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없이 76일 유럽여행... 간헐적 별거 괜찮은데?

[여행]by 오마이뉴스

[결혼했는데, 따로 살아요 ②] 나에겐 참 별 거였던 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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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 이제는 옛것이 됐습니다. 각자의 꿈을 위해 '자발적 별거'를 선택한 부부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여행이 좋은 이유는, 돌아갈 일상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보편적인 사람들은 적절한 자유와 구속이 공존할 때 안정감을 느낀다. 이러한 '자율성'은 결혼생활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남편이 신혼 초에 했던 말이 있다.


"결혼했다고 뭔가를 포기하거나 못한다고 생각하지 마. 네가 하고 싶으면 나도 해주고 싶을 거고, 네가 즐거우면 나도 즐거울 거야."


하지만 부부라는 게 오래 함께할수록 서로의 생활도, 감정도 촘촘하게 엮여 들어가기 마련이다. 단순한 결정에서조차 상대방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만약 배우자가 시차 8시간의 지구 반대편에서 석 달을 혼자 지내겠다고 하면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이 상대를 위하는 일인지 아닌지보다 당장 혼자 남게 될 내 모습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나 역시도 남편을 그렇게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바로 남편을 그렇게 떠났던 사람이다.

별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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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여름, 나는 남편 없이 안달루시아의 열기 속에, 까딸루냐의 유흥 안에, 지중해의 햇살 아래, 토스카나의 풍미 속에, 그리고 에펠탑의 불빛 곁에 머물렀다. 우리 부부에게 많은 것을 남긴 76일간의 자발적 별거였다. ⓒ 한해린

지난해 여름, 나는 남편 없이 안달루시아의 열기 속에, 까딸루냐의 유흥 안에, 지중해의 햇살 아래, 토스카나의 풍미 속에, 그리고 에펠탑의 불빛 곁에 머물렀다. 서로 떨어져 있던 그 76일의 시간은 오히려 우리의 결혼생활에 새로운 변주를 넣어 더욱 다채로운 관점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다.


발단은 동생의 결혼식이었다. 파리에 있는 동생이 한국에 함께 왔던 프랑스 청년에게 프러포즈를 받았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비혼을 자처하던 동생이었기에 우리 가족 모두 놀람과 반가움을 동시에 느꼈다. 당장 휴가 계획을 잡아야 했다.


하지만 조급한 내 마음과 달리 회사는 내 휴가를 수용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부장님은 나에게 단 5일을 제안했다. 매년 2주 정도의 연차를 붙여 유럽에 다녀왔는데 하필 동생의 결혼식에서 일정을 타협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민하는 나에게 남편이 먼저 제안을 했다.


"여보, 오래 버텼어. 그만하면 최선을 다 한 거야. 이참에 회사 그만두고, 있고 싶은 만큼 있다가 오면 어때? 장인장모님도 가실 테니 함께 여행도 좀 하고. 유럽 무비자 체류기간이 90일이던가? 그거 꽉 채워서 다녀와."


솔직히 솔깃했다. 하지만 곧바로 현실적인 문제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둘이 벌다 혼자 버는 상황에서 내가 그렇게 돈을 많이 써도 되는 걸까. 그 기간 동안 남편은 잘 지낼 수 있을까. 시어머니는 반대하시지 않을까.


"퇴직금 있잖아. 그거 다 쓰고 와도 상관없어.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이렇게 길게 가보겠어. 물론 다음에 또 기회가 올 수도 있지. 하지만 30대에 느끼는 것과 40대, 50대에 느끼는 것은 분명 다를 거야. 나는 여보가 나중에 지금을 떠올렸을 때 30대에 가장 행복한 일 중 하나로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그런 일을 만들어두면 1년이라도 더 오래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살 수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해. 엄마에게는 내가 잘 얘기할게. 사실 난 이게 우리엄마의 허락을 받을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


나는 그 길로 퇴사 절차를 밟고 차근차근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먼저 남편과 함께 출발해서 암스테르담과 파리를 여행하고, 동생 결혼식이 열리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로 이동했다가, 끝나면 부모님과 스위스 여행을 한다. 여기서 2주간의 휴가가 끝난 남편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는 부모님과 함께 포르투갈, 스페인 남부, 프랑스 남부를 40여 일 동안 돌아본다. 그 뒤 홀로 남아 이태리에서 친구를 만나고, 파리로 돌아와 남은 한 달을 지내는 것으로 윤곽이 잡혔다.

공교롭게도 결혼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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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여름, 나는 남편 없이 안달루시아의 열기 속에, 까딸루냐의 유흥 안에, 지중해의 햇살 아래, 토스카나의 풍미 속에, 그리고 에펠탑의 불빛 곁에 머물렀다. 우리 부부에게 많은 것을 남긴 76일간의 자발적 별거였다. ⓒ 한해린

마침내 3개월의 유럽여행이 시작되는 날은 공교롭게도 우리의 결혼기념일이었다. 남편에게는 가족 행사였고 나와 헤어지기 전 잠시의 여행이었지만, 나에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설레는 마음 때문에 남편 얼굴에 언뜻언뜻 비치는 침울함을 알아채지 못했다. 남편이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공항에서 배웅을 하는데 그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 여보 많이 보고 싶을 텐데, 어떻게 참아야 하지? 당장 혼자 10시간 비행기 탈 자신도 없어."


