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다 죽겠다"던 화가, 정말 그렇게 죽다

[컬처]by 오마이뉴스

고독, 의심, 반복, 확장... 화가 폴 세잔의 삶


예전에 해가 바뀔 때 받았던 달력의 그림을 기억합니다. 달력 첫 장에 산 전체를 그린 그림이 있었습니다. 다음 장, 그 다음 장도 계속 같은 산의 그림이 나왔습니다. 그 산의 이름은 생 빅투와 산(Mont Sainte-Victoire)이었고, 그 산을 그린 화가는 세잔(Paul Cezanne)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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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뷰에서 본 생 빅투아르 산 1886년. 반즈 재단 필라델피아 ⓒ 반즈 재단 필라델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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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빅투아르 산 1885-7년. 코톨드 인스티튜트 런던 ⓒ 코톨드 인스티튜트 런던

세잔은 이 산을 40번도 넘게 그렸습니다. 유채와 수채, 그리고 다른 그림의 배경으로 그려진 것까지 합치면 그 수가 훨씬 많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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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빅투아르 산 1902-4년. 필라델피아 미술관 ⓒ 필라델피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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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빅투아르 산과 샤토 누아 1904-6년. 필라델피아 미술관 ⓒ 필라델피아 미술관

세잔은 '현대 회화의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20세기 미술의 거장인 피카소, 마티스, 브라크가 모두 입을 모아 그를 가장 위대한 화가라고 말하며 그의 영향이 엄청난 것임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표현주의나 입체파와 같은 현대의 회화 조류에 문을 열어준 선구적 화가였습니다.

고독한 길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세잔은 자신의 그림에 대한 당대의 비난과 조소를 경험합니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고유한 화풍을 개척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평생 고독한 삶을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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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색 벽지가 있는 자화상 1880-1년. 국립 미술관 런던 ⓒ 국립 미술관 런던

세잔은 1906년 10월 23일 세상을 떴습니다. 그는 그 일주일 전 즈음인 10월 15일에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다 폭풍우를 만나 쓰러졌고, 기절한 채 몇 시간동안 비를 맞았습니다. 그 다음 날도 세잔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다시 나갔고, 그렇게 건강이 악화되어 그는 사망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다 죽겠다던 자신의 말처럼 죽음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그의 작품은 두텁고 무겁습니다. 그가 그린 초상화의 분위기는 어둡고 불안합니다. 그의 자화상에는 그런 복잡하고 독특한 심성과 개성이 드러납니다. 그의 붓질은 복합적이며, 반복과 순환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단순했습니다. 평생을 외롭고 고독하게, 가능하면 사람에게서 떨어져 홀로, 그림에 몰두하며 지냈습니다. 심지어 가족과도 거리를 두고 그림을 그리며 대부분의 인생을 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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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트를 든 자화상 1890년 뷔를레 컬렉션 스위스. 뷔를레 컬렉션 스위스 ⓒ 뷔를레 컬렉션 스위스

세잔의 삶은 특별한 사건이 없었던 굴곡 없던 삶이었습니다. 오직 그림 그리는 일에만 몰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족 관계, 친구 관계에서 독특한 단면이 드러납니다. 그의 부모는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잔을 낳았습니다. 세잔은 화가의 길을 가기로 목표를 정한 후, 파리와 그의 고향 엑스 앙 프로방스를 오가는 것을 반복합니다. 애인과의 사이에 아들을 낳았지만, 부모에게 오랜 기간 숨겼습니다. 엑스와 파리, 에스타크, 퐁투아즈,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오가며 가족과 이별과 재회를 거듭합니다. 이것은 모두 자신만의 회화 기법을 찾는 것에 몰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특이한 말투에 커다란 체구, 세련되지 않은 행동으로 친구가 거의 없었지만, 에밀 졸라와 카미유 피사로와는 특별한 교감을 나누었습니다. 졸라와는 어린 시절의 각별한 교우 관계 이후 평생의 친구라 할 만큼 깊고 오랜 교감과 친밀감을 나누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동급생에게 시달리는 졸라를 세잔이 보호하였고, 그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으로 졸라가 세잔에게 사과를 한 바구니 가져와 주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세잔의 정물화와 다른 그림에 등장하는 사과에 대한 그의 집착이 그 이유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졸라와의 특별한 우정과 교감을 생각하면, 이러한 일화가 전하는 의미는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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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과 사과바구니가 있는 정물 1890-4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세잔은 법학을 공부하길 바라는 아버지의 의지에 반하여 화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전통적인 살롱 전시회에 입상하려 시도하였으나 심각한 비난과 조소의 대상이 되었을 뿐입니다. 모네, 르노아르, 드가와 같은 인상파 화가와 교류하며 그들의 독립 전시회에도 참여하였지만, 그 역시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열정과 능력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으며, 전통을 뛰어넘겠다는 의지 역시 강력하였고, 비난이나 낙선 때문에 그의 열정과 의지를 접었던 일은 없었습니다.


