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질 듯 장엄한 돌기둥 병풍…세상속 내려앉았네

[여행]by 뉴스1

지리산을 닮았다, 무등산…안양산~서석대~증심사 11.2㎞

장승인가 우뚝우뚝 솟은 입석대…백마능선 붉은 철쭉은 '뷰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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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에서 바라본 무등산 정상. 뭉툭한 윤곽의 가운데 천왕봉과 서석대, 오른쪽 장불재 © 뉴스1

산은 등산과 여행의 대상이면서 지역의 삶과 역사, 종교와 예술의 흔적이 새겨진 문화적 장소다. 산을 민족의 영산이니, 지역을 지키는 진산(鎭山)이니 하는 것은 산이 갖는 정신적 존재감 때문이다. 그런 존재감이 가장 큰 산의 하나로 무등산을 꼽는다. “광주의 150개 초등학교 교가 가운데 무등산이 115회 언급되었다.”고 할 정도다. 무등산은 지리적으로 광주와 화순·담양의 경계에 솟아난 ‘작은 산’이지만, 정신적으론 광주·전남 전체를 아우르는 ‘큰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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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무등산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무등(無等)’이라는 이름이다. 등급을 따지지 않고 모두를 받아준다는 의미이니 소외된 사람들, 약자들, 민중들이 이 산에 기대어 상처를 치유하고 희망을 일궜다. 무등산 이전의 이름이었던 무돌(특이한 돌), 무진악(광주의 옛이름), 무당산(신령스러운 산) 모두 ‘무’라는 음절이 있는데, 고려시대부터 무등산이라 불렀다.


무등산은 여러모로 지리산과 닮았다. 전체적으로 둥그스름하고 정상이 펑퍼짐해 낮게 엎드린 모습이다. 지리산의 산세가 순하듯이, 무등산도 일단 능선에 올라서면 큰 오르막 없이 산 전체를 뺑 둘러 유순하다. 지리산처럼 흙산이고, 정상 이름도 천왕봉이며, 서석대 정상석에 쓰여있는 글 “광주의 기상 이곳에서 발원되다”도 지리산의 것을 빌려왔다. 누구나 품어준다는 ‘어머니 산’이라는 인문학적 의미도 같다.


무등산의 공원면적(75㎢)은 22개 국립공원에서 18번째인데, 탐방객 수는 4번째다. 코로나 이전의 2019년에는 315만 명, 작년에는 240만명이 방문했다. 산의 규모에 비해 많은 사람이 이용하므로 자연에 부담이 많다. 광주방향에서는 주로 증심사와 원효사에서 오르고, 화순방향에서는 수만리에서 또는 안양산을 거쳐 오르며, 담양 쪽에선 소쇄원을 비롯한 옛정원과 광주호를 찾는 탐방객이 많다.

◇ 화순(무등산편백휴양림)-안양산-장불재 4.8km “숨차게 안양산 올라, 백마능선 뷰 즐기며 무등산으로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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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산 직전 깔딱고개. 병꽃나무와 산철쭉의 마중 © 뉴스1

안양산 끄트머리인 둔병재에서 산을 오르려면 무등산편백휴양림(사유지)에 입장료 2000원을 내고 들어서야 한다. 마지못해 ‘통행료’를 낸 등산객들은 곧바로 임도를 10분쯤 걸어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다. 국립공원 안내판에 안양산 정상까지 1.2km는 ‘경사도 32%, 매우 어려움’으로 난이도를 표시했다.


단단히 각오를 하고 뚜벅뚜벅 오르니 5분 만에 콧등에 땀방울이 또르르 굴러 내리고, 10분만에 등어리가 축축하다. 그나마 처음 500m는 지그재그로 경사도가 낮아 오를만 했는데, ‘심장안전을 주의하라’는 안내판부터 700m는 ‘닥치고 계단’의 연속이다. 함께 출발했던 일행들이 자연스럽게 갈라진다. 등산은 체력보다 경륜이다. 앞서가는 중년도 있고 뒤쳐지는 청년도 있다. 올해 처음 듣는 검은등뻐꾸기 특유의 네 음절 “호!호호!호”가 행진곡처럼 힘을 돋우고, 철쭉과 병꽃나무의 꽃무더기 환영을 받으며 드디어 정상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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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산 정상의 억새와 철쭉 너머로 바라보는 무등산 본체. 왼쪽은 장불재와 뾰족한 낙타봉. © 뉴스1

5월 중순, 철쭉의 피크타임이 지났지만, 아직도 온통 진분홍빛인 안양산(安養山/853m)은 평평한 봉우리에 햇볕이 가득하고 검은 흙에 야생식물이 빽빽하다. 고개를 들어 마치 제주도 오름에서 한라산을 올려다보듯, 멀리도 가까이도 아닌 무등산의 우람한 본체를 전망한다. 무등산을 쭉 펴놓았는지, 장불재-서석대-입석대-천왕봉-광석대-규봉암 등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


낙타봉을 향해 철쭉 터널과 연녹색 숲바다 밑을 걷는다. 쨍쨍한 햇빛이 숲 천장에서 누그러져 숲바닥은 컴컴하고 시원하다. 땀 찬 모자를 벗으니 숲바람이 불어 머리가 서늘하다. 자연의 에어컨이다. 그러나 열 받게 하는 장면도 있다.


