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그 난리를 치고도... 왜 장동민이어야 하나

[컬처]by 오마이뉴스

[하성태의 사이드뷰] 각종 비하 발언으로 논란... 본질은 권력의 폭력적 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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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트리오 옹달샘의 장동민이 지난 2015년 4월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의 한 호텔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인터넷방송 에서의 '삼풍백화점 생존자 비하', '여성 비하 발언' 등에 대해 사과의 입장을 발표하며 침통한 모습을 하고 있다. ⓒ 이정민

"다시 한 번 사죄의 말씀 드립니다. 너무나도 죄송하고 국민 여러분들에게 죄송합니다. 부모님에게도 죄송합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중략)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년여 전인 2015년 4월 방송인 장동민이 유세윤, 유상무와 함께 내놓은 사과문 중 일부다. 당시 이들은 삼풍백화점 사고의 한 생존자로부터 모욕죄 및 명예훼손죄로 피소 당했다. 과거 세 사람이 진행했던 팟캐스트 방송 <옹달샘과 꿈꾸는 라디오>에서 여성 혐오 등 각종 비하 발언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과 비난의 중심에 섰고, 결국 '삼풍 피해자'가 공개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비판에 나서자 공개 사과에 나선 것이다.


기자회견 전후, 장동민은 tvN <코미디 빅리그>, KBS 2TV <나를 돌아봐>, JTBC <크라임씬2>와 <엄마가 보고있다>에 출연 중이었다. 그 즈음 <지니어스: 그랜드파이널> 제작발표회에서 장동민은 "여성 출연자가 우승했으면 좋겠다, (여성 출연자들을) 존경한다"라는 발언도 덧붙였다. 그 과정에서 거세진 논란과 무관하다는 듯, KBS는 파일럿 프로그램이던 <나를 돌아봐>의 장동민 출연을 강행했다.


이와 관련, 같은 해 5월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아래 민우회)는 "KBS의 반(反)여성·반인권 상황에 대한 개선을 바라며 의견서를 제출했다"며 KBS에 인권 감수성 회복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장동민의 전력

그로부터 1년 후인 2016년 4월, 장동민은 또 한 번 피소됐다. '차별 없는 가정을 위한 시민 연합'(이하 차가연)이 장동민과 출연 개그맨들을 비롯해 tvN과 <코미디 빅리그>(아래 <코빅>) 제작진을 모욕죄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같은 달 3일 방송된 <코빅>의 '충청도의 힘'이 이혼 가정 아동, 한부모가정을 조롱했다는 이유였다.


당시 논란과 여론의 뭇매를 맞고 방송 한 회 만에 퇴출당한 '충청도의 힘'은 한부모가정 아동을 조롱하는 것과 더불어 노인 비하와 아동 성추행을 개그의 소재로 삼은 게 문제로 지적됐다. 특히 콩트 중 할머니 역할을 한 개그맨이 손자 역할 장동민의 성기를 만지려고 한 모습과 성희롱에 가까운 대사가 등장해 충격을 더했다.


이와 관련, 당시 tvN <코빅> 제작진은 "모든 건 제작진의 잘못이며, 제작진을 믿고 연기에 임한 연기자에게도 사과의 말을 전합니다"며 "앞으로는 신중하게 생각하여 좀 더 건강하고 즐거운 코미디를 선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는 사과문을 내놨다.


"시청자들에게 불편을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했지만, 어떤 시청자에게 어떤 불편함을 줬는지는 전혀 언급이 없는 짤막하고도 성의 없는 사과문이었다. 반면 <코빅> 제작진은 그 시청자에 대한 의례적인 사과와 엇비슷한 길이로 연기자에게 '사과'했다. 그해 5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해당 내용에 대해 <코빅>에 법정제재인 '경고'를 의결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방송인' 장동민은 별 일 없이 '잘' 살았다. 팬들로부터 '갓동민'이란 불렸던 장기를 살려 <소사이어티 게임>, <씬의 퀴즈> 같은 미스터리 게임도 즐겼고, <집밥 백선생>, <수미네 반찬>에선 요리도 배우고, 인맥도 쌓았다. <탐나는 크루즈>에선 여행도 즐겼고, <문제적 보스>로는 직장 생활도 간접 경험했다. 당시 출연한 곳은 모두 케이블 채널 tvN 프로그램들인데, 이쯤 되면 한 1979년생 남성 방송인의 재사회화라 불러도 좋을 듯 싶다.


그리고 첫 사과로부터 4년 여가 흐른 2019년 9월, 이 장동민이 또 한 번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이번엔 18살 여성 래퍼 하선호를 향한 프로그램 속 발언이 문제가 됐다. 아니나 다를까, tvN의 예능 <플레이어>가 문제의 프로그램이었다. 먼저 지난 1일 방송된 논란의 장면을 보자.