세잔이 화가의 길로 들어서도록 이끌었고, 그가 자신의 능력에 대해 회의를 품거나 실의에 빠졌을 때 격려와 위로를 준 사람은 에밀 졸라였습니다. 피사로는 세잔의 초기 그림에 보였던 어둡고 음울한 색조에 빛과 색채를 가미할 수 있도록 조언하였습니다. 엄격한 아버지의 반대에 맞서 화가가 된 세잔에게 따뜻한 격려와 충고를 해 준 사람도 피사로였습니다. 세잔은 그가 신이자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고 말했습니다.


세잔은 풍경화, 초상화, 정물화, 자화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제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약 40년간 세잔은 900여 점의 유채화와 400여 점의 수채화를 남겼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은 잘라서 불태웠다고 합니다. 세잔은 스스로에게 엄격했으며, 자신에게 자주 가해지던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는 화가라는 비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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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 앙부르아즈 볼라르의 초상 1899 년. 아비뇽 프티팔레 미술관 ⓒ 아비뇽 프티팔레 미술관

화상 볼라르의 초상화에 대한 일화는 이에 대한 세잔의 생각과 고민을 짐작하는 바에 도움이 됩니다. 세잔의 모델이 되었던 볼라르는 세잔의 사후에 일화를 전하는 바, 이 초상화를 위해 100번이 넘게 모델을 섰는데, 초상화의 손 부분을 보완하자는 의견을 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세잔은 손을 다시 그리면 그림 전체를 모두 다시 그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잔이 자신의 그림에 대해 엄격했고, 무수한 고민을 거쳐 전체의 그림을 완성하였음을 여실히 증명하는 일화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그림

세잔의 그림을 보고 좋아하는 일은 '쉽다'고할 수 있습니다. 그의 그림에 나타난 색깔과 배치, 조화/부조화가 중첩된 구성, 연속과 단절의 복합적 형상에 몰입하는 일은 수월해 보이는 일입니다. 여기서 '쉽다'는 표현은 당연하다는 의미이자 모순어법입니다.


세잔의 그림은 어렵습니다. 그의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고 표현하는가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하지만, 명료하게 드러난 내용도 논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의미도 모호합니다. 그의 그림은 동일한 주제와 대상을 반복적으로 그린 그림이 많으며, 이는 그가 얼마나 강박적으로 한 가지 주제의 문제에 매달려 거듭 고뇌하였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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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와 오렌지 1895-1900년경. 오르세 미술관 ⓒ 오르세 미술관

세잔에 대한 짧고 명료한 설명을 인용하겠습니다.

"사물의 본질적인 구조와 형상에 주목하여 자연의 모든 형태를 원기둥과 구, 원뿔로 해석한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추상에 가까운 기하학적 형태와 견고한 색채의 결합은 고전주의 회화와 당대의 발전된 미술 사이의 연결점을 제시했으며, 피카소와 브라크 같은 입체파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어 '근대회화의 아버지'로 불린다." - '두산백과'

이는 세잔의 작업을 종합적으로 요약하며 논리적으로 명확합니다. 그럼에도 이 간결한 설명은 세잔의 작업과 작품을 꼼꼼히 파악하고 이해하는 일이 불가능한 일임을 판단케 합니다.


세잔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했던 일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세잔은 정말 어렵게, 고뇌를 거듭하며 그림을 그렸다는 점입니다.


1895년 자신의 단독 전시회가 파리에서 개최되었지만, 세잔은 엑스에서 여전히 홀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세잔은 붓질 한 번도 쉽게 하지 않았습니다. 세잔은 화가는 어렵게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관람자가 진정 볼 만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신념을 세잔이 항상 가슴에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봉근 기자(njoybg@naver.com)

2019.08.2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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