약간의 오르막 끝에 뾰족한 바위들이 서 있는 낙타봉 밑을 우회하는데, 출입금지인 그곳에 올라 어서 올라오라며 손짓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만났다. 금줄을 넘으려는 사람들에게 음을 높여 “선생님들! 어데 가십니까? 좀 지켜줘야 할 것 아닙니까?” 소리를 내니, 평범한 차림의 내 행색을 보고 의아해 하는 눈치다. 이럴 때는 더 단호하게 나가되, 얼굴에는 미소를 띠어야 한다. 그래야 다툼이 없다. “여긴 국립공원입니다. 벌금 갖고 오셨습니까?” 그제야 금줄에서 물러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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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능선의 철쭉 향연. 가을엔 하얀 억새꽃이 갈기처럼 휘날리는 백마능선이지만, 봄은 분홍빛 철쭉의 홍마(紅馬)능선이다 © 뉴스1

낙타봉 끝자락 바위에서 바라보는 장불재까지의 능선이 정말 말의 기다란 등어리처럼 미끈하게 보인다. 이름도 그럴듯한 백마능선이다. 가을에는 억새의 하얀물결이 갈기처럼 휘날리는 백마(白馬)능선이지만, 봄에는 분홍빛 철쭉이 잔등을 보석처럼 수놓는 홍마(紅馬)능선이다.


이 능선에서도 나뭇잎을 따는 몇 명에게 ‘국립공원’을 가르쳤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도 당당하게 잎을 따길래 생태조사원인가 했는데, 장아찌를 담그기 위해 딴다는 답이다. 참 기가 막혔다. 그들의 빵빵한 비닐봉지 안에 든 잎들을 숲속으로 날리니, 그분들의 얼굴에 아깝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 장불재-서석대-중봉-증심사-주차장 6.4km “솟구친 돌기둥, 장엄한 돌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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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불재 전경. 아름다운 초지에 왼쪽의 인공시설-방송철탑이 안타깝다 © 뉴스1

해발 919m의 장불재(長佛峙)는 무등산의 산상(山上)광장이다. 사통팔달로 난 등산로 대부분이 장불재로 모여 흩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그늘집에서, 자리가 모자라 햇볕터에서 늦은 점심을 즐긴다. 나도 한귀퉁이에서 도시락을 펴는데, 어떤 학생이 “장이 불나게 나부려서 장불재여~” 라고 나름대로 해석한다. 정확하게는, 예전에 장불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장불재는 안타깝다. 아름다운 초원에 거대한 방송시설과 높은 철탑이 괴물처럼 서 있고, 차 두 대가 교행할 정도의 넓은 비포장도로가 이어져 있다. 그런 인공시설만 없다면 지리산의 연하선경처럼 신비로운 자연미를 뽐낼 장소다. 이곳에 노무현 대통령의 방문을 기념해 설치한 안내판에 이렇게 써있다. “멀리 봐 주십시오. 멀리 보면 대의가 이익이고, 가까이 보면 눈앞의 이익만 이익입니다.” 멀리 보기 위해 무등산 정상을 향한다.


15분쯤 걸어 입석대의 여러 돌기둥들이 솟구쳐 오른 모습을 올려다본다. 그들에겐 무언가 표정과 생각이 있다. 지질학적으로는 하나의 거대한 바위가 기둥 모양으로 쪼개진 것(주상절리/柱狀節理)이지만, 조각가가 정교하게 다듬어 일체감 있게 세운 작품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그런데, 국립공원에서 세운 안내판에는 입석대의 나이가 8700~8500만 년인데, 문화재청에서 세운 안내판에는 7000만 년으로 되어 있다. 두 기관이 과학적인 다툼을 해서 나이를 통일시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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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석대 주상절리. 솟구쳐 오른 돌기둥들에게 표정과 생각이 있는 듯하다 © 뉴스1

입석대에서 서석대까지 오르는 500m의 돌길에서, 발 밑의 돌들이 미처 솟구치지 못한 돌기둥들의 천정은 아닐까, 천 년 뒤에는 이 돌들도 높게 솟구쳐 깃발처럼 나부끼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서석대 정상(1100m)은 바로 눈 앞에 있는 무등산 정상인 천왕봉(1187m)을 대행해서 인증샷 포인트 역할을 하고 있다. 출입금지선 너머로 천왕봉의 바위봉우리가 반 이상 부서지고 주저앉아, 거기에 군부대 시설이 들어선 풍경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언젠가는 돌려놓아야 할 무등산의 대표경관이다. 투명한 날에는 멀리 지리산과 월출산을 조망할 수 있는데, 살짝 미세먼지가 낀 오늘은 아른거리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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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정상과 천왕봉. 오른쪽 끝 천왕봉의 공식 높이는 1,187m이지만, 정상의 바위가 깎여나가 현재의 높이는 1,183m다. 언젠가는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하고 4m의 돌을 세워야 한다 © 뉴스1

