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하 "연극 '작은아씨들'은 4명의 균형서사"

[컬처]by 뉴시스

홍보 없이도 5회 공연 매진

6회 공연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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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작은 아씨들'. 2020.05.03. (사진 = '작은 아씨들' 제공) photo@newsis.com

공연계에 소리 소문 없이 마니아들 사이에서 매진된 핫한 공연이 있다. 홍보를 따로 하지 않고, 기존 티켓 예매처를 통하지도 않았으며 블로그와 트위터 공지만으로 오는 8~10일 연희예술극장에서 예정된 5회 공연이 매진된 연극 '작은 아씨들'이다. 요즘 흐름과 달리 블로그에 선착순으로 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예매가 진행되기도 했다.


회당 100석의 소극장이지만 예매에 실패한 관객이 몇 배는 된다. 회차를 늘려달라는 관객의 요청에 힘입어 오는 11~13일 6회 공연을 추가했다. 그럼에도 11일 오후 7시30분 공연 예매가 시작된 2일 오후 2시에는 1분 만에 400여개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최근 할리우드 감독 겸 배우 그레타 거윅이 미국 작가 루이스 메이 알콧(1832~1888)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각색·연출한 영화 '작은 아씨들'은 "새로운 시대를 위한 '작은 아씨들'"이라는 호평을 들었는데, 이번 연극 역시 "다가오는 시대를 위한 '작은 아씨들'"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이번 작품의 기획에 중심에는 배우 최유하가 있다. 최근 연습실이 있는 방배동에서 만난 최유하는 2004년 미국 뮤지컬배우 서튼 포스터가 브로드웨이 뮤지컬 '작은 아씨들'에서 '조' 역을 맡았던 것을 떠올렸다.


"'작은 아씨들'은 어릴 때부터 워낙 좋아했던 작품이에요. 어린이용 책부터 읽었고, 비디오 가게에 있는 애니메이션 '작은 아씨들' 마니아였죠. 그들 중 한 명이고 싶었어요. 자매가 없어서 또래들끼리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 부럽기도 했고요. 그런데 포스터가 조 역을 맡았을 때 새롭고 더 좋았죠."


2005년 '풋루스'로 데뷔한 최유하는 이후 '제너두', '모차르트 오페라 락', '번지점프를 하다', '황태자 루돌프', '블러드 브라더스', '난쟁이들', '킹키부츠', '판(PANN)' 등에 출연하며 주축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작은 아씨들'이 국내 무대에 각색 등을 통해 오른다면 꼭 출연하고 싶었지만 깜깜 무소식이었다. 그러다 최근 거윅의 영화가 주목 받았고, 지금 시점에 '작은 아씨들'이 공연을 해도 무리가 없다는 판단을 했다.


'작은 아씨들'은 현모양처를 바라는 책임감이 강한 맏딸 '메기', 작가를 꿈꾸는 독립적인 둘째 '조', 음악에 재능이 있는 다정한 셋째 '베스', 그림을 잘 그리며 귀엽고 사랑스런 '에이미'가 주인공이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0년대 미국 매사추세츠 주를 배경으로 성격이 각기 다른 네 자매가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꿈을 키우면서 성장해가는 모습을 따뜻하게 그렸다. 1868년 발표 당시 이례적으로 소년 아닌 소녀의 성장담을 내밀하게 다뤄 주목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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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작은 아씨들' 조 최유하…베스 홍지희. 2020.05.03. (사진 = '작은 아씨들' 제공) photo@newsis.com

'작은 아씨들'은 시대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유연함이 특징이다. 최유하도 "2004년에 본 작품은 그 때라 용납이 되는 것이 있고, 안 되는 것이 있었다"면서 "영화를 보면서 작품을 대하는 또 다른 시선을 보게 됐다"고 했다.


이번 연극 '작은 아씨들'이 출발하게 된 근원에는 최유하와 지인들이 함께 하는 고전 스터디가 있다. 체홉의 '세자매'를 공부하던 네 여성 배우는 네 여성의 이야기인 '작은 아씨들'을 떠올렸다.


