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길고양이 돌보기

[라이프]by 노트펫

동네 놀이터 벤치에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식빵 자세를 하고 올라앉아 있었다.

 

내가 가까워지자 고양이는 갑자기 벤치에서 내려오더니 야옹야옹 부르며 길을 막았다.

 

이 부근에서 사실상 거의 안면 없는 사이인데도 손을 내밀자 거침없이 얼굴을 비벼대는 녀석이었다.

 

그 순간에는 가진 것이 없어서, 집에 올라가 급한 대로 보이는 그릇에 따뜻한 물을 담아 캔과 함께 챙겨 나왔는데 그새 어디로 갔는지 고양이가 안 보였다.

 

놀이터를 한 바퀴 휘 둘러보며 ‘야옹아~’ 하고 부르니 아까 그 노랑이가 ‘냐아옹’ 대답하며 주차된 차 아래에서 살금살금 걸어 나왔다.

 

내가 살포시 물그릇을 먼저 내려놓자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빠르게 달려와 서슴없이 물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캔을 깔 틈도 없이 물을 정신없이 마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겨울철 길고양이 돌보기

따뜻한 물을 마시는 동안 잠시 기다리다 캔을 깠더니 또 이번에는 캔으로 돌진해 당장 맛을 봐야겠단다.

 

다칠까 봐 조심조심 캔을 따서 따뜻한 물에 섞어주었다. 털 때문에 잘 몰랐는데, 만져보니 갈비뼈가 다 만져지게 마른 아이였다.

 

이 동네는 그래도 종종 고양이 밥자리도 보이고, 고양이 밥 주는 사람을 보고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는 나름 평화로운 분위기인데 아무래도 날이 추워지니 잘 챙겨 먹기가 더 힘들어진 것 같았다.

 

가끔 차 소리에 깜짝깜짝 눈치를 보면서도 정신없이 캔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그새 내 손이 다 빨갛게 얼어붙었다.

 

그만큼 추운 날씨였다. 캔 먹는 고양이의 뒷모습도 덜덜 떨렸다.

겨울철 길고양이 돌보기

그러는 동안 사람들도 여럿 지나다녔는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두 명이 갑자기 성큼 다가왔다.

 

어린아이들이 더 무서운 법이라 나는 잠시 긴장했는데, 아이들은 ‘고양이다~’ 하고 자기들끼리 재잘거리더니 물었다.

 

“언니가 키우는 고양이에요?”

 

“아니 그건 아닌데, 길에서 지내는 고양이야~”

 

“아, 길고양이!”

 

“맞아, 길고양이야.”

 

도둑고양이 아닌 길고양이라는 말을 알고 있는 아이들이 기특했다.

 

그러더니 이 고양이 이름은 나비라며, 경비실 아저씨랑 다른 아주머니도 나비라고 부르는 걸 봤다고 나에게 종알거렸다.

 

오가면서 본 모양이었는데, 동네 어른들이 지나다닐 때마다 길고양이들을 나름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나도 여러 번 본 터라 아이들 반응이 귀여웠다.

 

이 아이들이 크면 길고양이의 존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개중 몇몇은 밥과 잠자리를 챙겨주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이 되어가지 않을까?

 

하지만 당장 길고양이의 겨울은 너무나 춥다. 캔을 싹싹 먹은 노랑이는 눈밭에서 어쨌든 오늘 하루를 버텼다.

 

하지만 길고양이의 내일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로드킬, 엔진룸 사고(고양이들이 온기를 찾아 시동 꺼진 차 엔진룸에 들어갔다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나는 사고), 얼어붙을 정도로 싸늘하고 긴긴 밤까지 길고양이가 살아가기 위해 이겨내야 하는 요소는 너무 많다.

겨울철 길고양이 돌보기

겨울에는 길고양이가 먹을 만한 것이 모두 얼어붙거나 눈에 파묻힌다.

 

먹을 것도 문제지만 먹을 물이 없는 경우가 많다. 컵라면 그릇 같은 데에 물을 담아주면 그나마 천천히 언다.

 

꾸준히 밥을 챙겨주는 경우 따뜻한 물을 주는 것은 괜찮지만, 캔을 따뜻한 물에 섞어 주거나 덥혀서 줄 때에는 바로 회수할 게 아니라면 차라리 사료를 주는 것이 낫다.

 

그대로 두면 금방 얼어버리기 때문이다. 다른 계절보다 더 많은 영양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급여하는 양을 늘리거나 키튼 캔을 급여하는 것도 좋다.

 

큰 플라스틱 박스를 이용해 길고양이 집을 만들어주는 것도 겨울나기를 돕는 방법이다.

 

박스에 고양이가 드나들 만한 구멍을 뚫고 안쪽에 신문지나 종이상자를 단열재 삼아 깔아준다. 그 아래쪽에 핫팩을 놓아주면 온기가 오래 유지된다.

 

다만 동네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주민들이 싫어하기도 하니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설치하고, 버린 상자가 아니라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봄이 되면 철거할 예정이라는 안내문을 붙여두는 것이 좋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관리실에 ‘고양이들 좀 없애 달라’ 요청하는 것은 오히려 불법이다.

 

하지만 동네 주민들과 분쟁이 커지고 고양이들에 대한 미움이 심화되어 좋을 것이 없으니 조심하는 것이 낫다.

 

주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밥자리나 길고양이 집 주변까지 잘 청소하고 관리해야 한다.

 

겨울철 길고양이들을 위한 작은 배려 덕분에 또 몇몇 생명이 오늘 하루를 무사히 날 것이다.

 

꽃잎이 날리고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봄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걸로도 더할 나위 없으리라.

 

[박은지 객원기자]

2017.02.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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