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홀 뚜껑 열고 나온 남자, 왜 저렇게 있나 했더니

[여행]by 오마이뉴스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구시가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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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티슬라바 구시가. 한적하고 아기자기한 동유럽의 감성이 느껴진다. ⓒ 노시경

나와 아내는 예쁜 골목길들이 이어지는 브라티슬라바 성(Bratislava Castle)을 내려온 후 대로 위의 육교를 지나 브라티슬라바 구시가 안으로 들어섰다. 브라티슬라바 구시가지의 관광지는 모두 모여 있어서 여유롭게 걸어서 이동하기로 했다. 일국의 수도인데도 소도시를 여행하는 듯한 소박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구시가지에는 아직도 공산주의 시절의 투박한 회색 건물들이 남아 있지만, 이제 이 도시는 새롭게 활기가 넘치고 있다. 공산주의 시절 국가가 몰수했던 건물들을 과거의 집주인들에게 돌려준 이후, 회색 건물들이 파스텔 톤의 사랑스러운 건축물들로 바뀌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구시가 곳곳에 자리잡은 야외 카페, 레스토랑과 여러 가게는 사람들이 모이는 활기찬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 구시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은 단연 성 마틴 대성당(St. Martin's Cathedral)이다.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이 성당은 전체적인 느낌이 마치 중세시대로 안내하는 고색창연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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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틴 대성당. 독실한 카톨릭 신자가 많은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유서 깊은 성당이다. ⓒ 노시경

현재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많은 체코에 비해 슬로바키아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이 많다. 그래서 슬로바키아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분리 독립한 배경에는 종교적 이유도 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슬로바키아의 성당에서는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15세기에 완공된 이 성당의 첨탑 꼭대기를 보니 황금빛 왕관이 올려져 있다. 이 성당은 슬로바키아가 헝가리 왕국의 지배를 받을 당시에 헝가리 왕가의 대관식이 열렸을 정도로 중요한 성당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 성당은 베토벤이 자신의 작품 중 최고라고 했던 장엄 미사곡(Missa solemnis)이 처음으로 연주된 역사적인 장소이다.


나와 아내는 브라티슬라바 구시가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았다. 한때 한 나라였던 체코의 프라하와는 도시 느낌이 많이 달랐다. 사랑스러운 핑크색의 건물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고, 말끔하게 채색된 건물들 사이에서 세월의 잿빛 때가 묻은 오랜 건물들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계속 인사하는 동상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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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빛 가게. 늦은 저녁시간이 되어도 브라티슬라바의 젊음은 식을 줄을 모른다. ⓒ 노시경

나는 구시가 안으로 들어서면서 흥미롭고 느낌 있는 조각상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 재미있는 조각상들은 구시가 중심가에서 남다른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볼 것이 많지 않다고 인식되던 브라티슬라바 시내를 브라티슬라바의 예술가들이 바꾸어놓은 것이다.


도시의 예술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볼 것을 만들자고 주장하며 구시가지 여러 곳에 재미있는 조형물들을 만들었다. 자칫 옛 도시로만 기억될 수 있는 공간에 현대적 디자인의 묘수를 더해 탄생한 이 명물들은 구시가지 곳곳에서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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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나치상. 짝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이그나츠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 노시경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중앙광장 한 켠의 카페 앞에 있는 '착한 나치(Schone Naci)'라는 은상(銀像)이다. 턱이 툭 튀어나온 노신사가 중절모를 벗고 인사를 하고 있는데 마치 거리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이 노신사는 20세기 초에 이곳 브라티슬라바에 살았던 이그나츠 라마르(Ignac Lamar)라는 실존 인물이다.


그는 생전에 한 여자를 너무나 짝사랑했으나 사랑을 이루지 못해 아프기 시작했고, 거리에서 만나는 아무 여자에게나 꽃을 건넸다고 한다. 현재 그는 구시가 광장을 지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다정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있다. 중절모를 들고 인사하는 그의 얼굴은 어쩐지 슬픈 웃음을 짓고 있는 것 같이 묘한 여운을 남긴다.