이 작품은 희곡이 없으니, 스스로 각색을 하자는 데까지 의견이 나왔다. 연출 송정안과 각색·연출을 맡은 정유주, 영상 임소라 등이 합세하면서 꼴이 갖춰졌다. 스터디 멤버이나 개인 스케줄로 이번에는 빠진 배우 김히어라도 외곽에서 지원 사격을 했다. 조연출 송진주, 작곡·편곡 서은지 등도 참여했다.


그렇게 해서 메그 소정화, 조 최유하, 베스 홍지희, 에이미 박란주 등 화려한 캐스팅 진용이 갖춰졌다. 그런데 이번 '작은 아씨들' 팀은 각 캐릭터가 전형적으로 소비되지 않기를 바랐다.


최유하는 "모든 인간이 그렇듯 각 캐릭터의 다양한 면을 보기를 바랐다"면서 "요조숙녀, 허약한 체질, 왈가닥으로 딱 구분하지 않고, 네 명의 균형서사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결국 '작은 아씨들'은 앙상블 연극인 셈이다. "관객들이 보시면서 '메그의 저런 모습은 나와 닮았고 베스의 저런 모습은 내게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네 캐릭터를 다 이해했으면 한다"는 마음이다. "'작은 아씨들' 원작자가 바랐던 것처럼 같이 보면서 즐기고 싶었어요."


최근 공연계에는 단순한 여성 중심의 '여성 서사'를 너머 '포스트 여성 서사', 즉 여성 서사 그 너머까지 바라보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여성이 성공을 하거나 성장하는 이야기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여성의 삶을 통해 사람 자체의 이야기를 선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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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작은 아씨들' 메그 소정화·에이미 박란주. 2020.05.03. (사진 = '작은 아씨들' 제공) photo@newsis.com

여성 중심의 이야기를 여성의 성장 이야기 또는 여성의 성공담으로만 치부하는 것도 캐릭터와 작품의 한계를 미리 그어버린다는 지적이 있기도 하다.


연극 '작은 아씨들'은 '포스트 여성 서사'의 화룡점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성들이 어느 때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하면서, 다른 여성들 그리고 남성들과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유하는 "'어벤져스'를 볼 때 이제 더 이상 '블랙 위도우' '스칼렛 위치'를 영화의 꽃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그렇게 변화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저희도 '여자 이야기를 할 거야'가 아니라 누군가의 시선으로 단순히 규정하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바람을 전했다.


"메그는 '요조 숙녀', 조는 '톰 보이', 베스는 '병약하고 가련하다', 에이미는 '제멋대로인 숙녀'라는 식으로 틀을 만들고 싶지 않은 거예요. 원작이나 이번 거윅의 영화는 캐릭터를 다각적으로 볼 수 있게 했죠. 네 캐릭터 모두 다양한 성향을 가지고 있거든요. 한 캐릭터로 규정짓지 않고 인간적인 이야기로 녹여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올해 데뷔 15주년을 맞은 최유하는 "스스로 더 발전하고 변화에 더 민감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말을 더 잘 듣기를 바라요.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걸 경험하면서, 그걸로 인해 깨달은 걸 녹여내서 표현하고 행동했으면 해요."


그러면서 예를 든 것이 넷플릭스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인 봉준호의 영화 '옥자'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을 당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즐기던 최유하는 의아했다. 일부 영화관에서 '옥자'를 상영하기는 했지만, 좋은 영화가 영화관에서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답답했다.


하지만 최근 스칼릿 조핸슨, 애덤 드라이버의 '결혼 이야기' 같은 수작들이 넷플릭스에서 쏟아져나오고 본인도 이제 넷플릭스를 즐겨보게 되면서 새로운 것에 대해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접해보지 못한 것이 등장했을 때 거기에 끌려가기보다는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 알아갔으면 해요.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반감은 지양하려 합니다."


이재훈 기자 
2020.05.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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