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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하나의 공간, 세 가지 사건"…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by문화뉴스

"하나의 공간, 세 가지 사건"…연극

"나쁜 일은 항상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다"

 

배우들은 무대 연기의 매력으로 관객들과 같이 호흡하는 것을 꼽는다. 특히 소극장의 경우 객석과 거리가 가까워 잠시라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지만, 자신의 연기에 따라 달라지는 관객들의 반응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좋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 관객의 반응뿐 아니라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는 소극장 연극이 있다. 바로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다.

 

'카포네 트릴로지'는 호텔 방이 무대인데, 답답하고 어두운 방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무대와 객석의 간격이 50cm가 채 되지 않는다. 배우들의 격투가 벌어지는 에피소드에선 그야말로 '코앞에서' 극이 진행된다. 더구나 공연이 시작되면 입구를 통해 수시로 등퇴장하는 배우들 때문에 공연이 시작되면 끝나기 전까지 누구도 방을 나설 수 없단 점이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보통의 공연장에 익숙해져 있는 관객에게 낯선 환경일 뿐만 아니라 극의 구성도 독특하다. 시카고 렉싱턴 호텔 661호에서 벌어졌던 세 가지 사건을 각각 70분 남짓하게 독립된 이야기로 공연한다. 오랜만의 문화생활을 기대했던 이들에겐 턱없이 짧게만 느껴지는 러닝타임이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 덕분에 '카포네 트릴로지'는 골라 먹는 재미, 아니 골라 보는 맛이 있는 작품이 됐다.

 

각 공연은 10년가량의 시간 순서가 있지만, 관람 순서가 공연 감상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으며, 한 편 만 관람해도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다만 공연 흐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다른 에피소드가 언급되기도 하고, 같은 소품이 사용되기도 한다. 굳이 세 편을 모두 볼 필요는 없지만 모두 봤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재미가 쏠쏠하다.

"하나의 공간, 세 가지 사건"…연극

로키(코미디) : "롤라 킨이여 영원하라!"

1923년, 세 가지 사건 중 가장 먼저 일어난 사건. 렉싱턴 호텔 바의 최고 쇼걸 롤라 킨은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낸다. 자고 있던 자신을 깨우는 광대 두 명, 약혼자 데이빗, 롤라가 진짜 사랑하는 니코와 그를 쫓는 볼디까지. 롤라를 둘러싼 10인의 인물들이 정신없이 교차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배우는 세 명인데 등장인물이 열 명 남짓이라는 거다. 어떻게 가능하냐고? 보는 관객들까지 더워질 만큼 두 남자 배우가 숨 가쁘게 등퇴장을 반복하며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기 때문이다. 자칫 산만해질 수도 있는 장면이 각 캐릭터마다 특징을 잘 살린 배우들의 연기에 힘입어 끊임없는 웃음을 주는 장면으로 탈바꿈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백미였던 장면은 니코와 번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장면. 여기에 극의 주인공답게 중심을 잡아주면서 예상치 못한 반전을 선사해주는 롤라까지, 폭발적인 에너지를 선사하는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하나의 공간, 세 가지 사건"…연극

루시퍼(서스펜스) : "갱은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다. 다만 전달할 뿐"

1934년, 시카고를 쥐고 흔들던 '알 카포네'가 감옥에 갇힌 후 닉 니티는 조직의 2인자를 자처하며 카포네의 공백을 최소화하고 있다. 잔인한 갱이면서도 사랑하는 아내 말린의 화를 풀기 위해 기꺼이 꽃을 들고 무릎 꿇는 반전 매력을 가진 닉. 그를 돕는 사람은 다름 아닌 경찰 마이클이다. 사건에 직접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마이클을 통해 조직을 이끌던 닉은 하지만 작전이 꼬이는 바람에 마이클과 적이 된다.

 

이 과정에서 닉과 마이클은 몸싸움을 벌이기도 하는데, 이때 관객은 공연을 본다는 생각보다 싸움을 구경한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는다. 바로 앞에서 배우들이 쓰러지고 주먹을 날리기 때문에 우연히 배우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마치 나도 맞을 듯한 공포까지 든다. 배우들도 자신들의 움직임에 관객들이 생각보다 더 무서워해서 일부 장면을 수정했다고 할 정도니, 극의 생생함을 느끼고 싶다면 루시퍼를 선택하자. 다만 극이 끝난 후 '이게 끝이야?'란 생각이 들 수도 있으니 참고할 것.

"하나의 공간, 세 가지 사건"…연극

빈디치(하드보일드) : "누구를 위한 복수인가"

가장 마지막에 일어난 사건을 다룬 1943년의 빈디치. 다른 에피소드(20년 전 롤라 킨 사건, 9년 전 닉 니티 사건)가 가장 직접 언급되는 편이기도 하다. 공연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복수를 꿈꾸는 경찰 빈디치가 운동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자신의 아내를 죽인 루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빈디치와 사고로 한쪽 눈을 잃은 루시, 그리고 '특별한' 취향을 가진 루스까지 세 인물은 기묘한 분위기를 한껏 끌어낸다.

 

극은 빈디치의 복수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를 돕는 루시의 행동에 은근한 설렘을 느끼게 된다. 절대 그럴 리 없는 상황이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은 장면도 종종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장면들은 모두 극의 반전이 더욱 극적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장치들이었다. 그리고 관객들이 이에 살짝 실망할 때쯤 (그렇지 않은 관객들도 있겠지만) 반전이 몰아치며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처음엔 짧다고 생각한 70분 안에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담길 수 있다는 데 놀라웠다.

 

한편 세 에피소드에는 모두 빨간 풍선이 등장한다. 총이 일상적으로 등장하는 곳에서 동심을 부르는 빨간 풍선은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와 묘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특히 세 에피소드 마지막 장면에서 빨간 풍선을 처리하는 방법이 모두 다르다. 작품을 해석하고 느끼는 것은 온전히 그 관객의 몫이지만, 풍선이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따라 거기에 담긴 메시지를 유추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문화뉴스 전주연 기자 jy@mnhw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