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이 기억하지 않는 버스 기사이고 싶어요"

[라이프]by 오마이뉴스

20대 버스 기사 김진성씨의 삶과 일 이야기


"막상 주위에 둘러보면 행복할 만한 이유가 꽤 돼요. 일단 공기도 이렇게 마실 수 있고, 살아 있잖아요, 건강하게. 그래서 사소한 이유에도 행복을 느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을 느끼면서 죽기 전에 후회를 많이 안 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경기도에서 버스 기사로 일하고 있는, 김진성(25)씨. 그는 요즘같이 청년 실업이 심각한 때에 일하고 있고 당장 지낼 집도 있는 것에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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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7일, 김진성씨와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사진이다. ⓒ 김진성

처음 그를 알게 된 건 유튜브 채널 '20대 버스 기사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그는 구독자 약 5만여 명을 둔 유튜버이기도 하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브이로그로 찍어 올린다. 이전 직장인 조립공장을 관둔 이야기, 이사하는 이야기, 시내버스와 관광버스를 모는 일상, 제주 여행기 등 담백하고 진솔한 콘텐츠를 업로드한다.


유튜브 시장에서 20대 버스 기사의 일상은 보기 드물었고 신선했다. 그를 보며 통학, 통근 때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버스 기사들의 일상이, 관심 밖의 대상이었던 그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의아한 점도 있었다. '버스를 타고 보는 기사들의 대부분이 40, 50대는 넘긴 것 같았는데, 25살 젊은 나이에 그가 버스 기사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20대 버스 기사의 삶은 어떨까?' 하는 궁금중이 들었다. 이런 궁금증에 답을 구하러 지난달 17일, 그가 사는 곳 근처인 김포시 구래역 인근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버스 기사? 재밌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과장을 좀 하면 눈물 나게 일이 하기 싫을 정도였어요."


과거 대기업 협력업체 조립공장에서 일했던 그는 반복되는 업무와 잔업, 군대식 문화 등에 재미를 느끼지 못해 '버스 기사'로 전향했다. 당시엔 토요일에도 일을 나가야 했으며 자기 시간을 누릴 여유도 없었다. 그가 버스 기사를 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먹고 살려고'였다. 거창하진 않지만, 누구나 공감하게 되는 그런 이유로 버스 기사가 되고 보니 삶이 행복한 이유가 많아졌다.


버스 기사가 된 지금, 진성씨는 유난히 창밖을 많이 본다.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길거리의 모습을 보는 게 좋기 때문이다. 창밖의 길을 보고 있으면 색색의 꽃과 잎들이 피는 걸 보기도 하고, 빗소리를 들으며 운전을 하기도 한다.


버스 기사로 산다는 건 매일 소소한 행복을 맛보는 일이다. 그는 일에 재미를 못 붙이던 과거와 전혀 다르게 '버스 기사'란 일의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장 큰 애로 사항은 생리현상이다. 중간에 버스를 세우고 화장실을 다녀올 수도 없으니 무작정 물을 안 마시는 수밖에 없다.


"전 아예 물을 안 먹어요. 너무 목이 마르다 싶으면 그냥 입에 좀 머금고 있다가 창문 밖으로 뱉고 그래요."


본인은 좀 극단적으로 하는 편이라고 했지만, 많은 버스 기사들이 공감하는 문제일 거다.

내가 계속 '운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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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관광 버스 운전석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진성 씨. ⓒ 김진성

"직장 동료와 상사들과 안 얽힌다는 게 제일 좋은 거 같아요. 옛날에 다니던 조립공장에서는 좋든 싫든 (사람들과) 항상 붙어 있어야 해요. 그럼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맨날 똑같은 일만 기계적으로 하다 보니까 사람이 신경질적으로 변하더라고요. 지금 제가 있는 회사에서는 사고 안 치면 뭐 딱히 터치하는 사람이 아예 없어요. 제 할 것만 하면 끝이에요. 저는 이런 점에서 아주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운전직에 머무는 이유가 뭔지, 다시 말해 운전은 어떤 매력이 있는지 물었더니 그는 이 같이 대답했다. 현대인에게 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 중 하나가 직장 내 인간관계일 것이다. 일과의 대부분을 버스 안에서 보내는 버스 기사들은 독립된 공간에서 일을 수행할 뿐이다. 종일 동료와 상사들의 관계 속에서 신경 쓰며 지내야 하는 다른 일과는 달라 보였다.

