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댁'을 방문해 보니...

[여행]by 오마이뉴스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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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목조건물을 헐어낸 뒤 1985년에 2층 석조로 신축된 삼청동 국무총리공관 ⓒ 이안수

오르막을 굽어돌자 나무로 둘러싸인 잔디정원과 단출한 2층 건물의 공관이 환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을의 밝은 햇살이 흰 석조건물 외벽에 부딪혀 빛이 부서지듯 눈이 부셨습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가을색을 띠기 시작한 활엽수들과 달리 여전히 청청한 우람한 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신선이 되는 나무로 일컬어지는 측백나무였습니다. 수령 300년으로 천연기념물 제255호로 지정된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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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관 정문을 지나 언덕길의 오른쪽 바위에 안득불애(安得不愛, 어찌 아끼지 않으리오)라는 글씨가 초서로 새겨져 있습니다. 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이 풍경에 어찌 아끼는 마음이 일지 않을까.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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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 300년으로 천연기념물 제255호로 지정된 공관의 측백나무 ⓒ 이안수

이 측백나무가 300년을 지켜온 이 땅은 조선시대에는 태화궁(太和宮) 자리였다가 일제강점기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인 민규식 자택으로, 또한 경성전기주식회사의 관사로 쓰였던 곳입니다. 광복 후에 국회의장 공관으로 사용됐으며 1961년 5월부터 국무총리 공관으로 쓰이고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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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과 경성부청에서 교열하고 경성일보사(京城日報社)에서 1914년에 편찬한 '경성부명세신지도(京城府明細新地圖)'에 대화궁(大和宮)으로 표기된 곳이 현재의 국무총리공관입니다. 복개되기 전의 삼청동천이 짙푸르게 표기되었습니다.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은 조선을 강점한 일본이 수탈의 기본 자료를 확보하기 위하여 1910년에 설치한 조선총독부 산하기관으로 한반도의 측지와 지도제작 사업에 주력했던 기관이고 경성일보사는 1906년에 창간된 조선총독부 기관지입니다. 서울역사박물관 유물번호 '서울역사011440' ⓒ 서울역사박물관

현재의 살림채인 석조건물은 그 자리에 있던 일본식 목조건물을 헐어낸 뒤 1985년에 지은 것입니다. 정원 앞쪽에 측백나무의 직계 자손이 새롭게 키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측백나무 쪽을 따라 본관 뒤쪽으로 돌아 몇 계단을 올라서면 소나무가 활엽수와 잘 어우러진 정원수 앞에 1979년에 신축한 한옥 삼청당(三淸堂)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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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에 신축된 한옥 삼청당(三淸堂). 최규하국무총리 재임 시 완공되었습니다. 상량식을 위해 당시 집주인인 최 총리께 상량을 하시라고 부탁드렸더니 자신은 떠날 사람이라고 사양하셔서 이 집의 건축을 총지휘하신 신응수 대목장께서 상량을 하셨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 이안수

회의실과 연회실로 쓰이는 이 한옥 사랑채에 걸린 삼청당이라는 현판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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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처마 아래의 ‘三淸堂’ 현판은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쓰셨고 주련은 신호열 한학자께서 쓰셨습니다. ⓒ 이안수

국가기록원의 촬영일자가 1979년 9월 18일로 된 '최규하국무총리공관삼청당시찰 2(관리번호 CET0043581)'의 사진을 보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삼청당의 현판을 올려다보는 모습입니다. 같은 제목, 같은 날짜의 사진 몇 장을 더 확인해보면 그날이 이 현판의 제막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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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일자가 1979년 9월 18일로 된 국가기록원의 사진(관리번호 CET0043581)은 현판의 제막식을 막 마친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의 글씨를 올려다보는 모습입니다. 이날로부터 불과 38일 뒤 10·26사태로 암살되고 맙니다. 올 10월 26일이 박정희 전 대통령 40주기 날입니다. ⓒ 국가기록원

권력의 최고 정점에서 쓴 '己未盛夏 朴正熙(기미성하 박정희)'로 낙관된 이 현판의 글씨는 박대통령이 쓴 수많은 글씨 중에서도 가장 단아하고 부드럽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현판의 제막식으로부터 38일 뒤인 10월 26일 저녁, 이곳으로부터 멀지않은 안가에서 몇발의 총성에 사망(10.26사태)하고 맙니다. 이 현판은 단풍잎을 흔드는 미풍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권력의 속성을 일깨우는 것 같습니다.


삼청당 아래에는 대칭의 주련이 걸려있습니다.

海納百川有容乃大(바다는 모든 내를 받아들이니 그 너그러움으로 거대하고)

壁立千仞無欲則剛(벼랑은 천 길 높이 서 있어도 욕심이 없으니 굳건하다)

통감절요(通鑑節要)에 나온 말을 한학자 우전 신호열선생께서 썼습니다. 역사나 개인이나 아량은 베풀고 욕심은 버려야 비극은 되풀이되지 않을 것입니다.


삼청당을 돌아 뒤뜰로 가면 넓은 잔디밭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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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당의 후원 ⓒ 이안수

국가기록원의 1965년 사진, '주한외교인 국무총리공관 초청 다과회(관리번호 CET0032202)'이라는 사진을 보면 삼청당의 신축전에도 정원이 당·정·청의 인사들이나 외국주요 손님의 야외 만찬장으로 활용되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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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의 1965년 사진(관리번호 CET0032202)에서 이전에 있었던 건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국가기록원

이 후정에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등나무입니다. 수령이 900년이나 되었다는 이 등나무는 땅쪽 줄기는 장좌불와(長坐不臥)와 일종식(一種食)을 지키며 화두에만 몰입한 수행승처럼 육신은 증발하고 정신만 남은 모습입니다. 천연기념물 제254호인 이 삼청동 등나무처럼 자신의 영역에서 자신의 도리만 지킨다면 칡에 얽힐 일 없으니 900년도 갈등(葛藤)이 있을 수 없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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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천연기념물 제254호로 지정된 수령 900년의 등나무. 한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등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땅쪽 줄기의 윗부분은 썩어서 상했지만 아랫부분이 살아 여전히 5월이면 꽃을 피웁니다. 옛 선비들이 무엇인가를 잡고 올라야 하는 덩굴나무인 등나무를 싫어했다지만 그 특성으로 인해 너른 나무그늘을 만들어주어 한여름 학교나 공원에서 많은 사람들의 땀을 식혀줍니다. 900년의 시간을 견뎌온 세월의 흔적이 밑줄기에 고스란히 남은 이 삼청동 등나무는 육신이 아니라 정신으로 삶을 지탱하고 있는 듯해 숭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 이안수

신라 화랑과 두 여성의 숭고한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등나무의 꽃말은 '사랑에 취하다'입니다.


이 댁의 현재 주인인 이낙연 국무총리. 2017년 5월 31일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로 임기를 시작해 이달 28일이면 재임 881일을 기록하게 됩니다. 이틀 뒤면 880일(2010년 10월 1일∼2013년 2월 26일)을 기록한 최장수 총리인 김황식 전 총리의 기록을 넘어서게 됩니다. 이 댁의 주인들이 지혜롭고 유연한 국정운영으로 대립과 갈등의 정치가 아니라 더욱 화려해질 이곳 정원수들의 가을처럼 비우고 사랑을 얻는 화합의 정치를 900년 수도를 견딘 고승 같은 등나무에게 소원해봅니다.


이안수 기자(motif_1@naver.com)

2019.11.1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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