정상석을 내려서면 곧 서석대 바위들과 만난다. 입석대가 이미 쪼개진 바위들이라면 서석대는 쪼개질 준비를 하고 있어 기다란 병풍처럼 보인다. 이 장엄한 병풍이 노을에 물들면 수정처럼 반짝여 수정병풍이라고 불린다. 그래서 무등산의 별칭이 서석산(瑞石山)이다. 서석은 ‘서 있는 돌’을 한자로 옮긴 말이고, 입석도 서 있는 돌이라는 뜻이다. 왜 돌이 편하게 앉거나 눕지 못하고, 서 있는가? 무엇을 지켜보느라고? 그 답에서 무등산의 정신적 의미와 인문학적 가치가 나오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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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세계적인 지질공원 명소로 인증된 장엄한 돌기둥(주상절리) 병풍 © 뉴스1

오늘 본 입석대, 서석대와 더불어 3대 돌경관의 하나인 광석대(廣石臺)는 장불재에서 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규봉암을 둘러싸고 있는 돌기둥들이다. 입석대나 서석대보다 하나 하나의 돌기둥 크기가 크고 우람한 바위벼랑을 밑에서 보면 쏟아져내릴 듯 압도적이다. 그래서 “광석대를 보지 않고 무등산을 보았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

서석대를 내려와 중봉에서 다시 무등산을 바라본다. 방향이 바뀌었건만, 안양산에서 바라볼 때의 윤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묵직하고 묵묵하다. 중봉에서 중머리재로 내려서는 길은 오늘의 무등산 풍경을 요약하듯 철쭉 무더기와 ‘서있는 돌’들의 무더기가 짧게 이어진다.


길 중간에 멋진 소나무가 낮게 기울어 그늘을 만든 백만불짜리 전망 포인트를 만났다. 거기에 앉아 늘 이곳을 찾는다는 분이 소나무의 나이를 400년생이라고 한다. 400년 된 그늘에 앉아 내 신분을 밝히고 그와 잠깐의 대화를 했다.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승격된지 10년 되었는데, 뭐가 달라졌나요? 라는 나의 물음에 “남루했던 상가시설이 정비되고, 무분별하게 나있던 등산로가 정리되었다. 지역의 산이었는데 외지에서 많이 찾고, 많은 관심을 받는 산이 되었다.”고 답했다. ‘정원호’라고 이름을 밝힌 그는 “요즘 무등산에 이런저런 교통수단을 설치하자는 얘기가 있는데, 그건 말도 안되는 얘기다. 오히려 산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진지하게 의견을 냈다.


곧이어 내려선 중머리재는 그 이름이 좀 민망하다. 머리카락이 없는 고개라는 뜻인데, 식물복원을 해서 절반 이상 머리카락이 났으니 이제 ‘스님머리재’로 품위를 올려 부르는게 어떨지 제안한다.

여기서 증심사까지 2km는 대부분 ‘급하고 딱딱한’ 돌길이고, 절을 지나 주차장까지 2km는 아스팔트길이다. 산에서 대부분의 사고는 이런 내리막에서, 산행의 후반 시간대에 발생한다. 오늘도 몇몇 사람이 절뚝거리거나 옆으로 걷는다. 사고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천천히 걷는, 슬로 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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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의 여름. 등산로 주변은 군부대를 철거하고 자연복원을 한 풀밭이다 © 뉴스1

이 기사를 준비하면서 무등산에 관한 많은 글을 살펴봤다. 문병란 시인은 무등산을 “두 팔 벌려 안아도 안아도/ 끝끝내 다 안을 수 없는 산”이라고 읊었고, 김현 시인은 “무등산은 압력솥/ 폭발하지 않은 채/ 모두를 위한 밥이 될 때까지 끓고 있는 솥”이라고 비유했다. 김훈 작가는 “무등산은 솟아오른 산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내려와 있는 산/ 올라가야 할 산이 아니라 기대거나 안겨야 할 산.”이라고 썼다.


무등산에 관한 표현의 백미는 약 500년 전에 정지반이 쓴 「무등산을 유람하며(遊瑞石)」라는 시다. “산이 높아 그대는 무등인가/ 사람이 어리석어 나는 무등이라네/ 높은 것과 어리석은 것 비록 다를지라도/ 그대와 나, 다 같이 무등이라네.”


그냥 걸었던 다른 산과 달리, 무등산에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무등산은 태초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생명과 사람들을 보듬었던 산이지만, 현재의 우리는 과연 무등산을 귀하게 보듬고 있는가?


​(서울=뉴스1) 신용석 기자 = ​ stone1@news1.kr

2022.05.2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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