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컬처 ]

"우린 어디로 가는가"···
이준익이 시대극을 만드는 이유

by뉴시스

"우린 어디로 가는가"··· 이준익이

【서울=뉴시스】 영화 '박열'의 이준익 감독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윤동주를 다룬 '동주'(2016)와 무정부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박열을 그린 '박열'(6월28일 개봉) 사이에는 같은 감독의 손에서 나왔다고 믿기 힘들 정도의 간극이 있다.

 

시대의 아픔을 목도하고 홀로 조용히 흐느끼며 완성해낸 윤동주의 시(詩)와 일본 제국주의 한복판인 도쿄에서 '내가 조선의 개새끼'라며 내게 사형을 달라는 박열의 결기는 달라도 너무 다른 표현 방식이다.

 

그러니 연출도 정반대다. '동주'는 흑백 영상 속 윤동주의 시가 조용히 흐르는 작품이고, '박열'은 컬러 영상인 것은 물론 아무리 심각한 상황에서도 유지되는 유쾌함을 품고 있다.

 

1년 새 두 작품을 내놓으면서 모두 독립운동가를 다루고, 그러면서도 완전히 다른 작품을 내놓은 감독은 바로 이준익(58)이다. '라디오스타'(2006)와 '사도'(2015)가 모두 이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은 '동주'와 '박열'의 거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한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다채로운 필모그래피에도 불구하고 '동주'와 '박열', '독립운동가 2부작'에는 분명 수상한 기운이 있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어떤가.

 

"내가 보고싶어서 찍은 영화다. 보고싶은 장면을 영화를 통해 확인했다. 이 영화에 과실이나 결점이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누군가 '박열'을 비난한다면, 인정하겠다."

 

그런 반응을 어떻게 확인할 생각인가.

 

"네이버 댓글이다. 댓글이야말로 영화를 만드는 동력이다.(웃음)"

 

2013년 '소원'부터 올해 '박열'까지 햇수로 5년 동안 네 편을 만들었다. 이전에도 작품과 작품 간 간격이 넓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창작 활동이 더 왕성해졌다.

 

"영화는 어느날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찍는 게 아니지 않나. 오랜 기간 동안 특정 소재와 인물에 대해 관심을 두고, 더듬이를 세우다보면 처음에는 추상적이었던 게 구체화하면서 영화 상(像)이 그려진다. 그 상에 맞게 자료를 섭취하고, 우선 순위와 대소 구분을 통해 선별하는 작업을 거치면서 시나리오를 써나간다. 두 시간 안에 그 이야기들을 압축해 삶의 본질로 깊숙히 들어간다."

"우린 어디로 가는가"··· 이준익이

【서울=뉴시스】 영화 '박열'의 이준익 감독.

그렇다면 '박열'은 어떤 작업이었나.

 

"'동주'(2016)가 윤동주와 송몽규의 관계성 안에서 시대를 관통해 들어갔다면, '박열' 또한 박열 혼자가 아니라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관계를 통해 만들어갔다."

 

일제 시대가 유행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 시대를 다룬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해도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두 편 연속으로 만드는 건 흔하지 않은 일이다.

 

"박열을 영화화하겠다는 생각은 '아나키스트'(2000)를 제작할 때부터 있었다. 다만 나의 자질 부족과 함량 미달로 못 만들었던 거다. 그러다가 문득 '동주'를 하고 나면 '박열'로 가는 문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동주'와 '박열'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길래 그렇게 생각했나.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다행스럽게 '동주'가 크게 비난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감하게 '박열'을 만들 수 있겠구나 했던 거다."

 

두 작품은 한 사람이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힘들 만큼 분위기가 다르다.

 

"그렇다. '박열'을 찍고 나서 알았다. 박열은 '왕의 남자'(2005)의 '장생'(감우성)의 내면을 가진 인물이었다. 장생은 권력에 대책 없이 저항한다. 그 기질이 박열에게도 있다. 박열 또한 일본 제국주의를 상대로, 그것도 대법정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신념을 선언한다."

 

박열에게서 '동주'의 송몽규가 보이기도 했다.

 

"장생·송몽규·박열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온순할 때는 한없이 온순하지만, 격할 때는 끝도 없이 격한 인물이다. 장생은 공길에게, 몽규는 동주에게, 박열은 후미코에게 온순했지만, 권력에 맞설 때는 정반대였다. 그래서 그들은 입체적인 사람들이다. 이건 조선인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기질이기도 한 것 같다."