이 구시가지에서 가장 압권인 조각상은 뭐니뭐니 해도 일하는 남자라는 뜻의 '맨 앳 워크(Man at work)' 동상이다. 맨홀에서 힘겹게 빠져나온 아저씨는 맨홀 뚜껑을 열어두고 고개만 내민 채 지나가는 사람들을 엿보고 있다. 이 남자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훔쳐본다고 해서 '엿보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피핑 톰(Peeping Tom)'이라고도 불린다. 이 기발한 발상의 동상에 무릎을 치고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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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앳 워크 동상. 맨홀 뚜껑을 열고 나온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훔쳐본다. ⓒ 노시경

이 작업하는 남자는 브라티슬라바를 찾은 여행자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이 여유 있어 보이는 동상의 머리를 만지면 행복해진다는 말에 그의 머리는 반질반질하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이 친구와 기념사진을 남기려 하기 때문에 그의 주변에 빈틈이 생기면 재빨리 사진을 찍어야 한다.


한 어린 여행자는 그의 모습이 너무 웃겨서 그의 곁을 떠날 줄을 모른다. 이렇게 작은 동상 하나로 여행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으니 브라티슬라바 시의 전략은 대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달콤하고 환상적인 밤거리의 맛

나와 아내는 브라티슬라바에서 놓치면 안 된다는 구시가 남쪽의 한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아갔다. 루쿠루스 아이스 살롱(Luculus Ice Saloon)이라는 이 아이스크림 가게의 직원은 주문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나는 노란색이 달콤해 보이는 망고 아이스크림을 주문했고, 아내는 파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아내가 주문한 차지고 맛이 살아 있는 아이스크림은 그야말로 '인생 아이스크림'이었다. 그런데 왜 항상 아내가 주문한 아이스크림이 더 맛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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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티슬라바의 골목. 많은 젊은이들이 야외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다. ⓒ 노시경

작업하는 남자의 동상 옆으로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식당과 카페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브라티슬라바 시내에서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는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하기로 했다. 배고픈 우리의 눈에 들어온 곳은 케밥 가게 더 케밥 앤 코(The Kebab & Co)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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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티슬라바 케밥 가게. 두툼한 양고기 케밥과 채소를 듬뿍 담아준다. ⓒ 노시경

진한 검은 머리와 짙은 눈썹의 터키인으로 보이는 직원들이 먹음직스럽게 쌓아둔 케밥 고기를 자르고 있었다. 이 가게는 마치 패스트푸드처럼 케밥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서 판매하는데, 케밥 양고기와 다양한 채소를 양껏 담아주고 있었다. 우리는 조금 더 걸어 시내의 한 식당에 맥주를 주문하고 함께 케밥을 맛보았다. 배고픔과 피로를 한꺼번에 풀어주는 케밥의 맛은 너무나 달콤했다.


나와 아내는 오늘 거리를 걸으면서 어디에서나 잘 보이던 미카엘 문(St. Michael's Gate)을 찾아갔다. 중세 시대에 브라티슬라바를 감싸고 지키던 4개의 성문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성문이다. 14세기에 고딕양식으로 지어졌다가 16세기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바뀌어 지어진 성문은 아치형 문 위로 마치 탑과 같이 생긴 건축물이 우뚝 솟아 있었다.


이 성문은 브라티슬라바 구시가 관광의 시작점과 같은 곳인데 나와 아내는 브라티슬라바성과 구시가를 먼저 본 후에 이곳에 도착했다. 어느덧 해는 져서 미카엘 문에는 어둠과 함께 노란 조명이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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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문. 브라티슬라바 구시가에 유일하게 남은 성문으로 여행의 출발점이다. ⓒ 노시경

성문 바로 아래 바닥에는 나침반 모양의 작은 동판 조형물이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 그 외곽으로는 각국의 주요도시까지의 거리를 적은 원형의 동판이 빙 둘러싸고 있다. 찾아보니 반갑게도 서울까지의 거리도 정확히 적혀 있었다. 서울까지의 거리는 8138km. 내가 남은 유럽의 여행지를 여행하다가 결국 돌아가야 할 고향까지의 거리였다.


나와 아내는 슬로바키아 대통령궁 앞을 지나 다시 브라티슬라바 역으로 걸었다. 역까지의 거리는 지친 다리를 이끌고 가기에는 애매하게 먼 거리였다. 이 한적한 동유럽의 수도에는, 아내가 우려했던 대로 저녁시간에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내의 체력을 걱정하고 눈치 보며 역까지 천천히 걸었다.


비엔나로 돌아가는 기차는 아직도 1시간 30분이나 남아 있었다. 우리는 역 안에 있는 1970년대 스타일의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묘한 동유럽의 감성이 느껴지는 역사 안에서 나와 아내는 한참을 쉬다가 비엔나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노시경 기자(prowriter@naver.com)

2019.10.2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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