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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미인도 공개와 소장품 93점의 '균열'…익숙함과 낯섦

by뉴시스

미인도 공개와 소장품 93점의 '균열

【과천=뉴시스】 최진석 기자 = 18일 경기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관계자가 위작 논란이 일고 있는 '미인도'를 바라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진위 논란이 일고 있는 '미인도'를 이날 언론에 공개 19일부터 '소장품전:균열'을 통해 일반에 공개, '미인도'가 일반에 공개되는 건 26년 만에 처음이다. 2017.04.18. myjs@newsis.com

제목 탓일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소장품 특별전 '균열'전이 벌써부터 '균열'을 보이고 있다.

 

일단, '다 잘난' 93점의 균열이다.

 

94점이 동시에 수장고에서 나왔지만 단 한점, 그 그림만 빛을 받고 있기 때문. 이미 전시장에 나오기 전부터 세상을 흔들었던 그 '미인도'다. 93점이 모두 나란히 줄지어 전시됐지만 '미인도'는 특혜도 그런 특혜가 없다. 전시장 맨 끝, 구석진 자리에 있다고 하지만 완전히 '독방'체제다. 더군다나 방탄유리까지 끼어입고 온 조명을 다 받고 있다.

 

29×26cm짜리 액자에 끼워진 미인도는 '세상 호기심' 충만이다. 약간 우울해 보이는 표정이지만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보는 사람, 오는 사람과 마주하며 당당하다.

 

각이지고 홀쭉한 볼도 사연있어 보인다. 26년간 위작과 진작사이를 오가며 겪은 풍파탓으로도 느껴져 연민감을 자아내게 했다.

 

그동안 사진으로, 확대된 이미지로만 봐왔던 것과는 달리 작은 화폭속에 들어있는 '미인도'는 오묘한 아우라를 발산했다. 사람들 발길을 끌어당기는 '미인도'가 사람구경을 하는 듯한 모습이다. 위아래, 옆,앞, 가까이 멀리 다가서며 다시 바라보며 자신을 뜯어보는 사람들을 빤히 바라보는 형국이다.

미인도 공개와 소장품 93점의 '균열

【서울=뉴시스】미인도, 1997, 화선지에 채색, 29x26cm

공개가 되자마자 미인도의 '균열'도 시작됐다.

 

전시장에 걸린 미인도는 위작이냐 진작이냐를 넘어선 모양새로 진동중이다. 물론 아직 '미인도'는 정체성을 확실히 찾지 못했다. '진품'이라는 검찰의 발표와 달리, '위작'이라는 유족측은 항고한 상태다.

 

아직 법정 공방중인 '미인도'가 전시장에 '균열'때문이고, 그로인해 또 전시해도 되냐 마냐의 '균열'을 던지고 있다.

 

미술관측은 '균열'로 컨셉을 잡은 소장품전에 '미인도'가 낄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미인도' 진위여부 논란이 결국은 균열의 의미"이고, "그 논란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목표다. '미인도'를 전시 기획취지에 맞게 공개한다는 용기를 냈지만, 미술관측은 소심함을 보였다.

 

천경자 이름을 빼고 '작자 미상'으로 공개했다. 전시장에 나온 '미인도'에는 소장품 일련변호인 ‘KO-00352’와 ‘작자 미상, 1997, 화선지에 채색, 29×26㎝’ 캡션이 달렸다.

미인도 공개와 소장품 93점의 '균열

【서울=뉴시스】정복수, 생명의 초상, 1985, 하드보드지에 연필, 107.5x156.5cm

장엽 소장품자료 관리과장은 “이번 전시에는 천경자 미인도에 대한 저작자를 아예 명시하지 않고,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미술관은 진품이 아니라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미술관측은 "저작자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해서 위작임을 인정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라면서 “미술관은 ‘진품’이라고 믿고 있다. 검찰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며, 다만 유족 측이 항고장을 제출한 상황에서 ‘진품 혹은 가품이다’라고 언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왜 이름을 뺀 것일까.

 

"유족측을 배려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미술관 박성재 고문 변호사는 “법적으로 판단해볼 때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로 표시해도 문제 되지 않는다"면서 "다만 유족을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술관이 논란을 확대 재생산하지 않으려는 의도"라는 것.

