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창문 보려고 미술관 갔다가 인생 화가 만났습니다

[컬처]by 오마이뉴스

경주엑스포 솔거미술관에 '박대성 전시실' 있는 이유


지금까지 살아오며 깨달은 것은, '기대'는 대부분 기대만큼 효력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기대는 '기대 이상'보다는 '기대 이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능하면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살려고 한다. 기대하지 않으며 사는 삶은 훨씬 큰 효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예상 못했던 감동은 곧잘 기대 이상의 감동으로 다가와 삶을 훨씬 살맛나게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에 방문한 경북 경주 솔거미술관에서도 이 법칙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솔거미술관을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지인이 보여준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미술관의 그림이 아니라 사진 속 창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꼭 한 번 가리라 마음먹었던 곳이다. 미술관 안에 있는 커다란 창으로 보이는 창밖 자연의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다.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는 미술관의 유리창, 그 사진 덕분에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기대치가 올라와 꼭 한번 가보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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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유리창으로 창 밖 풍경이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되는 솔거미술관, 이 풍경에 이끌려 솔거미술관을 찾게 됐다 ⓒ 추미전

그러나 생각은 늘 바쁜 일상에 밀리는 법이라 어느새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와 있었다. 문득 그 아름다운 창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일던 날, 미술관에서 무슨 전시를 하는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 길을 나섰다.


미술관이 경주라는 것만 알고 길을 나서 도착해 보니 경주엑스포 안에 있었다.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엑스포 입장권을 사야 한다.


겨울 내내 따스하던 날씨가 하필 제대로 동장군 기세를 떨치고 있던 날이라 바람이 쌩쌩 불었다. 미술관까지 가려면 언덕을 제법 올라야 했다. 찬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는 동안 한 장의 사진에 가졌던 기대마저 무너졌다. 그 창 하나를 보겠다고 가져서는 안 될 기대를 가지고 온 것이 아닌가, 후회가 들기도 했다.

경주의 신비로움이 그대로

미술관은 170여 미터 언덕 위에 나지막한 일자형 건물로 지어져 있었다. 단순하면서도 예술적인 느낌을 주는 건물이었는데, 알고 보니 건축가 승효상의 작품이었다. 도착해서 보니 미술관에서는 박대성 화백의 상설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나는 오직 그 큰 창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박대성 화백의 작품을 봤다. 순간 나지막한 감탄사가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그렇게 나는 박대성 화백의 그림을 처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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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삼릉비경' ⓒ 추미전(전시 촬영)

세로 4미터, 가로 8미터에 달하는 대작 '삼릉비경'이 걸린 전시실에 들어선 순간 마치 휘영청 달이 떠오른 경주 어느 소나무 숲으로 걸어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그림이 입체적이었다.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하는 굽은 소나무와 달, 그 아래 단출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석탑이 경주의 신비스럽고도 아름다운 풍경을 고스란히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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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거미술관 박대성의 작품 ⓒ 추미전

다른 전시실에 걸려 있는 또 다른 '설경' 앞에서도 한참을 서 있었다. 아무리 봐도 흰 색과 검은색 두 가지의 색깔밖에 없는데, 가지마다 하얀 눈을 이고 있는 나무가 마치 흑백사진 속 한 풍경인 것처럼 생생했다. 그림 속으로 걸어들어가면 발이 푹푹 빠지는 눈을 밟을 수 있을 것처럼 입체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가까이서 자세히 봐도 나무가지 위 쌓여 있는 눈이 흰색 물감을 사용해 그린 것인지, 그냥 흰 종이인지 알 수가 없어 궁금함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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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거미술관 박대성작 <한라산 >400*500cm ⓒ 추미전(전시 촬영)

4미터의 작품 '한라산' 앞에서는 떨어지는 폭포수의 세찬 물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했다. 분명히 화면 속 색깔은 검은색과 흰색뿐인데, 제주 특유의 화산석의 질감과 폭포수 아래 찰랑거리는 물의 차가움까지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 신기했다.


