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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커피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 자퇴 두번"

취미에 미친 여자들

by뉴스1

좋은 파도를 놓치기 아까워서 순간접착제로 찢어진 살을 붙이고 서핑하는 여자, 19개월의 세계여행을 위해 집을 월세로 내놓고 아들도 군대에 보내버리는 여자, 남들은 한번도 하기 힘든 자퇴를 두 번이나 하고 바리스타의 길로 뛰어든 여자, 영화가 아닌 영사기에 꽂혀 낑낑거리며 영사기를 수집하는 여자. 

 

여자들도 인생을 걸고 취미를 즐긴다. 취미를 향한 여자들의 열정은 파도처럼 강렬하고 향수처럼 그윽하다. 지난주 출간된 '여자의 취미'(페퍼민트)엔 좋아서 미친듯이 하고 결국은 인생까지 바뀐 행복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들 중 다섯 명의 인생을 따라가보자. 이들은 누구를 위한 인생이 아니라 자신만을 위한 인생을 살고 있다.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서핑 홀릭녀 김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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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에 미친 여자 김나은 씨  © 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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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채만한 파도가 몰려와도 '스테이 쿨, 돈 패닉!'  속으로 외치는 김나은 씨  © 페퍼민트

"바로 앞 편의점으로 달려간 그녀는 사온 생수로 상처를 헹구고 지혈한 뒤 순간접착제를 서핑하다 생긴 상처 부위에 짜서 발랐다. 발가락은 이내 불에 덴 것 같은 통증이 엄습해 왔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만에 하나를 대비해 접착제를 듬뿍 짜서 이중으로 상처 부위를 접합했다. 발가락을 툭툭 건드려보고 잘 붙었다고 생각한 그녀는 다시 바다로 달려 나갔다." 

 

김나은은 "서핑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개인의 인생관도 바꾸어 버리는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서핑은 겨울이 참맛'이라며 머리와 속눈썹에 고드름을 달고도 서핑하는 여자가 그녀다.

"인생에 나중은 없다" 여행가 오현숙

취미에 미친 여자들

한번뿐인 인생을 위해 여행 간  오현숙 씨 © 페퍼민트

"저는 두 아이의 엄마에요. 남편과 헤어지고 조그마한 가내 수공업 공장을 꾸려가며 아이들을 키웠죠. 그러던 어느날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보니 삶에 찌든 인상이 마치 악마처럼 보였어요. 이대로 살아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별다른 취미도 없이 살아왔는데 제일 하고 싶은 게 뭔가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그때 떠오른 것이 바로 '세계여행'이었다. 방을 빼고, 아들은 군대에 보내고...이런 계획으로 시작했지만 이내 난관에 부딪친다. 군대가기 싫어하는 아들이 차일피일 미루는 것이다. 

 

그러자 그녀는 직접 '군특기생' 모집에 원서를 넣어버린다. 오현숙씨는 떠나기 전 아들 얼굴은 보고가야 할 것 같아 군대간 아들에게 면회순서 변경을 신청하라고 했다. 변경사유를 말하는 아들에게 사무관은 묻는다.

"너희 집 부자니?"

"아뇨...가난한데요."

"야, 근데 너네 엄마는 무슨 돈으로 세계여행을 떠난다는 거야?"

"제 등록금 빼서 가는데요."

"헐…"  

카페인교의 열성신도 천혜림

취미에 미친 여자들

커피는 나의 종교  천혜림씨 © 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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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만드는 데 몰두하느라 밤낮이 없는천 혜림씨 © 페퍼민트

커피를 더 잘 알기 위해 자퇴를 두 번이나 했다. 대구 가톨릭 대학교 패션 디자인학과 2학년 중퇴, 대경대학교 VMD(비주얼 머천다이징)과는 1년도 마치지 못하고 중퇴. 왜? 커피공부할 시간을 빼앗기는 게 아까워서. 결정적으로 자퇴결심을 하게 한 이는 잘 알고 지내던 유명 커피 로스터리 숍 대표다. 그를 찾아가 고민을 말했더니 이렇게 그가 물었던 것이다. "카페인교를 믿지 않나?" 

 

2005년과 비교하면 10년사이에 국내 커피 소비량은 260%늘어났다. '악마의 음료' 커피에 매혹된 신도들이 대폭 증가했음을 말해준다. 천혜림 씨는 커피를 공부하다가 동이 트는 광경을 보는 날이 부지기수일 정도로 시간관념이 사라졌다. 커피가 '0순위'라 남자친구들도 멀어졌다. 오늘도 그녀는 커피와 추출도구들을 사고 연구하고 노는 '커피놀이'를 즐긴다.

포토그래픽 아티스트 손현주

취미에 미친 여자들

안면도를 씩는 사진사 손현주 씨 © 페퍼민트

취미에 미친 여자들

이게 뭘까요? 손현주 씨가 찍은 안면도의 부표© 페퍼민트

'신문사 밥' 20년을 먹던 2010년 겨울, 아침에 출근하여 의자에 앉았는데 가슴 속에 바람 하나가 쿵 하고 들어왔다. 십년, 이십년마다 온다는 직장인 병인지, 그게 뭔지는 모르겠으나 집중이 안됐다. 일주일 휴가를 갔다와도 상황이 바뀌지 않았다. '휴가 끝에 사표낸다'는 말처럼 손현주 씨는 사표를 내고 훌쩍 고향 안면도로 내려온다. 그리고는 생활의 터전인 안면도의 자연과 일상을 사진으로 찍기 시작한다. 

 

그녀는 섬 구석구석을 돌면서 많은 섬사람들을 만난다. 노인들에게 그녀는 밤낮없이 섬의 위험한 곳을 쏘다니는 '이상한 딸'이자 '걱정스런 어느 집 자식'이다. 정작 손현주 씨는 어떻게 안면도의 자연과 사람들을 사진에 잘 담을지만 걱정이다. 그의 눈앞엔 최근 보아둔 고성능 중형 카메라와 필름 카메라가 아른거린다. 한숨을 푹 쉬며 그녀는 "돈 좀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졌으면 좋겠어" 하고 중얼거린다.   

시네마 키드에서 영사기 수집가 된 임혜순

취미에 미친 여자들

영화 애호가에서 영사기 수집가로 발전한 임혜순 씨© 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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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혜순 씨는 약 600점의 영사기 및 촬영기를 소장하고 있다. © 페퍼민트

"나이 오십이 빨리 왔으면 하고 기다렸어요. 엄마라는 역할에 대한 책임감도 그 나이쯤이면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런데 오십이란 나이는 너무 먼 미래였어요. 턱없이 멀리 있었죠. 허구헌날 영화관에 가 있던 시네마 키드에겐 당장 실현할 꿈이 더 절박했을까요? 돈을 한 푼 두 푼 모으는 대로 영사기를 사모았어요. 영사기가 있다는 곳이면 안 가본 데가 없었죠." 

 

임혜순 씨가 소장한 영사기와 촬영기 등은 약 600점 이상. 그 중에는 지게차만한 영사기도 있다. 돈을 모으는 대로 사모았다. 정작 돈을 많이 버는 영화배우나 제작자들은 관심조차 없는데 왜 자신같은 일개 애호가가 이러고 있는지 화가 날 때도 있다. 하지만 재개발돼 극장이 헐리자 영사기를 고물상에 팔아 소중한 영사기가 용광로로 들어간 것을 알게 됐을 때, 아예 영사기와 자료가 든 상태로 불도저로 건물을 밀어버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눈물이 앞을 가린다.

 

권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