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의 죽음을 기억하라

[컬처]by 웹진 <문화 다>

다니스 타노비치 감독의 <사라예보의 죽음 Death in Sarajevo> (프랑스 외, 2016)

 

전쟁, 테러와 같은 무시무시한 말들이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한반도만 하더라도 트럼프와 김정은의 말장난 덕분에 8월 초 전쟁위기설로 더운 여름을 더욱더 무덥게 보내야했다. 애도할 틈조차도 주지 않고 전 세계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테러는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이슬람 대 기독교의 투쟁이라는 제3차 세계대전 중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다니스 타노비치 감독의 <사라예보의 죽음 Death in Sarajevo>은 여전히 종교 갈등이 내재하고 있는 사라예보에서 울리는 한 발의 총성을 통해 지나간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를 묻는 영화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출신의 다니스 타노비치 감독의 <사라예보의 죽음>은 “사라예보”라는 유서 깊은 도시의 역사를 후경으로 한 이야기다. 현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의 수도인 사라예보는 1914년 1차 세계대전의 빌미를 제공한 페르디난트 대공부부의 암살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사라예보는 1984년(제14회 동계올림픽) 유고연방에 속해 있었던 당시에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최초로 동계올림픽이 열린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사라예보는 유고 연방이 해체된 후 보스니아계 무슬림(이슬람)과 크로아티아계(기독교), 세르비아계(동방정교회) 민족 간의 종교 갈등으로 인하여 보스니아 내전(1992~1995)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흔히 발칸의 화약고라 불리는 사라예보는 이처럼 테러와 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이다.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사라예보 주경기장 주변으로 줄지어서있는 수천 개의 묘비들은 내전으로 10만 명 이상의 주민들이 숨졌던 역사의 상흔을 잘 보여준다.

사라예보의 죽음을 기억하라

영화는 만찬준비와 파업준비를 동시에 하는 호텔‘유럽’ 직원들의 분주한 모습과 스위트룸에서 디너쇼 만찬연설을 준비 중인 EU대사의 모습, 그리고 호텔의 옥상에서 테러사건 100주년기념 방송을 제작하고 있는 방송국의 모습, 이렇게 크게 3개의 앵글을 속도감 있게 교차편집해서 보여준다.

 

먼저 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1914년 사라예보에서 일어났던 ‘테러사건’의 현장을 취재하는 방송국 리포터의 안내 방송으로 시작한다. 테러가 일어난 역사적인 장소를 카메라로 비추며 ‘테러사건’ 100주년 기념방송을 하던 방송국은 호텔 ‘유럽’의 옥상으로 장소를 옮겨 이제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앉혀놓고 생방송 인터뷰를 진행한다. 인터뷰에 초대된 게스트에는 이슬람교를 믿는 보스니아계 무슬림도 있고, 크로아티아계 기독교인, 동방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인도 있다. 대학교수, 역사학자, 평범한 청년 등 다양한 사람의 인터뷰가 진행된다.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세르비아 민족주의 계열의 테러조직 ‘검은 손’과 그 단원이었던 가브릴로 프란치프의 그 날의 행적과 오스트리아-헝가리 황태자였던 페르디난트 대공부부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당시의 국제정세와 보스니아의 지정학적인 위치가 가지는 중요성 등에 의해 대공부부 암살은 필연적으로 일어 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사건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당시 보스니아를 점령하고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 부부를 살해 한 가브릴로의 행동이 테러인지, 아니면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국구의 결단이었는지를 두고 격론을 벌인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서 온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총격을 받은 곳의 장소를 기념하는 다리 이름이 처음에는 테러리스트의 이름을 따서 “프란치프 다리”로 불리었으나 곧, 1917년 페르디난트 대공부부의 죽음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다리위에 세워지고 테러리스트의 흔적은 삭제된다. 그러나 대공부부를 기리는 기념비는 유고연방이 들어서면서 1941년 철거되고 이제는 가브릴로 프란치프의 행적이 부각된다. 아직 미성년이던 가브릴로 프란치프의 작은 신발을 박물관에서 가져와 그의 발자국을 동판에 새겨 넣기도 했다. 하지만 1992년 보스니아 내전이 일어나고 그 발자국이 찍힌 석판은 누군가에 의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정치체제가 바뀜에 따라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죽인 19살 청년 가브릴로 프란치프는 때론 영웅으로 때론 테러리스트로 기억된다. 그리고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역시 입장에 따라 때론 폭군으로, 때론 테러의 희생자로 기억된다. 입장에 따른 것이므로 둘 다 인정해야하는 걸까. 영화에서는 이렇게 두 시각을 균형적으로 다루려는 강박에 대해 ‘희스테리성 이원론’이라고 칭하며 역사에서 과연 정의는 무엇이고 진실은 무엇인지 그리고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지 되묻게 만든다. 이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침묵했던 언론, 지식인들의 무관심을 비판하는 듯하다. 수잔 손탁은 1993년 보스니아 내전당시 사라예보에서 사무엘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직접 연출하여 무대에 올렸다. 그녀가 전장의 한 복판에서 연극을 무대에 올린 것은 전 세계 지식인들에게 보스니아 내전에 관심을 가지고 도와달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일종의 체념과 같은 형태의 의식마비를 조장하는 여론’ 때문에 작가들을 사라예보에 불러 모으려던 손탁의 의도는 실패하였다.