 

박 변호사는 "저작권법상에는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이 있는데 어느 것으로 문제 삼아도 미인도에 대한 법적인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면서 :적법한 절차에 의해 인수한 미술관이 미인도에 대한 저작재산권을 지니며, 대법원 판례에 의해서도 저작인격권 역시 미술관에게 있다. 저작인격권은 상속이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미인도 공개와 소장품 93점의 '균열

【서울=뉴시스】구본웅, 친구의 초상, 1935, 캔버스에 유채, 62x50cm

법정다툼을 뒤로 하고 공개된 '미인도'는 전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그 강렬한 존재감 탓에 소장품전에 나온 나머지 작품들은 뒷전이지만, 93점의 소장품도 '균열'감이 작렬하는 작품들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될수 있는 건 국내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인정받았다는 증명서이기도 하다.

 

이번 '균열'전에 맞춰 나온 작품들은 세상에 저항하고 균열을 내며 화제가 됐던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미인도'에 맞먹는 '누드사진'도 나와있다. 자신과 아내의 맨몸 사진 등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2005년 대법원에서 일부 유죄를 선고받은 미술교사 김인규 부부의 누드사진도 나왔다. '예술과 외설' 사이에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이외에도 1930년대 한국 표현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구본웅(1906-1953)의 '친구의 초상', 설치미술작가 이불의 사이보그W5, 인체의 형상을 왜곡해 그려 외계인 같은 그림으로 담아낸 정복수의 '생명의 초상', 남성의 권력적인 시선에 지배 받는 여성누드에 도전한 김옥선의 '방 안의 여인', TV 뉴스를 집요하게 편집하여 대한민국 대표 방송사의 메인 앵커들이 작가의 생각을 대변하게 만들어버린 김범의 '무제(뉴스)',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현실의 부조리함을 강조하는 한운성의 '박제된 울산바위', 사진조각이라는 독특한 작업으로 스타작가가 된 권오상의 '트리'등이 전시됐다.

 

예술가들은 기존의 체계와 사고에 균열을 가하는 전략으로 끊임없이 의심하고, 집요하게 파고들며,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고, 숨겨진 것을 드러낸다.

미인도 공개와 소장품 93점의 '균열

【서울=뉴시스】이불, 사이보그W5, 1999, 플라스틱에 페인팅, 150x55x90cm

친숙하다고 여겨졌던 우리의 몸은 작가들에 의해 베이거나 왜곡되기도 하고, 공동체의 관념을 벗어나면서 생소하고 때론 위험한 존재가 된다. 그 낯선 몸과의 대화를 통하여 관람객들은 불변의 존재라고 여겼던 우리 신체가 그동안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되고 구속되어 있었는가를 깨닫게 된다.

 

‘균열’은 공고하게 구축된 권위와 강요된 질서에 끊임없이 도전했던 근·현대미술 작가들이 은밀히 혹은 공공연히 추구했던 핵심적인 가치 중 하나였다. 비록 장르, 매체, 기법, 미학적 목표, 심지어 세대조차 서로 달랐지만, 이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관객들의 고정관념을 흔들어 그 견고한 토대에 균열을 낸다. 그리고 그 갈라진 틈새를 통해 들여다본 세계는 더 이상 익숙했던 그 세계가 아니다.

 

실제로 전시실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상처입고, 뒤틀리고, 생경함 몸들을 보여준다. 기대한 만큼 감동적인가?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를 심히 거북하게 하는가?

 

당연시되었던 사회적, 문화적 관습, 우리의 고정관념에 균열을 선사하는 이번 전시는 관람객에 오히려 되묻고 있다.

 

'미술작품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명작이 선사하는 깊은 감동?' '세파에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치유?'

미인도 공개와 소장품 93점의 '균열

【서울=뉴시스】공성훈, 개, 2008, 캔버스에 아크릴릭, 227.1x181.8cm

"굳게 지켜온 세계에 금이 가고 친숙했던 것들이 낯설어지는 경험이 항상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아니 차라리 성가시고 어색하고 심지어 불편하기까지 한 경험에 가까울 것이다. 행여 가슴 벅찬 감동이나 지친 심신을 다독여주는 위로를 기대했다면, 전시실을 나서는 관객에게 흔히 실망과 짜증이 따라온다."(임대근 학예연구사)

 

의미심장하고 독특한 작품들때문에 전시장은 의외로 생동감이 넘친다. '균열'전은 20세기 이후 한국 근현대미술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망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기획이다.

 

물론, 균열전의 일등공신은 '미인도'다.

 

'그림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핑크빛 기대를 접고, 또 '미인도'만 집중하지말고 호시탐탐 고정관념에 균열을 내는 작품들 모두 뜯어보는 것은 어떨까. 서울관 때문에 뒷방신세인 과천관이 오랜만에 활기를 띠고 있다. 전시는 2018년 4월까지. 관람은 무료.

 

박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