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준비해서 떠난 제주 탐험, 아이들 입에서 나온 말

[여행]by 오마이뉴스

[사춘기 쌍둥이 아들과 나누는 이야기] 아는 것을 찾아내는 재미... 이런 여행도 참 좋다


벌써 1년 전, 2019년 1월 군산 한길문고에서 특별한 강연이 열렸다. 과학탐험가 문경수의 '잃어버린 호기심을 찾아서'. 포스터에 나타나 있는 그대로 그의 강연은 듣는 내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나뿐만 아니라 강물과 마이산(아이들의 별명), 심지어 남편까지도.


나는 제주도에 두 번 갔었다. 처음엔 고등학교 수학여행이었다. 20세기에 고등학생이던 내게 제주도는 살고 있던 군산보다 따뜻하고 가로수가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섬이었다.


두 번째는 2016년 여름이었다. 한여름의 제주도는 무척이나 뜨거웠다. 21세기의 제주도는 내 과거 기억 속 제주도와 달랐다. 이국적인 풍경보다는 관광단지와 숙박업소로 뒤덮여 있었다. 20세기에 같은 고등학생이던 남편과 예전 제주도를 떠올리며 실망감과 함께 군산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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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효리네 민박>에 나온 문경수 과학탐험가 ⓒ JTBC

그랬던 내가 다시 제주도에 가고 싶어졌다. <문경수의 제주 과학 탐험>, 이 책 때문이다. 책의 저자 문경수가 JTBC 인기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 탐험가로 소개됐을 때만 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의 강연을 듣기 전과 후는 매우 달랐다.


그는 강연에서 세계의 오지들을 목숨 걸고 탐험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죽을 뻔했던 그의 무용담을 들으며 강연에 빠져들고 있을 때 주제는 제주도로 넘어갔다. 전 세계에서 하와이와 제주도에만 있는 지질학적 명소 때문에, 지질학자들에게 제주도는 죽기 전 꼭 방문해 보고 싶은 성지로 통한다고 했다. 내가 품고 있던 제주도에 대한 실망감이 변하고 있었다.


강연은 마침 1월이었다. 해마다 1월이면 그 해에 이루고 싶은 일들을 '꿈 리스트'에 적고 있다. 2019년 내 꿈 리스트에 '탐험하기'가 추가된 건 당연했다.

2019년 끝나기 이틀 전, 제주에 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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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수의 제주 과학 탐험> 앞표지 ⓒ 동아시아

책 <문경수의 제주 과학 탐험>을 읽고 제주도의 지도를 보았다. 공항, 숙소, 관광단지를 지도에서 찾던 나는 제주도를 동서남북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제주 서쪽에 있는 가장 유명한 해수욕장, 협재에 가면 정면에 그림 같은 섬 하나가 보인다. 바로 비양도다. 제주 본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섬이지만 섬 주민과 느긋한 식간을 즐기려는 일부 여행자 외에는 찾는 이가 드물다. 하지만 단 하루만 제주도 머문다면 비양도를 가라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첫 번째 탐험지로 비양도를 선택했다."

탐험가 문경수가 제주도에서 첫 번째로 택한 장소다. 책을 읽으며(탐험을 계획하는 11개월 내내 우리 가족은 이 책을 돌려 읽었다) 무조건 비양도는 가야 한다고 정했다. 인터넷으로 비양도에 대한 정보와 사진을 찾아보며 미지의 섬을 탐험하는 탐험가가 된 듯 설렜다. 나만 설레는 건 아니었다. 제주 만장굴을 발견한 '꼬마 탐험대' 이야기를 읽으며 같은 또래인 강물이와 마이산도 덩달아 설렜다.

"꼬마 탐험대라니!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기분이다. 어느 날처럼 학교에 등교했더니 담임선생님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흥분해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분명 꼬마 탐험대는 선생님의 발견에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좋아했을 것이다. 호기심을 나누는 순간 사제 관계를 넘어 한 탐험대의 일원이 되어 동굴 속을 탐험하는 장면을 그렸을 것이다."

강물 : "이 꼬마 탐험대 대원들이 초등학교 5, 6학년생이었대."

마이산 : "우리랑 똑같네. 나도 탐험할 수 있겠는데."

강물 : "우리도 선생님이랑 탐험해보면 정말 좋겠다."


