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경이라는 주왕산 단풍,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여행]by 오마이뉴스

주산지, 투명한 물 속을 헤엄치는 거대한 잉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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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아래 사과가 익어가는 청송의 가을 풍광. ⓒ 경북매일 자료사진

기암과 단애(斷崖)가 줄지어 늘어서 감탄을 자아내는 주왕산과 맑고 투명한 물빛이 유혹하는 주산지에 가본 사람들은 알게 된다. 왜 이곳의 관광 슬로건이 '산소카페 청송군'인지. 청정하고 달콤한 공기가 여행자의 몸은 물론 마음까지 편안하게 해준다.

관우의 팔뚝보다 굵은 잉어가 노니는 주산지

청송군 주왕산면에 한적하게 자리 잡은 주산지는 299년 전 조선 경종(景宗) 때 농사에 필요한 물을 저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저수지다. 물 아래로 뿌리를 내린 수백 년 된 아름드리 나무가 기가 막힌 풍경을 만들어낸다. 사진작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카메라를 메고 '인생 작품'을 남기기 위해 방문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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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군 주산지.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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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지의 투명한 물빛. ⓒ 경북매일 자료사진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km 가량 주산지로 걸어 오르는 산길은 우거진 소나무가 만들어내는 향기로운 그늘과 도시에선 밟아보기 힘든 황토의 색채가 여행자들의 환한 웃음을 불러낸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지향한다"는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가족 혹은 연인과 주산지를 찾은 이들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수 관우(關羽)의 팔뚝보다 훨씬 굵은 수백 마리의 잉어를 보며 탄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봄과 여름에 만나는 주산지도 좋지만, 노랗고 빨간 단풍과 함께 어우러진 '가을날의 주산지'는 절경 중 절경이라는 게 세간의 평가다.


청송이란 지명은 '늙지 않고 죽지도 않는 신선이 사는 세계'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1시간쯤 주산지 주변을 산책하니 이 말이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뭐니뭐니 해도 '가을 주왕산'의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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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아름다운 주왕산 계곡. ⓒ 경북매일 자료사진

산에 오르는 걸 즐기는 여행자들에겐 '가을 주왕산'이 귀한 선물처럼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청송군 부동면 일대에 펼쳐진 백두대간 한복판의 경치가 그저 그만이다.


독특한 형상의 바위가 사람들의 눈앞으로 성큼 다가서고, 그것들을 등 뒤로 하고 갈라치면 눈부신 단풍이 오감을 아찔하게 흔들어댄다. 이만큼 드라마틱한 산행이 어디에 또 있을까?


1976년 한국의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주왕산은 그 품 안에 대전사, 백련암, 주왕암 등의 사찰과 주왕계곡, 절골계곡, 주방계곡, 학소대 등을 안고 있다. 등산 코스가 다양해 초보 등산객은 물론 등산 전문가들까지 만족감을 드러낸다고 한다.

아흔아홉 칸 송소고택 아랫목에 누워보는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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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아홉 칸 송소고택의 정원.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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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이 말라가는 송소고택 안채. ⓒ 홍성식

규모부터가 입을 벌어지게 만든다. 큰 건물을 이야기할 때면 등장하는 '아흔아홉 칸 집'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송군 파천면 송소고택(松韶古宅)이다.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있어 집을 따스하게 안고 있는 형상이고, 앞으론 널찍한 들판이 펼쳐졌다. 풍수지리에 관한 지식이 없는 내가 보기에도 명당(明堂)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2개의 사랑채와 안채, 별채, 넓은 정원 등으로 이뤄진 송소고택은 조선 영조 시절 거부(巨富) 심처대의 후손인 심호택이 1880년 경 조상이 살던 덕천마을로 돌아오면서 만든 집이다.


솟을대문과 홍살, 팔작지붕에 빗살무늬 교창 등이 19세기 후반 한국 상류층 주택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여기에 송소고택에 살던 사람들은 경주 최부자와 함께 '양심적인 사회 공헌'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해질 무렵 천천히 고택 안을 돌아봤는데, 어찌나 넓은지 과장을 좀 섞자면 '집 안에서 길을 잃을 지경'이었다.


