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에서의 오줌 누기, 난생 처음 보는 광경

[여행]by 오마이뉴스

미지의 나라 수단 횡단


이집트 아스완에서 시작한 스무 시간의 나일강 항해 끝에 마침내 '북수단'의 최북단 국경 마을 와디할파에 닻을 내렸다. 오랜 남북 갈등 끝에 2011년 국민투표에서 99.8퍼센트의 찬성으로 남수단이 독립했지만, 북수단의 공식 명칭은 여전히 '수단 공화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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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와디할파에서 하르툼으로 가는 길. ⓒ 최늘샘

2019년 4월, 반독재 시위로 인한 30년 오마르 알바시르 정권의 종식과 뒤이은 군부의 집권, 6월의 시위대 학살 사건 때문인지 대부분의 아프리카 종단 여행자들은 수단을 건너뛰고 에티오피아나 케냐행 비행기를 탔다. 나일강을 건너는 수단행 페리에 외국인은 나와 대만인 자전거 여행자 둘뿐이었다.


혹시나 이집트 체류 기간 초과가 문제 되지 않을까. 이집트 국경은 물론 수단 국경 통제소를 통과할 때까지도 마음을 졸였다. 낡은 페리 3등실에서 함께 밤을 보낸 알라(Alla)씨의 가족이 항구에서 마을까지 가는 승합 트럭의 차비를 대신 내주었다.


몇 년 동안 이집트에서 자동차 기술자로 일하고 고향 카르툼으로 돌아가는 길이라 했다. 덜컹덜컹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트럭 난간에 걸터앉아 나일강 항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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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 국경 페리에서 만난 알라 씨 가족. ⓒ 최늘샘

수단의 화폐 이름은 '수단 파운드'다. 이집트,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 역시 영국 식민지 시절의 화폐 이름 '파운드' 또는 '실링'을 그대로 쓰고 있다. 르완다, 말리, 콩고 등 프랑스 식민지였던 나라들은 '프랑'을 사용한다.


국경 환전상에게 2422이집트 파운드(한화 17만 원)를 9690수단 파운드(26만 원)로 환전했다. 수단 화폐의 가치가 낮은지, 환전상은 지폐 뭉텅이들을 고무줄로 묶어 비닐봉지에 보관했다. 지갑과 복대에 넣을 수 있는 부피가 아니어서 나도 환전한 지폐를 봉지에 담아 백팩에 넣었다. 1이집트 파운드의 공식 환율은 2.7수단 파운드인데, 실제 환율은 1이집트 파운드가 4수단 파운드였다.


국경에서는 보통 환전할 때마다 손해를 보는데, 수단에서는 공식 환율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으니 이익을 본 기분이었다. 숫자에 약한 나로서는 공식 환율과 실제 환율이 왜 그렇게 다른지 이해할 수가 없고 복잡하게 느껴졌다. 돈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건 서글프지만, 이집트 돈을 넉넉히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ATM에서 공식 환율으로 수단 돈을 출금했다면 크게 손해를 보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와디할파는 푸르른 나무를 보기 힘든 사막 마을이다. 얼마나 더울지 걱정되어 검색해 보니 2012년 '포린폴리시'가 선정한 '세계 10대 혹서 지역' 중 하나로 최고 기온 52.8도를 기록했다. 지인들이 위험하다고 주의를 주는 수단에 오래 머물고 싶지는 않아서 수도 카르툼행 버스를 찾아 터미널에 갔다.


수단에는 야간버스가 운행되지 않고, 1000킬로미터 떨어진 카르툼으로 가는 버스는 매일 새벽 3시에 딱 한 번 출발했다. 어쩔 수 없이 와디할파에서 하루를 묵어야했다. 더위를 식혀줄 망고주스를 마시다가 모하르 알타엡(Mohal Altayeb)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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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디할파에서 만난 수단인 모하르 알타엡 씨. ⓒ 최늘샘

"이집트에서 오는 배에 외국인이 거의 없던데요. 수단 사람들은 이집트에 주로 뭐하러 가나요?"

"여러 가지 목적이 있지. 피라미드 같은 유적지 여행을 가는 사람도 있고,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러 가는 사람들도 많고. 나는 친구들과 사업을 하려고 알아보는 중이야."

"수단이 정치적으로 불안하다던데 요즘은 괜찮아요? 수단뿐만 아니라 아라비아에 대해서 한국의 미디어는 주로 위험하다고 말하고, 그래서 여행을 오기 어려운 것 같아요."

