 다음, 총신을 몸에 걸친 채 총구를 입안에 넣고 아주 민첩한 동작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_본문에서

이야기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시작하죠. 화자의 아버지는 어느 해질 무렵 주차장에 세워진 자신의 차 보조석에서 엽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요, 어디에도 그 이유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의문스러운 자살의 이유를 추적해나가면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어느 날 저녁 브누아트 그루가 들려준 폴 기마르의 말이 생각난다. 『삶의 문제들』의 저자이기도 한 그에게 누군가가 이렇게 물었다. 앞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 딱 십오 분 남았다는 걸 안다면 뭘 하겠습니까? 기마르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손목시계를 풀어 멀리 던져버리겠소. 아버지는 오래전에 자신의 손목시계를 멀리 던져버렸다. 그는 더는 남은 시간을 계산하지 않았다. 그는 모래시계를 박살내버렸다. _본문에서

이야기는 현재 사건과 아버지와의 첫 만남 과정 등이 교차되면서 나아갑니다. 조금씩 드러나는 아버지의 숨겨진 비밀... 그리고 나와의 관계...

 

아니 그런데 아버지와의 첫 만남이라니..? 좀 이상하지요. 그게 가능한 이유는.. 이 책에 등장하는 아버지가 화자와 피로 맺어진 친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없이 자라던 화자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결혼한 미셸 포토리노라는 남자를 아버지로 맞이하게 되고, 그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게 됩니다. ‘포토리노’라는 새 성을 얻으면서 자신의 정체성 또한 얻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이야기는 단지 아버지와 아들이 나누는 교감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한 인간이 다른 인간과 나누는 신뢰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저자인 에릭 포토리노는 <영화의 입맛춤>으로 페미나상을 수상하고, <붉은 애무>로 순문학에 주는 상인 프랑수아 모리아크 상과 최고의 추리소설에 주는 상인 장클로드 이초 상을 수상한 소설가이면서 프랑스의 전설적인 언론인이자 르몽드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사람이죠.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써내려간 『은밀하게 나를 사랑한 남자』는 아름답고 섬세한 언어로 쓰여 있으면서도 어떨 때는 끓어오르는 격정으로 격앙되기도 하는, 독특한 리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차를 몰고 파리로 되돌아오는 길에 나는 한 남자와 그의 어린 아들을 지나쳐간다. 그 남자, 거무스레한 얼굴의 그 남자는 달린다. 그 아이, 7월의 태양 아래 놀랄 정도로 새하얀 그 아이는 온 힘을 다해 페달을 밟는다. 그건 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나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거의 사십 년 전의 우리일지도 몰랐다. 라디오에서 앙리 뒤티외의 심란한 첼로 연주곡, 울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첼로를 위한 세 개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내 차의 사이드미러 안에서, 그 남자는 달리고 그 아이는 페달을 밟는다. 그들은 아주, 아주 작아져간다. _본문에서

얼마전 첫눈이 내리더니 오늘은 한겨울처럼 추워져버렸습니다. 그날의 날씨에는 그날의 날씨에 어울리는 책이 있기 마련 아닙니까? 오늘 같은 날씨에는 『은밀하게 나를 사랑한 남자』가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이..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편집자 김영수

2015.12.1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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