그제서야 깨달았다. 남편이 나를 보내주기로 한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결심이었음을. 마음이 뭉클해졌다. 간신히 남편을 배웅하고 돌아서면서 더더욱 이 시간을 허투루 쓰면 안 되겠다 싶었다.


부모님과 여행하는 동안에는 사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매일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다음날 일정을 정비하느라 새벽에 잠드는 날도 많았다. 또 두 분의 컨디션을 챙기느라 내 체력은 2배속으로 바닥났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정말 좋은 시간들이었다. 이렇게 부모님과 오랜 기간 24시간 붙어 있을 일이 언제 또 있을까? 감정 표현에 인색한 아빠가 알프스산맥의 상징적 봉우리인 마테호른을 보고 쉴새 없이 감탄사를 내뱉던 일, 늘 무기력하던 엄마가 네르하의 버스킹 무대 앞에서 소녀처럼 춤을 추던 장면은 정녕 마법 같은 순간들이었다.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 남편에게 매일매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여행이 끝나갈 때쯤, 엄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김 서방 너무 혼자 오래 있는 것 아니니? 너도 비행기표 바꿔서 그냥 우리랑 같이 돌아가자."

"엄마, 중간에 갈 거였음 나 그냥 그때 오빠 따라서 갔어.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다 쓰고 갈 거니깐 엄마도 나랑 오빠 걱정은 하지 마."

정말로 혼자 남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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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여름, 나는 남편 없이 안달루시아의 열기 속에, 까딸루냐의 유흥 안에, 지중해의 햇살 아래, 토스카나의 풍미 속에, 그리고 에펠탑의 불빛 곁에 머물렀다. 우리 부부에게 많은 것을 남긴 76일간의 자발적 별거였다. ⓒ 한해린

그렇게 호기롭게 말했건만 막상 혼자 남게 되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침체되었다. 어제까지 함께 저녁을 먹던 테이블 앞에 앉아 남겨진 과일 위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엄마가 화장을 고치던 탁자 위에 떨어져 있는 엄마 머리카락, 아빠가 매일 양말을 빨아 걸어두던 옷걸이 같은 것들에 시선이 닿을 때마다 부재의 존재감이 너무 크게 와 닿았다. 남편을 보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제는 정말 나 혼자 남은 것이다.


바로 이틀 뒤에 이탈리아 여행을 잡아둔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남편과, 부모님과 헤어진 파리를 잠시 떠나 난생 처음 가보는 이탈리아에서 친구와 신나게 웃고 떠들고 하면서 울적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다시 파리로 돌아와 한 달 살기를 하게 될 숙소에 체크인 했을 때는 또 다시 설렘이 더 커져 있었다. 커다란 창문을 열어젖히면 바로 눈 앞에 에펠탑이 보였기 때문이다.


매일 밤, 맥주나 와인을 마시며 에펠탑의 스파클링 조명을 감상하는 일은 절대로 빼먹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과의 연락은 자주 빼먹었다. 아차 싶어 시계를 보면 이미 남편은 한참 잠들어 있을 시간이거나 정신 없이 일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반찬가게에서 반찬 좀 사다 챙겨먹어라, 하루에 한 번은 환기를 시켜라 등 당부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대로 하는지 안 하는지 확인할 도리도 없거니와 말로만 의무를 때우는 느낌이 들어 그마저도 관두었다. 그러고 나니 점점 지금의 나에게 더욱 또렷하게 집중하게 되었다. 멋진 것을 보거나 근사한 요리를 먹을 때마다 남편이 떠오르는 것은 변함 없었지만 문득문득 남편 걱정에 주춤하던 순간들이 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급한 일이 아니면 통화보다는 카톡 메시지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하루를 존중해주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 역시 내가 없는 동안 많이 외롭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즐겁기도 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나와 비슷했다. 집에 내가 있을 땐 모든 것이 내 위주로 돌아갔는데, 애착 대상이 없어지자 어쩔 수 없이 본인에게 집중하게 되더란다. 평소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나와 시간을 보내고 나서 짬날 때 하던 것을 진득하게 앉아 몰입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그럴 듯한 그림도 그리고 '북킷리스트'로 쌓아두었던 책들을 하나씩 완독해 나가는 소소한 성취감을 맛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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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보이는 에펠탑의 모습 ▲ 파리에 한달살기를 하는 동안 매일밤, 빼놓지 않고 바라보았던 장면이예요. 이 집에 정이 정말 많이 들어버려서, 떠나오기가 힘들었네요. ⓒ 한해린

혼자만의 시간에 끝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혼자임을 더 열렬히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마치 정각에 맞춰 요란하게 점멸하는 에펠탑을 바라보듯이, 5분 뒤면 이 아름다운 쇼가 끝난다는 것을 알기에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주시하듯이. 그렇게 하루하루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마침내 불이 꺼지고 새까맣게 변해 버릴지라도 에펠탑은 그 자리에 굳건히 있고, 내일 밤에 또다시 빛날 것이다. 우리의 짧고 아름다웠던 간헐적 별거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 언제 또 헤어질까?


한해린 기자(hrhotel@naver.com)

2019.07.1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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