"이슬람 외부 세계의 미디어가 이슬람에 대해서 어떻게 얘기하는지, 우리도 잘 알아. 비이슬람 사람들에게는 '이슬람 포비아(공포증)'가 있잖아. 하지만 실제 이슬람은 위험한 종교가 아니야. 수단 사람들은 남을 속이지 않고 친절해. 네가 수단을 여행하는 내내 행복하길 바랄게."

처음 듣는 단어가 뒤통수를 쳤다. 모든 차별적인 공포와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텅 빈 방에 침대만 몇 개 놓인 숙소는 40수단 파운드(10이집트 파운드=한화 700원). 캄보디아 씨엠립의 1달러 야외 숙소와 조지아 트빌리시의 1.5유로 도미토리보다 저렴했다.


너무 더워서 선풍기는 무용지물, 해가 지자 사람들은 하나둘 방 밖으로 침대를 꺼냈다. 곧 커다란 마당에는 침대가 가득 찼고 수십 명이 함께 달빛 아래 잠이 들었다. 모기들도 더운지 흡혈 활동이 뜸하다는 것이 그곳에서의 유일한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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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디할파 천장 없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 최늘샘

수단에서의 오줌 누기

버스 회사 직원의 당부대로 새벽 두 시에 터미널에 갔지만 세 시에 출발한다던 버스는 네 시가 되어서야 출발했다. 주유소 옆 휴게소에서는 몇 가지 음식을 팔았지만 화장실이 없었다. 그때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을 목격했다.


하얀 치마를 입은 남성 승객들이 사막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갑자기 무릎을 좌우로 쫙 쫙 벌리고 주저앉았다. 수단 북부의 남성들은 바지도 내리지 않고 앉아서 오줌을 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사막에서, 등만 돌렸을 뿐 사람들이 보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 나는 가까이에 타인이 있으면 오줌이 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장시간 버스에서 오줌 눌 기회를 놓쳤다가는 방광염에 걸릴 위험이 다분하다. 별로 마렵지 않더라도 미리 미리 누는 게 좋다.


모두 앉아서 오줌을 누는데 나홀로 서서 오줌을 누면 큰 주목을 받을 것이다. 수십 년 전 브라자빌 콩고(콩고 공화국)를 여행할 때 아무 데나 오줌을 쌌다가 원주민에게 잡혀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강원도 아우라지 문화해설사 박종훈씨의 얘기가 떠올랐다.


수단의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자연스러운 척 무릎을 쫙 벌리고 지퍼를 내렸다. 처음 취하는 자세였지만 걱정보다는 편안했다. 뜨거운 사막은 스펀지마냥 오줌을 흡수했다. 하르툼이나 수단 남부에는 서서 오줌을 누는 남성이 더 많아서 나의 새로운 도전은 수단 북부에서 막을 내렸다.


수단 북부의 남성들은 언제부터 앉아서 오줌을 눴고, 수단 남부와 남한의 남성들은 언제부터 서서 오줌을 눴을까. 세상은 넓고, 서로 닮은 듯 하면서도 참 다른, 신기한 일들은 참 많다.


낡은 버스에는 에어컨이 나왔지만 사막의 더위를 이겨내지는 못했다. 열을 너무 받았는지 퍼져버린 버스를 고치는데 꼬박 두 시간이 걸렸다. 항상 일어나는 고장이라는 듯, 정비공 두 명이 탑승하고 있다가 익숙하게 일을 처리했다. 땡볕 아래 더위로 달아오르는 버스에서 누구도 항의 한 마디 하지 않았으나 누구나 같은 마음인지, 종종 모래바닥으로 꺼질 듯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열 시간쯤 걸린다던 버스는 열여섯 시간이 지나서야 수도 카르툼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본 수단은 그야말로 '사막의 나라'였다. 하얀 모래의 땅, 까만 자갈의 땅, 낮은 수풀의 땅, 먼지 폭풍이 부는 땅. 풍경은 조금씩 변했지만 모두 다 사막이었다. 그리고 그 사막 어디에서나, 사막과 더불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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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교도 중에는 방향치가 없다고 한다.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머나먼 메카를 향해 이마를 땅에 대고 기도를 올리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들의 기도 속에는 어떤 절실한 마음들이 모아지고 있을까.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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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늘샘 기자(veritasaem@hanmail.net)

2019.10.0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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