<플레이어> 제작진의 의도, 장동민이 내재화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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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란이 된 tvN 중 한 장면 ⓒ tvN

"(합격) 목걸이 주세요." (하선호)

"원해요? 저도, 전화 번호 원해요." (장동민)

"저 18살인데..." (하선호)

"탈락입니다." (장동민)

래퍼 팔로알토와 등장한 '심사위원' 장동민이 오디션 무대를 마친 여성 래퍼 하선호에게 한 심사평은 이랬다. 제작진은 "장난장난", "철컹철컹"과 같은 자막으로 분위기를 무마하는 듯했다. 출연자들이 보인 반응을 바탕으로 "쓰레기", "극혐"이란 비판적인 자막도 등장했다.


하지만 장동민의 돌발 발언을 그저 예능 속 대수롭지 않은 상황으로 승화시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제작진은 과연 어떤 의도였을까? 유추도 어렵지 않다. 제작진은 '하선호, 번호 안 줘서 탈락'이란 자막으로 장동민의 행동을 재차 확인했다. 심지어 탈락 후 오디션장을 나가며 불쾌감을 표시하는 하선호의 반응도 고스란히 담았다.


이수근, 장동민 등이 출연하는 <플레이어>는 "웃는 순간, 출연료가 깎인다! 출연료를 건 일곱 남자의 웃음트랩 탈출기"라는 제작의도를 바탕으로, 매주 바뀌는 장소와 상황에서 특정 미션을 해결하는 형식의 리얼 예능을 표방한다.


문제가 된 1일 방송은 인기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의 형식을 패러디했다. 프로그램 설정 차제가 7인의 고정 출연자는 살아남고, 실제 실력을 갖춘 게스트 등 일회성 출연자들은 탈락하는 상황이 웃음의 전제로 깔려있다고 보면 틀리지 않다. 다만 이 같은 기본 설정을 감안하더라도, 장동민의 발언은 충분히 문제적이다.

왜 또 장동민인가, 혹은 왜 장동민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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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란이 된 tvN 중 한 장면 ⓒ tvN

과연 '장동민'이라서 "전화 번호 원해요"라는 소위 '전(화)번(호)를 딴다'는 발언이 지탄을 받는 걸까? 또 제작진은 이러한 상황을 여과 없이 방송에 내보내 논란을 자처한 측면은 없는가? 그에 대한 답은 이미 장동민과 tvN이 '시그널'을 줬다고 해도 무방해 보인다. '예능은 예능일 뿐', '왜 만날, 왜 하필 장동민만'이란 소위 '쉴드'가 통할 수 없다는 얘기다.


<고등래퍼> 등으로 인지도를 쌓고 실력을 인정받은 18살 여성 래퍼에게 전화번호를 묻는다. 단순히 "저 18살인데..." 거절의 뉘앙스를 내비치자, 우리 나이로 41살의 방송인이 "탈락"을 외친다. 동료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평소와 같은 농담을 던진다. 이 상황을 제작진은 미성년자 성범죄와 같은 맥락을 연결시키는 '철컹철컹'과 같은 자막으로 '확인 사살'한다. 게다가, 불쾌감을 표시하는 18살 여성의 얼굴과 반응까지 웃음의 코드로 활용한다.


이것은 <플레이어>가, 제작진이 스스로 용인한 내용이다. 비록 짧은 분량이지만, 누구는 의아해하고, 또 누구는 불쾌감을 호소할 수밖에 없는 연출이지 않은가. 여기엔 '왜 또 장동민만'이라고 물을 자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오히려 '왜 또 장동민이냐'라고 따져야 옳다. 이미 '여성 혐오', '여성 비하', '아동 성희롱' 등 갖가지 논란과 비판에 휩싸였으나 수 년 간 아무 일 없다는 듯 방송활동을 이어가는 장동민에게, 왜 또 18살 여성에게 문제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냐고 묻는 것이 맞다.


이것이 그 어떤 풍자라거나, 자조의 웃음 코드라는 변명은 어불성설이요 언어도단이다. 왜 그러냐고? 안타깝게도(?), 41살 남성 유명 방송인 장동민은 18살 여성 신인 래퍼 하선호의 권력을 조롱하거나 부조리를 까발릴 위치에 자리하지 않는다. 일반의 풍자가 그런 것이다.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거나 풍자였다는 변명은 그러한 맥락 안에서 유효할 수 있다.


이게 가능하려면, 둘의 위치를 바꾸면 간단해진다. 18살 여성 심사위원 하선호가 41살 남성 오디션 참가자 장동민에게 외모를 지적하며 '탈락'을 외치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 당사자가 사회 비판적인 혹은 젠더나 위계 이슈를 가지고 풍자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것은 맥락 자체가 달라진다.


더군다나 '철컹철컹'과 같은 자막의 사용과 장동민의 평소 캐릭터였으니 괜찮다는 제작진의 용인은, 장동민의 유머 코드는 오늘도 고통 받고 있을 성범죄 피해자들, 미성년자 관련 피해자들에겐 2차 가해나 다름이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철컹철컹'과 같은 자막과 상황 묘사가 지닌 사회적 맥락을 정확히 이해한 듯한 제작진의 제작 의도가 훨씬 더 문제적일 수 있다.


