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작은 숲을 상상하며

[컬처]by 웹진 <문화 다>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2018)

 

사회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한동안 무거운 느낌의 영화들이 각광받는가 싶더니 어느새 차분하거나 흥겨운 영화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리틀 포레스트>가 눈에 띠었던 이유는 감독 임순례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임순례 감독이라고 하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년)을 기억할 테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년)이다. 물론 몇 마디 말들로 두 영화의 성격을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느껴지는 대로말 말해본다면 영화가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이 좋다. <남쪽으로 튀어>(2013년)에서 보았던 고정관념을 넘어선 객기나 <제보자>(2014년)에서 거침없이 다루던 현실의 어두운 면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어딘가 잔잔하면서도 우리의 삶을 놓치지 않은 듯한, 그래서 절정을 향해 막 달려가지는 않지만 조용히 웃거나 울어야할 거 같은 영화가 더 임순례 감독다운 영화처럼 느껴진다. 아마 그래서인지 <리틀 포레스트>를 꽤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쉬어가도 조금 달라도 서툴러도 괜찮아’라는 포스터의 문구는 이 영화의 색깔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의 시작은 이런 영화의 성격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영화는 주인공 혜원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내레이션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푸르고 따뜻한 느낌의 풍광들과 밝은 표정의 혜원에게서 어두운 느낌은 찾을 수 없다. 3개월 전에 고향으로 내려왔다는 그녀의 말과 함께 눈 덮인 한옥과 겨울의 농촌이 화면에 보인다. 난로에 불을 피우고 배가 고팠는지 요리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장면들이 가여워 보이거나 힘겨워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느낌은 따뜻하다. 이는 실상 ‘미성리’라는 혜원의 고향이 어떤 곳인지를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내레이션에서 그녀는 미성리가 쌀과 사과로 유명하지만 가게도 없을 정도로 외진 시골이라고 설명하는데, 스크린에 비친 장면을 통해 본다면, 미성리는 불편한 곳이 아니라 따뜻한 곳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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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곳에 머물고 있는 즐거운 표정의 혜원이지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혜원이 대학 입학과 함께 떠났던 고향을 다시 찾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남자친구와 함께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그녀는, 남자친구 혼자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자신은 떨어지자 자존심 때문에 남자친구에게 연락도 없이 고향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혜원은 고향에 돌아온 자신의 상황을 ‘배가 고파서’라거나 ‘허기가 져서’ 돌아왔다고 표현한다. 편의점 알바를 하며 꾸역꾸역 먹는 김밥을 먹는 장면과 돌아온 집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삼키지 못하고 뱉는 장면에서 영화는 도시의 삶에 찌든 혜원의 괴로움을 표현한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시종일관 요리를 하고 요리를 먹는 장면들로 채워진다. 마치 잘 먹는 게 잘 사는 거라는 듯이 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요리를 하며 술까지 담그는 걸 보면, 혜원에게는 처음부터 요리가 중요했던 것 같다.

 

혜원의 요리는 단순하지 않다. 그녀는 자신의 요리를 위해 농사를 짓기도 하고 재료들을 구하기도 한다. 혜원의 요리는 친구들과 이어지면서 의미가 확장된다. 재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 농사를 짓고 있는데, 혜원이 하는 요리가 재하의 농사와 동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찾은 해답이 농사라면, 혜원의 요리와는 더욱 분리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고향을 떠나지 않고 은행원으로 살고 있는 은숙도 의미 있는 인물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은숙은 그저 고향에 살아온 인물로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은숙과 같은 인물이 있었기에 재하와 혜원이 돌아올 수 있는 고향이 계속 존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세 인물은 친구라는 인연 이상으로 서로의 존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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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주로 고향에 머물고 있는 혜원을 담아내면서 가끔 그녀의 과거와 서울살이를 보여준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장면들은 엄마가 요리를 해주던 기억들과 서울에서 힘들었던 모습들이 주를 이룬다. 혜원은 엄마에 대한 기억들과 남자친구에게 연락을 하지 못한 일로 가끔 힘들어 하지만, 어느새 4계절을 고향에서 보내고 자신만의 답을 찾아간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끝까지 슬프거나 답답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서울에서는 남자친구에게 실망감을 느낄 일이 생기고 다른 친구들과는 이질감을 가지는 경우가 있었지만, 고향에서는 다르다. 고향에서 혜원은 친구들과 온기를 나누며 자신을 삶을 돌아본다. 영화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래서이다. 농사를 짓고, 요리를 하고, 그리고 친구들과 나눠먹는 과정이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다. 거기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화면 가득 따뜻한 색감과 포근한 농촌의 풍경이 결합되면서 영화는 시종일관 포근하다. 말 그대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그러나 오히려 영화가 주는 이 힐링이 무엇인가 하는 고민이 깊어진다. <삼시세끼>나 <신혼일기> 혹은 <효리네 민박> 같은 프로그램들이 인기 있는 이유도 <리틀 포레스트>가 끌리는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어쩌면 이미 텔레비전에서도 <리틀 포레스트>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힐링을 전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서울에서의 생활이 괴로워 도망치듯 떠나왔으면서도 혜원의 모습이 괴로워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어쩌면 유사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겹쳐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고민은 단순하게 끝나지 않는다. 영화는 주인공 혜원에게 돌아갈 ‘고향’을 설정해 주었다. 그러나 영화는 지금의 20대에게 돌아갈 고향이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 도시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시골에서 젊은 사람을 보기 힘든 요즘, 도시가 아닌 시골이 고향인 20대는 흔하지 않다. 그러니 영화가 진정 현실적인지에 대한 물음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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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의 엄마는 혜원이 고향에 뿌리박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어쩌면 혜원의 삶이 힘들어졌을 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해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혜원과는 처지가 다르다. 만약 영화가 도시중심적인 사고를 돌아보고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보고자 했다면, 인물들의 처지는 더욱 현실적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리틀 포레스트>가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힐링을 전해준다고 해도 많은 관객들은 도시의 삶에 여전히 뿌리박고 있는 사람들이다. 실제적으로 혜원이 찾았을 해답을 관객들에게 요구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니 영화가 보여주는 힐링은 주체적이기는 힘들며, 우리가 찾아야할 ‘작은 숲’은 상상에서나 가능하지 않을까.

 

<리틀 포레스트>가 전하는 삶의 의미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현실적일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 들기는 하지만, 영화가 전하는 따뜻함은 여운이 길다. 영화는 도시의 삶에 찌들어 있는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혜원이나 재하가 찾은 해답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해도 영화는 그 나름의 방법으로 우리의 삶을 응원하고 있다. 도시 속에서의 삶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또 다른 삶이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이미 그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돌아갈 고향이 없고 같은 방식으로 해답을 찾을 수 없다고 해도 말이다. 도시와 농촌을 하나의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동일한 ‘정답’만을 요구하는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영상만으로 기억되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별점

 대중성

 ★★★★☆ 7

 평균

 최종 별점

 예술성

 ★★★★☆ 7

7.0

7.0

 

이승현(영화평론가)

2018.03.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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