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선 절대 볼 수 없는 장면... 뭉클했다

[컬처]by 오마이뉴스

[리뷰] 영화 <동물, 원> 동물원을 통해 고찰한 동물과 사람 사이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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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동물, 원 포스터 ⓒ (주)시네마달

2018년 9월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퓨마 한 마리가 우리 밖으로 탈출해 NSC 산하의 위기관리센터가 지휘한 포획 작전 끝에 결국 사살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후 동물원 존폐 논란이 일어났고 한동안 동물원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 청원이 온라인을 점령하기도 했다. 동물원은 무조건 없어져야 마땅한 공간일까? 우리에게 동물원은 어떤 모습인가?


다큐멘터리 영화 <동물, 원>은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동물원을 묻는다. 영화는 1997년 7월에 개장하여 현재는 서울대공원, 에버랜드와 함께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된 청주동물원의 일상을 조명한다. 지난 8월 22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에서 진행된 <동물, 원>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왕민철 감독은 연출 방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처음부터 동물권에 관한 영화, 주장하는 영화를 찍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저희 제작진이 너무 피상적으로만 동물에 관해서 생각하고서 반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좀 더 객관적으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동물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거나 문제점을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통해 좀 더 나은 동물권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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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동물, 원의 한 장면 ⓒ (주)시네마달

<동물, 원>은 삵, 물범, 사자, 독수리, 유황앵무새, 호랑이, 표범 등 동물원에서 '반야생'으로 살아가는 동물들과 그들을 돌보는 사육사들과 수의사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구석은 우리가 볼 수 없었던 울타리 뒤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동물, 원>은 동물원의 하루하루가 절대 특별하지 않다고 말한다. 청소, 사육, 번식, 진료, 수술, 방사까지 동물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공간이라고 말이다.


동물원의 하루를 보여준다는 건 곧 동물원의 현 주소를 고스란히 비추는 것이기도 하다. 인류 역사에서 최초의 동물원은 제국주의 정복자들이 권력을 과시하는 용도로 만들어졌다. 그 후엔 교육적인 기능이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등 철저하게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기능했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최초의 동물원인 창경원은 사람이 쉬는 공원에 동물들을 볼거리로 제공했다. 1980년대엔 지역마다 유행처럼 공영동물원이 지어졌다. 하지만, 동물원의 설계 등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에 동물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는 구조물만 들어섰다. 현재 대부분 공영동물원은 예산도 넉넉지 못한 상태로 운영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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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동물, 원의 한 장면 ⓒ (주)시네마달

지금 동물원은 '야생'과 '사육' 사이에서 고민한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자연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공간보다 현저하게 작은 공간에서 일생을 보낸다. 좁은 공간에서 지내는 스트레스 탓에 한 가지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는 일종의 정신질환인 '정형 행동'에 시달린다. 말하자면 동물원은 학대의 공간인 셈이다.


한편으로는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동물원이 없다면 대부분의 동물은 갈 곳조차 없다. 이미 그들이 살 수 있는 곳은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 원>은 야생과 사육 사이에서 중립적인 태도로 동물원을 바라보려 노력한다. 영화엔 전문가, 시민단체, 일반 시민 등의 의견이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동물원에 일하시는 분들과 동물에 집중한다. 왕민철 감독은 처음에 지녔던 생각이 촬영하면서 바뀌었다고 이야기 한다.

"초기엔 관람객의 입장으로 6~7개월 정도 촬영을 했었다. 촬영을 하면서 내가 동물원에 일하는 사람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반감이 무지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 분들이 동물을 사랑하는 분들이란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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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동물, 원의 한 장면 ⓒ (주)시네마달

<동물, 원>이 만난 사육사들과 수의사들은 본래의 서식지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작기만 한 공간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동물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한다. 김정호 수의사는 자신이 동물원 폐지론자임을 밝히며 좁은 공간에서 제대로 날지 못하던 새가 하늘 높이 나는 모습을 보며 자유를 느꼈다고 이야기한다.


권혁범 사육사는 좁은 공간을 활용해 정형행동을 극복할 수 있는 행동풍부화를 돕는다. 전은구 사육사는 아기 물범이 모유를 끊고 물고기를 잡아먹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이들은 자신이 책임진 동물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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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동물, 원의 한 장면 ⓒ (주)시네마달

제목 <동물, 원>은 공간 '동물원(動物園)'이면서 동시에 '동물'과 '원' 사이에 쉼표를 찍음으로써 다양한 의미를 부여했다. 먼저, 동물과 인간에게 동물원은 어떤 공간인지 묻는 '동산 원(園)'이란 의미가 있다. 자연을 마음껏 달리고 싶은 동물들의 바람인 '원할 원(願)'도 된다. 동물원을 멀리서 넓은 시각으로 바라본 '멀 원(遠)'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 지구라는 원 안에서 함께 공존하자는 뜻을 담은 '둥글 원(圓)'이 아닐까 싶다. 자연, 동물과 공존하는 삶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인간의 애정과 노력이 필요하다. 존중을 해야 한다. 지구에서 사는 존재가 인간만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동물, 원>이 만난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동물원은 자연의 위대함을 배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동물을 조그만 우리에 가둬놓고 돌 던지고 놀리는 장소가 아니다."

이학후 기자(hakus97@naver.com)

2019.09.1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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