드나드는 손님들이 여성이 생활하는 안채를 함부로 쳐다볼 수 없도록 만든 '마당 속 또 다른 담'과 집 안에 만든 3개의 우물이 특히 이색적이었다. 안채에선 요즘 보기 드물게 전통 방식으로 곶감을 말리고 있었다.


현재 송소고택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심재오씨. 어린 시절부터 서울에서 살다가 9년 전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왔다. 만만찮은 저택 관리에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서도, 조상들 이야기를 할 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장작불을 넣은 뜨끈한 아랫목에서 잠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여기서의 숙박이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객주>의 작가 김주영의 취재노트와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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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군 진보면에 자리한 객주문학관.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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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주문학관 정원의 항아리. 보부상이 그려져 있다. ⓒ 홍성식

1939년 청송에서 태어난 김주영은 치밀하고 성실한 취재, 유장한 문장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소설가. 그는 '작가로서의 삶'을 아래와 같이 요약한 바 있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민들은 모든 소유물을 몽땅 가지고 다닌다. 비단과 향수, 그리고 씨앗과 소금, 요강과 유골, 하물며 고통과 증오까지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 격정적인 삶으로 그 모든 것이 탕진되는 날, 하나의 무덤이 거친 바람이 흩날리는 초원에 마련될 것이다."

<객주> <홍어> <화척> 등의 작품을 쓴 김주영은 대산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등을 받은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중 하나. 청송이 내세워 자랑할 만하다.


진보면 진안리 폐교를 리모델링해 조성한 객주문학관은 바로 이 김주영의 생애와 작품 전반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공간. 그간 출판된 소설과 산문은 물론 작가의 취재수첩과 펜, 작품의 소재가 꼼꼼하게 메모된 공책 여러 권이 문학청년들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촬영에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김주영은 1998년 선배 작가, 언론사 사람들과 함께 북한을 여행했다.


객주문학관엔 그때 사용한 카메라와 현상한 사진 수십 점도 함께 전시돼 있다. 금강산, 묘향산, 백두산, 평양 등 현재는 여행하기 힘든 우리 땅 반쪽의 풍경을 보는 건 이곳에 들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보너스다.


"운이 좋다면 1년에 절반쯤은 청송에 머무는 작가를 여기서 만날 수도 있다"는 게 객주문학관 해설사의 귀띔이다.

'돌 속에 핀 꽃'을 만나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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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수석꽃돌박물관.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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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꽃돌. 돌 속에 핀 꽃이 보이세요? ⓒ 경북매일 자료사진

30년 넘게 수석(壽石)을 모아온 선배가 있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이 돌 안에 세상과 인간이 있어. 너는 안 보이지?" 당연지사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타깝거나 아쉬울 것도 없었다.


돌, 범위를 좁혀 수석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청송 수석꽃돌박물관'은 흥미로워할 것 같다. 왜냐? 그 돌들 속에는 환하게 핀 '꽃'이 보이기 때문이다. 매화, 장미, 국화 등 종류도 다양하다. 예술적 심미안을 가지지 못했더라도 얼마든지 '돌의 아름다움'을 완상할 수 있다.


박물관을 채운 '꽃돌'은 청송의 지역적 특수성이 만들어낸 것이다. 화산암 중 구과상유문암에 속하는 암석을 꽃돌이라 부른다. 수석 용어로는 화문석.


유문암은 유리처럼 반짝이는 결정을 가진 화산암인데, 청송군 진보면 괴정리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다고 한다. 전문가들도 희귀한 돌로 인정하는 한국산 '꽃돌'의 80%가 청송에서 나왔다.


조그만 박물관엔 청송 꽃돌을 포함한 수백 점의 수석이 전시돼 있다. 서양화나 설치미술을 관람하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에 시간가는 줄 모르는 관광객들이 적지 않았다.


청송 수석꽃돌박물관 지척엔 유교문화 체험관과 도예촌도 있으니, 한국의 전통문화에 빠져드는 시간도 가져보면 좋지 않을까.


홍성식 기자(poet6969@naver.com)

2019.11.0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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