물론, 하나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장동민과 제작진이 이러한 논란을 모두 염두에 뒀을 경우. 즉, '철컹철컹'에 해당하는 사건을 일으킨 범죄자들을 조롱하고 비판할 의도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이를 방송에 내보낸 경우 말이다.


그렇다면 납득 가능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간 장동민의 방송 내외적인 캐릭터나 tvN 제작진의 이력(?)으로 보건데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간 장동민을 불편해하는 시청자들보다 더 많은 시청자들이 시청률과 화제성, 인지도 등과 같은 제작진의 선호를 감안해줬다고 여길 테니. 그래서 더, 시선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전번 따기, 헌팅 문화, 그리고 범죄 '캣콜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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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마친 '일본 여성 욕설·폭행' 영상 속 남성 ▲ 한국인 남성이 국내에서 일본인 여성을 위협하고 폭행하는 정황이 담긴 동영상과 사진이 인터넷에서 퍼져 논란이 확산한 가운데 경찰이 영상 속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했다. 2019년 8월 24일 오후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친 남성이 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홍대 거리에서 일본인 여성을 폭행한 남성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한국인 남성이 일본인 여성과 여성 지인들에게 먼저 치근덕거렸고, 여성들이 거절 의사를 밝히자 남성이 폭행을 가해 경찰에 입건된 사건이었다. 일각에선 남성의 '반일감정' 운운했지만, 해명 인터뷰에 나선 이 남성은 자신의 행동이 반일 감정과는 상관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자신의 관심을 받아주지 않은 여성(들)을 향한 한 남성의 폭력뿐이다. 저 장동민의 '전화번호를 따는' 행동이, 좀 더 넓게 '헌팅 문화'라 불리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문제시 될 수밖에 없는 맥락이 여기에 있다.

"직장인 김모씨(27)는 "길에서 한 남성이 (전화) 번호를 묻길래 여러 번 거절했는데 끈질기게 따라왔다. 너무 무서워서 밝은 가게로 도망가야 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헌팅이란 말 자체가 사냥을 뜻하는 만큼, 진지하게 관심을 두고 (나한테) 말 거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며 "당사자 입장은 생각도 않고 강요하듯 연락처를 물어볼 때면 불쾌한데 피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성이 여성에게 거절당하자 폭언·폭행을 하는 사례도 나왔다. 지난달 1일 서울 동대문구 한 술집에서는 우모씨(33)가 합석 요구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ㄷ씨(21)를 때려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우씨는 합석을 거절당한 뒤 여성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막말을 했다. 여성 일행이 사과를 요구하자 얼굴을 때렸다."

<경향신문>의 지난달 28일자 <'일본인 폭행'서 불거진 '여성 헌팅문화'의 민낯> 기사 중 일부다. 이 일본인 폭행 사건은 아마도 '전번 따기'에 대한 부정적인 면이 극대화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반일감정'과는 상관없는 이 사건의 본질은 결국 '남성 권력'의 '여성 혐오'의 발로요, 그 권력의 폭력적인 작동이 범죄를 일으키는 한편 허울 좋은 이성 관계로 포장된 것일 뿐이다.


너무 까칠하게, 시니컬하게 본 것 아니냐고? 그렇지 않은 듯하다. 외국의 예를 보자. 몇몇 국가에서는 이미 일방적이거나 강압적인 '헌팅'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에게 추파를 던지거나 헌팅을 하는 이른바 '캣콜링(catcalling·거리 성희롱)'을 범죄행위로 분류하기도 한다. 프랑스는 지난해 8월 캣콜링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최대 750유로(98만 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 앞선 <경향신문> 기사 중

하선호가 18살이라는 게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도리어 18살임에도 불구하고 '전번을 딸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연예인이 방송에서 입으로 내뱉을 수 있으며, 이를 제작진이 버젓이 방송에 내보낼 수 있는 사고의 작동방식, 공고한 남성(적인) 문화 자체가 문제다. 사회에 만연한 남성 권력이, 그 권력의 폭력적인 작동이 이렇게 소름 끼친다. 이에 무감하거나 그저 일부 '프로불편러' 여성들의 비난이라 치부하는 일련의 반응들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3일까지 tvN과 <플레이어> 제작진은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날 한 매체는 장동민 소속사가 "입장을 밝히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같은 날 한 트위터 사용자는 "방금 방송심의의원회 1377… 장동민 건으로 민원 넣었는데 '해당 방송 회차에 대해서 아주 많은 민원이 발생하고 있어서 현재 심의 진행 중입니다'라고 답변 들음"이라고 밝혔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또 장동민인가'란 질문에 봉착할 수밖에 없고, 그 질문은 더 확장될 수밖에 없다. 왜 tvN은 거의 '여성 혐오'를 내재화한 듯한, 낮은 성인지 감수성과 인권 감수성을 자랑하는, 5년 전 거듭 죄송하다던 사과를 잊은 듯한 장동민이란 방송인을 프로그램의 간판으로 내세우는가. 이미 4~5년 전부터 충분히 문제가 제기되고 항의가 지속됐음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 장동민이어야 하는가.


하성태 기자(woodyh@hanmail.net)

2019.09.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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