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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아름다운 생태 도시 순천에 가다

by노블레스

오감으로 경험한 순천에서 만난 남도의 하늘과 바람과 바다의 맛.

선암사 대웅전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 정호승의 시 '선암사' 중에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를 가라'고 정호승 시인은 말했다. 대학시절, 역사를 전공해서 전국 8도의 사찰을 순례했는데 어떤 사찰을 가장 좋아하냐고 물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선암사요.”

선암사 가는 길

스무살, 남도 여행길에 들른 순천은 당시 내가 읽고 있던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 된 벌교의 옆 동네였고, 선암사는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가 태어난 절이다. 한창 '태백산맥'에 빠져있던 나와 친구들에게 선암사는 그래서 더 특별했다. 20년도 훌쩍 지나 순천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곳도 선암사다. 순천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선암사로 향했다. 조계산 자락에 위치한 선암사 올라가는 입구에 다다르자, 옛 기억이 몽실몽실 떠올랐다. 천년 넘은 초록이 울창한 숲과 단정한 흙길 옆으로 흐르는 맑은 시냇물, 세월이 지났지만 그 고운 풍경은 그대로다. 선암사는 사찰 자체도 예쁘지만 가는 길이 유독 아름답다.


계곡길을 따라가다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무지개 모양의 다리 승선교와 강선루를 만난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무지개다리 중 가장 자연스럽고 우아하다는 평을 듣는 다리다. 반원형의 승선교가 물에 비치면 완전한 원형을 이룬다. 선암사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매화가 피어나는 이름 봄이지만 신록이 푸르른 여름도 단풍으로 물든 가을도 하얀 눈으로 둬덮인 겨울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태고종의 총본산인 선암사는 후사가 없던 정조가 100일 기도를 통해 순조를 얻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신성한 기운이 넘치는 곳이다. 깊고 청정한 숲 한가운데 고풍스러운 전각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산사의 모범답안을 보여주는 듯하다. 여러차례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현존하는 선암사의 건물 대부분은 순조 이후 다시 지어진 것. 그러나 그 마저도 1948년 여순사건과 1950년 한국전쟁의 피해로 많은 전각이 소실되고 지금은 20여 동만이 남아있다.

선암사의 해우소

선암사에 왔다면 볼 일이 없어도 꼭 봐야할 곳이 있으니 바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우소로 알려진 뒷간이다. 지면 보다 높은 곳에 위치했고, 통풍이 잘 되도록 앞 뒤 문이 없이 틔여 있는 게 특징이다. 정호승 시인 뿐 아니라 소설가 김훈도 '자전거 여행'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전남 승주 지방을 여행하는 사람들아, 똥이 마려우면 참았다가 좀 멀더라도 선암사 화장실에 가서 누도록하라. 여기서 똥을 누어보면 비로서 인간과 똥의 관계가 어떠해야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 사랑이여, 쓸쓸한 세월이여, 내세에는 선암사 화장실에서 만나자.” 대체 이토록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소재로 사랑받는 화장실은 선암사 뒷간 말고는 없지 않을까.

(위) 전통 야생차 체험관에서 즐기는 차의 시간, (아래) 길상식당에서 먹은 산채정식

선암사 내려오는 길에 자리한 전통 야생차 체험관에 들렀다. 순천은 지리적으로 습하고 배수가 잘되서 차가 잘 자라고 맛있다. 허균 선생도 '도문대작편'에서 '작설차는 순천산이 제일 좋다'고 했다.순천 전통 야생차 체험관에서는 다양한 차 관련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다례체험을 비롯해 차만들기, 차음식 만들기, 다도 강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단아한 한옥의 툇마루에 앉아 싱그러운 솔내음을 맡으며 은은한 차의 시간을 즐겼다.


어느새 배가 출출해졌다. 늦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선암사 입구 주차장 근처에 위치한 길상식당을 찾았다. 산채정식만 시켜도 홍어삼합과 꾸득꾸득하게 말린 고등어에 양념을 얹은 요리, 계란찜, 도토리묵, 전과 10여개의 각종 산채 반찬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다. 곰삭은 김치와 갓김치는 기본이다. 전라도의 손맛이 담긴 음식들로 배를 채우자 마음의 허기까지 가시는 듯 했다.

순천에서 선암사와 많이 찾는 사찰이 바로 송광사다. 조계산의 동쪽에 선암사가 자리잡고 있다면 조계산의 서쪽에는 송광사가 자리잡고 있다. 송광사는 조계종의 승보사찰로 총 16명의 국사를 배출, 우리나라에서 국사가 가장 많이 배출된 사찰이다. 곧게 뻗은 대나무 숲과 편백나무 숲을 지나 송광사에 다다랐다. 사찰 입구, 계곡 위 돌다리에 세워진 우화루에서 보이는 풍경이 한 폭의 풍경화 같다. 선암사가 아담하고 수려하다면 송광사는 대범하고, 기개가 넘치는 모양새다. 32개의 돌계단을 올라가면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부도를 만날 수 있다. 송광사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여기서 내려다보이는 조계산 능선을 에워싼 사찰의 지붕들이 겹친 풍경이 무척 근사하다.

인생 노을을 만나다

(위) 순천만 습지 갈대밭, (아래) 용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순천만습지

순천에 와서 순천만습지를 빼놓으면 말이 안된다. 순천만은 남해안 중앙에 위치한 항아리 모양의 내만으로 람사르 사무국과 유네스코가 공식 인증한 세계적인 습지다. 순천만을 구성하는 갯벌, 염습지, 염전, 주변의 낮은 산과 농경지 등 다양한 자연환경은 자연스럽게 하천과 개울로 이어진다. 순천만습지는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자연의 보고다. 그래서 이 곳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둘러보려면 시간을 두 세시간 이상 여유있게 잡는 것이 좋다. 순천만자연생태관을 먼저 둘러 본 후에 람사르 길을 지나 갈대숲 탐방로에 이른다. 사방에 펼쳐진 갈대숲에 가슴이 탁 트였다. 여름 철새 개개비가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미풍에 키큰 갈대가 이리 저리 흔들린다.


산책로를 걷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순천만까지 왔다면 용산전망대에 오를 것을 권한다. 도심을 향해 오르던 용이 순천만의 경치가 아름다워 머물렀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용산은 자연생태공원 동쪽에 자리한 비교적 낮은 산이다. 폐장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올라갈까말까 망설여졌지만 기왕 온 거 오르기로 결심하고 부지런히 올랐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무렵, 용산전망대에 도착했다. 운 좋게도 해가 산 아래로 막 넘어가고 있었다. 오렌지빛 석양이 굽이굽이 이어진 산자락과 순천만의 S자 갯골 수로와 드넓은 갈대밭을 물들였다. 경이로운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올라오지 않았다면 결코 보지 못했을 풍경이다.

(위) 순천에서 노을이 예쁘기로 유명한 와온해변, (아래) 팜파티아에서는 남도의 제철 식재료를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즐기는 미식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서쪽 바다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언제나 그렇듯 일몰의 순간이다. 순천 여행의 마지막 날, 저녁 식사는 순천에서 노을이 가장 예쁘다는 와온해변에서 하기로 했다. 굽이굽이 리아시스식 해안인 와온 해변을 향해 달렸다. 해가 지는 해변에서 남도의 제철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즐겼다. 남도의 하늘과 바람과 바다의 맛을 오감으로 느꼈다. 순천, 눈물이 나지 않아도 찾아야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글, 사진 여하연
에디터 이태영(taeyi07@noblesse.com)
디자인 부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