아이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탐험팀을 꾸리고 있었다. 둘의 상상력을 자극해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과 강연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드디어 12월 30일, 2019년이 지나가기 전에 제주도로 향했다. 우리 부부는 여행할 때마다 비를 몰고 다닌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어디론가 떠나면 거의 대부분 비가 온다는 뜻이다. 그 나름대로 한적해서 좋았지만 이번엔 경우가 달랐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지만 바람이 거셌다. 여행 2일차에 비양도를 들어가기로 계획했는데 파도가 너무 높았다. 아침 내내 출항 여부를 확인했지만 결국 하루 종일 결항이었다. 협재 해수욕장을 지나며 눈 앞에 보이는 비양도가 너무나 간절했다.

비양도에서 성산일출봉까지... 가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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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도에 도착한 나와 아이들 탐험 시작! ⓒ 신은경

3일차, 1월 1일이었다. 2019년 꿈 리스트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비양도를 들어가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다를 바라봤다. 잔잔했다. 서둘러 한림항으로 향했다. 출항 5분 전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오늘 배 떠요?"라고 물었다. 그렇게 비양도로 향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가 계획한 비양도를 탐험해 보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섬 주위를 돌아보기, 다른 하나는 해발 114미터의 비양봉 오르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세 시간 남짓, 두 가지 방식의 탐험을 다 해 보기로 했다. 휴양을 추구하는 여행을 즐기는 우리에겐 과감한 결단이었다.


지난해 1월에 강연을 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용어는 '아아 용암', '파호이호이 용암'이다.

"죽을 끓일 때 물의 양에 따라 되거나 끈적거리는 것처럼 묽은 용암은 멀리까지 흐르며 표면이 반들거리고 넓은 모양을 만든다. 바로 파호이호이 용암(Pahoehoe Lava)이다. 반대로 끈적거리는 용암은 멀리까지 흐르지 못하고 식을 때 표면이 깨지면서 날카롭고 뾰족해진다. 이런 과정을 거친 용암을 아아 용암(Aa Lava)이라 부른다."

해안 길을 따라 걸으며 아이들의 입에선 이 용어들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마이산 : "엄마, 저기 봐! 아아 용암이야. 거칠거칠하고 뾰족뾰족해."

강물 : "그러네. (두리번거리면서) 여긴 파호이호이 용암이야. 내가 먼저 찾았어. 저쪽엔 화산탄이야."


서로 경쟁하며 아는 것들을 하나라도 먼저 찾아내려고 한다. 통틀어 현무암이라고 칭했던 용암덩어리들을 분류해서 찾아냈다. 마치 전문가라도 된 것처럼 신이 난 모습이었다. 다리가 아프다며 투덜대다가도 책에서 봤던 걸 찾으면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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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도의 용암바위들, 파호이호이 용암바위입니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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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도의 용암바위, 아아 용암이 눈에 띕니다. ⓒ 신은경

비양봉에 오르면서 나는 발이 아프기 시작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강물이와 마이산은 오히려 산에 오르는 게 평지를 걷는 것보다 더 쉽다고 했다.


나 : "먼저 올라가. 엄마는 천천히 올라갈게."


세 걸음쯤 앞서 오르다가 뒤를 돌아본 마이산이 말한다. 갈대를 흔들며 마치 아이를 어르듯이 "힘내, 얼른 올라와"라고. 나는 웃음보가 터졌다. 그 힘으로 무거운 다리를 들어올렸다.


비양봉에 오르자 거짓말처럼 해가 나왔다. 우중충한 제주만 바라보던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바다를 마주했다. 열심히 탐험에 임한 우리에게 자연이 주는 선물이었다.


비양도에서 나온 우리는 한림공원, 정방폭포에 이어 마지막 날에는 성산일출봉에 오르며 제주 탐험을 마무리했다. 쉽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힘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고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나 : "아이고, 다리가 땡겨서 걸을 수가 없어."

마이산 : "어떻게 다리가 땡기지?"

강물 : "엄마가 나이가 들어서 그래. 한 살 더 먹었잖아."


요 녀석들. 엄마를 지능적으로 놀리네. 반박할 수 없는 나는 그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신은경 기자 sesilia11@hanmail.net

2020.01.1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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