"우린 어디로 가는가"··· 이준익이

【서울=뉴시스】 영화 '박열'의 한 장면.

'동주'와 '박열' 모두 일제 강점기와 독립운동가를 다루지만, 주인공을 통해 일제를 적극 비판하기보다는 등장인물의 내면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그게 목표였다. 두 작품 모두 심리극이다. 사건 형태를 보면 상황극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두 영화의 줄거리는 상황이 아닌 심리에 의한, 그러니까 동주와 몽규와 박열과 후미코의 내면을 따라간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박열'은 판사가 박열에게 사형을 언도한 게 아니라 박열이 그들로부터 사형을 쟁취해낸 이야기다. 아주 집요하고 예민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사형을 받아내지 않나.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느냐 이거다. 그게 바로 박열의 내면이 아닌가."

 

"사형을 쟁취한다"는 말의 심각함과는 달리 영화 분위기는 시종일관 유머러스하다. 무겁고 진중했던 '동주'와는 정반대였다.

 

"그게 정당하고 합당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영화적으로 흥미로운 전개를 위해 필요했다. 관객을 모셔놓고 잠을 재울 수는 없지 않나.(웃음) 두 번째가 중요하다. 만약 '박열'의 유머러스함이 오직 영화적 흥미를 위한 것이었다면, 그건 잔머리다. 이 작품의 핵심은 박열이 쇼를 한다는 거다. 박열은 다테마스 판사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사형을 쟁취하기 위해 그들을 가지고 논다. 그 모습을 더 선명하게 표현하기 위해 코믹한 요소들이 필요했다."

 

'동주'와 '박열'은 분위기가 상반된 영화지만, 어떤 면에서는 공통점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 영화는 모두 부끄러움에 관한 작품이 아닌가. '동주'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인물이 주인공이고, '박열'은 부끄러움을 느끼라고 말하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그렇다. '동주'의 윤동주는 식물적인 인간이다. '박열'의 박열은 동물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 윤동주는 누군가를 대변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 부끄러움을 고백할 뿐이다. 박열은 대변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박열은 주장하고 선언한다.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두 인물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우린 어디로 가는가"··· 이준익이

【서울=뉴시스】 영화 '동주'의 한 장면.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고증에 철저했다고 밝힌다. '동주'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차이는 무엇인가.

 

"'동주'가 70% 고증된 것이라면, '박열'은 90% 고증된 작품이다. '동주'에는 허구의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70%다. '박열'에는 허구의 인물이 한 명도 없다. 날조와 왜곡도 없다. 다시 말해 없는 사건을 창작해 집어넣지 않았고, 기존 사건을 비틀지도 않았다. 시간 순서를 바꾸지도 않았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 어쨌든 이건 영화이고, 그렇다면 해석이 더 중요한 게 아닌가.

 

"고증을 철저히 한 상태에서 들어간 해석과 왜곡과 날조를 통한 해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고증이 어느 정도 담보되지 않은 창작은 있을 수 없다."

 

'박열' 또한 '동주'와 마찬가지로 감정을 억제했다. 독립운동가를 다룬다는 게 감독이나 배우, 관객을 어쩔 수 없이 뜨겁게 하는 요소가 있지 않나.

 

"내가 자처해서 고증을 강조한 이유가 그것이다. 일제 강점기를 감정적으로만 소비할 수는 없다는 거다. 그래서 바뀐 게 뭔가. 그래서 제시한 방향이 무엇인가. 분노와 증오라는 감정에 함몰되면서 이성적 사고 체계와 논리적 근거성이 서서히 소멸되고 있다. 뜨거운 감정 못지 않게 중요한 게 이성과 합리적 추론이다."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박열의 기록은 일본 식민지, 일본 제국주의를 파악하는 관문이다. 그가 재판받는 3년 동안 그들이 관동 대지진으로 인한 조선일 학살 사건을 어떻게 은폐·조작하려했는지 볼 수 있다. 또 은폐와 조작을 가리기 위한 합리적 절차성을 가장한 권력의 민낯을 알 수 있다. 그건 또 단순히 일제에만 해당하는 게 아닌 보편적인 권력의 속성이기도 하다."

 

연출을 맡은 12편 중 8편이 시대극이다. 당신에게 시대극은 어떤 의미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나는 그게 궁금하다. 내 몸에는 선조들의 DNA가 담겨있을 것이고, 그 DNA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뒤주에서 죽은 사도의 삶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알 수 없는 주사 때문에 죽은 윤동주의 삶이, 왕을 알게된 광대의 삶이 궁금하다."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