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조성진 "5년만에 처음 연주없이 지내...20대 후반 책임감 더 느껴"

[컬처]by 뉴시스

5월 8일 새 앨범 '방랑자-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발매

2012년 만 18세에 파리로 유학 '방랑자 삶' 시작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후 독일에 터전잡았지만 호텔이 집 같아

"지난달 온라인 콘서트...집에서 피아노 치는걸 보여주는 건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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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조성진. 2020.04.14.(사진 = Christoph K?stlin, DG 제공) photo@newsis.com

방랑은 언젠가 끝나게 돼 있지만, 피아니스트 조성진(26)의 항해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인 첫 '쇼팽 콩쿠르 우승자'라는 수식은 일찌감치 떼어 버리고, 음악이라는 바다에서 '대항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2012년 만 18세의 나이에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을 당시 몇 년 동안은 어디가 집인지 혼란스러웠다. 방학이나 연주 때문에 다시 찾은 한국이 집 같고 다시 파리로 오면 그곳이 집 같았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독일 베를린에 터전을 잡았지만 이곳에서 제대로 사는 기간은 1년에 넉 달 정도. 항상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연주하는 것이 직업이니 호텔이 집 같기도 했다.


그러다 조성진은 결론을 이렇게 내렸다. "'내가 있는 곳이 집'이구나.'" 하지만 그것이 안주는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세계 공연계가 얼어붙었지만, 온라인 콘서트로 그의 항해는 이어졌다. 실제 많은 한국의 팬들이 8400㎞를 순식간에 쉬지 않고 달려온 그의 슈베르트로부터 위로를 받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2시, 한국시간으로는 같은 날 밤 10시 독일 베를린 텔덱스 스튜디오에서 조성진과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가 약 1시간 동안 들려준 슈베르트 가곡은 강한 인력(引力)을 발휘했다. 몸은 떨어져 있을 지라도, 음악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조성진은 14일 유니버설뮤직을 통한 한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관객 없이 라이브를 한 건 처음이었어요. 초반에는 어색했는데, 나중에는 정말 콘서트를 여는 것처럼 에너지를 느꼈다"고 흡족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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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조성진. 2020.04.14.(사진 = Christoph K?stlin, DG 제공) photo@newsis.com

조성진은 연주 없이 쉬며 지내는 것은 5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괴르네는 커리어가 30년이 넘었는데 처음이래요. 그러니까 얼마나 이 상황이 어색하겠어요. 그래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실 음악가들 중에 '워커홀릭'이 많거든요. 저도 약간 마찬가지고. 어떻게 할 지는 몰랐는데, 마침 베를린에 살아서 좋은 기회가 왔죠."


괴르네와 온라인 연주를 한 날은 '피아노의 날'이기도 했다. 조성진은 도이치 그라모폰이 ‘스테이앳홈’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마련한 무료 특별 온라인 연주회에도 참여했다. 자신의 베를린 집에서 브람스 인터메조를 연주했다. 한국시간으로 29일 새벽 12시30분부터 조성진의 연주가 시작됐는데, 한 때 2만명 이상이 시청하기도 했다. "집에서 피아노를 치는 걸 보여주는 건 처음이었어요. 피아노를 조율한 지 오래돼서 피아노 소리가 조금 아쉬웠어요."


조성진은 5월 8일 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 -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 베르크·리스트 피아노 소나타'를 발매한다. 유니버설뮤직 그룹 산하의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DG)을 통해 발표하는 네번째 레코딩이다.


그간 조성진은 뉴욕 카네기홀을 비롯해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베를린 캄머홀, LA 월트디즈니홀 등 각지에서 연주하며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세계에 이름을 알려왔다. 대륙과 문화를 오가며 자연스럽게 '방랑자'로서의 삶을 살아왔고 이런 면모가 앨범에 녹아난다.


지금까지는 쇼팽, 드뷔시, 모차르트 등 한 작곡가의 작품만 녹음했다. 콘셉트에 맞춰 여러 작곡가들을 엮어 녹음을 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뉴시스] 조성진. 2020.04.14.(사진 = Christoph Köstlin, DG 제공) photo@newsis.com

방랑자 가곡의 선율을 차용해 탄생한, 다소 우울하지만 동시에 가장 화려한 작품으로 꼽히는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은 무조건 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곡에 맞춰 다른 곡들을 직접 골랐다.


기교적으로 힘과 지구력을 요구하는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S.178'이 그 중 하나다. 앞선 두 작품을 잇는 곡으로는 베르크의 '피아노 소나타 Op.1'을 선택했다. 작년 6월 베를린에서 슈베르트와 베르크를 녹음했다. 같은 해 10월에 함부르크에서 리스트 소나타를 녹음했다.


조성진은 "세 곡의 공통점은 소나타 형식의 곡인데 악장마다 연결이 돼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한 악장 소나타처럼 들리는 공통점이 있죠. 리스트 소나타도 마찬가지고, 베르크 소나타는 한 악장의 곡이긴 하지만 몇 개의 주제를 가지고 한 곡을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조성진은 '방랑'이라는 것이 '낭만주의 시대'에 굉장히 중요한 단어였던 것 같다고 봤다. 특히 '슈베르트'한테라는 점을 강조했다.