사라예보의 죽음을 기억하라

다음으로 영화의 주된 배경이 되는 호텔 ‘유럽’은 현재 유럽사회가 직면한 인종문제, 실업문제, 계급문제, 젠더문제 등이 얽혀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호텔 ‘유럽’은 84년 동계올림픽을 성공리에 치렀다는 자부심과, 지금까지 U2, 빌 클린턴, 알 후세인, 리처드 기어, 안젤리나 졸리, 교황 등의 사라예보를 방문한 각국의 대통령, 연예인, 종교지도자 등 유명인사들이 한 번 쯤 다녀간, 유서 깊은 곳임을 호텔의 최고 자랑으로 여긴다. 하지만 지금은 호텔 운영조차 어려워 30년 전 동계올림픽 때 사용하였던 ‘올림픽식기’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으며, 여섯 달째 전기세를 못 내고 있고, 두 달째 직원들의 임금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호텔직원들은 EU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파업을 할 예정이다. 호텔 지배인 오메르는 파업을 중단시키기 위해 폭력배를 동원해 파업주동자를 감금, 폭행한다. 이를 모르는 직원들은 파업주동자가 도망갔다고 생각하고 또 다른 대표를 선출하여 파업을 강행하려한다. 호텔 지배인 오메르가 평소 신임하는 여직원 라미야의 어머니 하티자가 새로운 대표가 된다. 라미야는 어머니 하티자를 말리지만 30년 넘게 세탁실에서 근무한 하티자는 이제 할 말은 하고 올바르게 살겠다고 말한다. 호텔 지하에는 오메르의 친구이자 사업파트너인 엔조가 운영하는 카지노와 바가 있다.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좀 더 안쪽 깊숙이 들어가면 동유럽여성들이 반라의 몸으로 남성들 앞에서 춤을 추는 클럽이 있다. 오메르가 묵인하고 엔조가 운영하는 이 지하세계는 편법과 불법을 저지르며 지상의 세계를 조롱한다. 또한 엔조는 오메르에게 나체에 가까운 차림으로 무대에 오르는 동유럽 여성을 보고 옷만 입혀 놓으면 임신한 채로 가브릴로의 총에 살해당한 페르디난트 대공 부인인 조피공작부인을 닮았다고 말하며 낄낄거린다. 그에게 100년 전 역사는 한낱 조롱거리에 불과한 것이다.

 

한편, 호텔의 꼭대기 스위트룸에서 만찬 연설을 준비 중인 EU대사는 방안에서 연회에서 연설할 연설문을 열심히 외우고 있다. 그는 때때로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관객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 그는 여전히 잠재되어 있는 발칸반도의 인종, 종교 갈등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죽은 자들을 기억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1914년의 사건도 기억해야하고 대학살이 있었던 ‘스레브레니차’(보스니아 내전의 막바지인 1995년 7월~11월에 유엔이 안전지역으로 선포한 ‘스레브레니차’지역에 세르비아 민병대가 침공하여 전쟁에 동원될 가능성 있는 보스니아계 무슬림 남성 8000명 이상을 학살한 사건이다)도 기억해야한다고 말한다. EU대사는 테러, 전쟁이라는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교훈으로 삼아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가자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현재 호텔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 실업문제, 인종갈등, 임금체불, 파업, 폭행, 납치, 감금, 계층 갈등, 성추행 등등의 일들은 지금 유럽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 EU대사의 외침은 오늘날 복잡한 유럽의 현실 앞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공허한 울림으로 남는다.

 

영화 속의 주된 배경이 되는 호텔 ‘유럽’은 인종, 종교, 민족, 계급, 젠더 등이 모두 교차하는 곳이다. 그 속에서 사람들의 무관심과 이기심, 욕심 그리고 일탈 들이 만들어 낸 작은 사건들이 우연히 겹치고 겹쳐 하나의 큰 사건을 일으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의 말미에 어이없이 울려 퍼지는 한발의 총성은 허무하기 짝이 없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사라예보의 죽음을 지금껏 목도해왔음에도 우리는 아무런 교훈을 여전히 얻지 못 한 것일까 한 청년의 죽음이 안타깝다.

 

 별점

 대중성

 ★★★★☆ 8

 평균

 최종 별점

 예술성

 ★★★★☆ 8

8.0

8.0

 

임회록(문화 칼럼니스트)

2017.09.0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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