시내버스에서 관광버스로

진성씨는 '시내버스 기사'부터 시작했다. 하루 17시간씩 버스를 몰고 격일로 근무하는 혹독한 환경이었다. 그는 '시내버스 일은 이틀 할 업무를 하루에 몰아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루에 80km씩 4바퀴, 320km를 운전했다. 한 바퀴를 돌 때마다 멈춰서야 할 정류장이 150개가 넘는다.


"가다 서다 사람 태우고 내리고 하다 보면 체력소모가 심해요."


노선마다도 다르고 모든 정류장에 다 서는 것도 아니겠지만, 계산적으로 따져보면 하루에 차를 600번 멈췄다 출발시키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시내버스 기사로 사는 자신의 일상을 유튜브에 기록하고 싶었지만, 한계에 부딪혔다. '버스 기사가 인터넷 방송을 한다'는 승객들의 민원으로 인해 회사의 눈치를 봐야 했고 스스로 퇴사를 결심했다. 그리고 좀 더 자유로운 관광버스 회사로 발길을 돌리게 된 것이다.

'워라밸'이 있는 지금 일이 좋아요

"워라밸이 되게 많이 좋아졌어요. 그때(시내버스 회사 재직 당시)는 하루 17시간. 말이 17시간이긴 한데, 새벽 4시에 나가면 다음 날 밤 12시 넘어서 들어오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평범하게 웬만한 직장인들처럼 생활하고 있어요."


의외의 이직은 삶의 질을 더 높여놓았다. 관광버스 회사로 이직한 진성씨는 대부분 주 5일 근무하면서 직장인들의 출퇴근을 도맡기도 하고, 동호회나 산악회 같은 단체 관광과 초등학생들 현장체험학습의 운전기사가 되어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건 같지만 시내버스 회사 재직 당시와 비교했을 때 근무 시간이 매우 줄었다. 반면 근무하는 날의 횟수는 많아졌다. 근무 시간은 많고, 근무 날이 적은 시내버스 일. 그리고 근무 시간은 적고, 근무 날은 많은 현재 관광버스 일. 둘 중 어떤 게 좋냐고 물었다.


"한 번에 하고 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면 시내버스를 하는 게 좋겠지만 저는 지금이 나아요. 지금은 제가 책 읽을 시간도 있고, 자기 계발할 시간도 있어서 옛날보다 나은 거 같아요. 유튜브 편집할 시간도 좀 늘었고요."


그는 일과를 마치고 나서나 근무 중 짬이 날 때 개인적인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다. 특히 이젠 일상이 돼버린 유튜브 업로드를 지속하기 위해, 다른 유튜버의 편집기술을 공부하고 콘텐츠를 구상하는 데에 퇴근 이후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아무래도 돈이 다가 아니더라고요."


시내버스에서 일할 때보다 급여가 줄었는데 아쉽지는 않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단순 급여로만 보면 아쉬울 수 있으나, 일하는 시간도 줄고 자기 시간이 생긴 지금이 더 좋다'고 대답했다. 아무리 높은 연봉을 줘도 결국 내 개인 시간이 없으면 만족하기 힘든 것이다.


잡코리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워라밸이 좋으면 연봉이 낮아도 이직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직장인이 절반을 넘었다. 진성씨는 이 설문조사 결과에 동의한다며 '돈이 다가 아니더라'라고 말했다. 그를 포함한 직장인들은 이제 '돈을 많이 주는 직장'보다, 내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워라밸을 챙겨주는 회사'를 더 선호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보는 '나'

그에게 직접 '구독자들이 본인 채널을 구독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아무래도 제 영상이 재밌어서라기보다는, 그냥 '20대 친구가 열심히 사는구나' 하는 그 모습을 더 보고 싶어서 구독을 해주시는 것 같아요."


진성씨의 채널에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콘텐츠는 없다. 그저 20대 버스 기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일기'가 담겨 있다. 5만 명은 그런 심심한 맛에, 열정적으로 사는 한 20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그는 버스 기사로서 '승객들의 기억에 남지 않을 때'가 가장 보람되다며 앞으로 쭉 '무사고 운전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의미를 묻자 그는 '승객들은 보통 버스 기사에게 무심한 편인데 버스 기사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은 대부분 운전을 못 해서 부정적인 잔상이 남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그는 승객들에게 기억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존재들은 어쩌면 그와 같은 버스 기사들이었을지 모른다. 존재가 드러나지 않을 때 가장 빛나는 존재가 되는, 타인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게 꿈인 그는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우리들의 버스 기사다.


박지선 기자(6430497@naver.com)

2019.12.2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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