"물론 리스트도 낭만 시대의 작곡가였고 그 사람의 삶도 (물론 말년에는 한 곳에 머물렀지만) 여기저기서 살았고 여행도 많이 다녔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예술가, 보통 피아니스트나 뮤지션이 방랑까지는 아니지만, 여행을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이런 점이 이 시대 뮤지션과도 공통점이 있지 않나 해서 그렇게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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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조성진. 2020.04.14.(사진 = Christoph K?stlin, DG 제공) photo@newsis.com

대가들이 연주한 방랑자 환상곡 명반은 많다. 이번 앨범으로 자신만의 방랑자 환상곡을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조성진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어떻게 하면 더 특별해질까'라는 생각을 하면 더 부자연스럽게 되는 거 같다"는 것이다.


"억지스럽죠. 제가 생각한대로 치는 것이 오히려 제일 개성 있는 연주가 되지 않을까 해요. 사람 목소리가 다 다르듯이 연주자마다 치는 것도 다 다르거든요. '어떻게 하면 더 다르게 칠까', 이런 생각 말고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개성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올해는 5년 마다 돌아오는 쇼팽 콩쿠르의 해다. 넥스트 조성진을 뽑을 차례다. 그런데 4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예정됐던 쇼팽 콩쿠르 예선은 코로나19 여파로 9월로 연기됐다. 본선은 예정대로 10월에 열리지만, 많은 연주자들이 5개월을 더 긴장감 속에서 보내야 한다. 이번 참가자들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제가 참가했을 때 바르샤바의 10월은 정말 추웠어요. 점점 더 추워지니까 따뜻하게 입고 가는 걸 추천 드려요. 그리고 저 때는 모든 참가자가 같은 호텔에 있었어요. 쇼팽 콩쿠르 보러오는 관광객이 많아요. 일본인이 많고 프랑스 사람들도 있고 한국인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호텔수용 인원이 2000~3000명이라 아침 먹기가 힘들어요. 다들 사진 찍어 달라고 하니까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참가자들 한테요. 시간이 오래 걸려요. 2, 3차 때는 커피숍에서 아침을 먹는 게 좋을 거예요. 시간 절약을 위해서요."


조성진은 '쇼팽 콩쿠르' 이후 "시간이 정말 빨리 흐른 것 같다"고 돌아봤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시간은 그렇게 빨리 간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2015년부터 올해까지는 빠르게 지난 것 같아요. 저도 벌써 한국 나이로는 스물일곱 살이에요. 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받침에 'ㅂ'이 들어가면 20대 후반이라고. 여덟, 아홉. 그래서 책임감도 더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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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조성진. 2020.04.14.(사진 = Christoph K?stlin, DG 제공) photo@newsis.com

성장했다고 느끼는 걸까. 하지만 "성장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어떤 작곡가는 스물 다섯살에 대단한 작품을 썼는데 '나는 지금 뭐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브람스는 20대 초반에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죠.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변화'라고 하면 이 생활에 조금 더 적응이 된 거 같은 느낌이 들고요. 연주하러 다니고 이런 생활이요."


조성진은 지난해 9월 경남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연주에서 지휘자로 데뷔했다. 플레이어에서 아티스트로 성장한 순간이라고 보는 관계자들도 많았다.


"유럽에서 (지휘) 제안이 들어와서 만약 성사된다면 2~3년 안에 해볼 수 있을 거 같아요. 하지만 지휘자로서는 아직 자신이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레퍼토리(피아노 협주곡)는 할 가능성이 조금은 있을 거 같아요. 공연은 계속 해야죠. 저는 이 커리어를 유지하는 게 큰 도전일 거 같아요. 좋은 오케스트라, 뮤지션과 함께 해봤으니까 앞으로도 오케스트라, 홀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재초청을 받고 이런 게 도전이라고 볼 수 있겠죠."


오는 7월 한국에서 리사이틀을 예정한 조성진은 앞으로도 건강하게 피아노를 계속 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러면서 코로나19로 세상이 엄혹한 이 때 "음악을 더 많이 듣게 된 거 같다"고 했다. 에밀 길렐스, 예핌 브론프만의 연주를 요즘 많이 듣는다고 했다.


"영화도 많이 보고. 사실 집에 하루 종일 있으니 그런 것이 사람들의 여가생활이 될 수 있는 거죠. 음악은 우리 삶에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꼭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이럴 때 음악을 많이 듣잖아요. 마땅히 할 게 없거나, 위로가 필요할 때나, 즐기려고 할 때나. 우리가 살아가는 데 음악이 꼭 필요하죠."


코로나 19로 인해 일상 생활의 소중함도 다시 한번 더 느꼈다. "레스토랑에 가서 평범하게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많이 느꼈어요. 어렵고 힘든 시기지만, 우리는 곧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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