작품을 보면 볼수록 화백에 대한 궁금증은 더해갔다. 다행히 자료실에 가니 그동안 박대성 화백에 관해 방송된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오디오 시스템이 마련돼 있어 아예 죽치고 앉아 모든 자료들을 살폈다. 박대성 화백은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몰랐던 것뿐이고 현재 한국 화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화백 중 한 분이었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때 뒷배경으로 등장한 그림이 박대성 화백의 '장백폭포'이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박대성 화백의 왼쪽 팔이 의수라는 것이다. 그가 왼쪽 팔을 잃은 건 다섯살 때였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1949년의 어느 밤, 전후 이념갈등에 눈 먼 어른들이 잠자던 그의 부모를 살해하고 그의 작은 손에 낫을 휘둘렀다고 한다(2008년 <신동아>에 실린 '불국사 화가 박대성' 참고). 그러니까 이 많은 작품들을, 그것도 이천 호, 삼천 호의 대작들을 70년 동안 오직 오른손 만으로 그렸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학력은 중졸이 전부이고 체계적인 미술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이 모든 작품 세계를 독학으로 이루어 냈다.


내가 가졌던 흰 눈에 대한 궁금증도 풀렸다. 덧칠을 한 것이 아니라 아예 화선지 그 자체를 살린 것인데, 외국의 화가들이 오면 '그리지 않음으로 그림이 되는' 동양화의 '여백의 미'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발이 푹푹 빠질 것 같은 흰 눈도, 힘차게 흘러내리는 물줄기도 아무 것도 그리지 않은 여백 그 자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자연경관을 소재로 그린 '실경 산수화'의 맥을 잇는 박대성은 조선시대 실경 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맥을 잇는 화가로도 꼽힌다고 한다. 실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겸재 정선 그림과 나란히 박대성의 작품이 전시되기도 했다.


박대성 화백이 직접 말하는 자신의 인생과 작품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고 다시 지하 전시실로 내려갔다. 혹시 내가 허투루 보고 지나친 작품은 없는지 다시 찬찬히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시 보자 감동은 더 크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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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독도' ⓒ 추미전(전시 촬영)

그 중 작가가 특별히 언급했던 '독도'를 다시 봤다. 마치 독도를 지키겠다는 듯 용맹스럽게 독도 위를 날고 있는 용이 빨간 여의주를 움켜 쥐고 있다. 빨간 여의주는 작가가 일장기의 빨간 색을 생각하며 그린 것이라고 한다.

왼손도, 학맥도, 인맥도 없이 모든 것을 이룬 화가

솔거미술관이 지어진 배경도 박대성 화백이 자신의 작품 830여 점을 기증하면서 경상북도에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덕분에 박대성 전시실은 상설로 박대성 작품을 일정한 주기별로 교체하며 계속 전시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불편한 몸으로, 가진 것 하나 없이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까? 그러나 왼손도, 학맥도, 인맥도 없이 모든 것을 이룬 화백은 말한다. 그런 부족함이, 그런 불편함이, 지금의 그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고.


그래서 모든 것을 이룬 지금도 그는 경주 남산 아래 아예 '불편당'이라는 택호의 집을 지어놓고 불편 투성이인 그곳에서 오직 정신의 날을 세워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묵은 검정, 한 가지 색이 아니에요, '일묵 다색'이라고 하는데, 묵은 모든 색을 품은 색이지요."

그의 그림을 보면 작가의 이 말은 온몸으로 이해된다. 오직 먹 하나로 그린 그림이 어떻게 이렇게 천 가지, 만 가지의 풍경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해 낼 수 있단 말인가.


솔거미술관에서 만난 박대성은 기대하지 않았던 만큼 '기대 이상의' '놀라운' 감동을 안겨주었다. 다음에는 남산 아래 불편당을 수소문해 찾아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예술가의 작업하는 모습을 곁눈으로라도 뵐 수 있다면 좋겠다. 내 마음속 인명사전에 간직하고 싶은 또 하나의 이름이 더해졌다.

상설전시 '소산 박대성'

  1. 전시장소: 경주엑스포 솔거미술관 박대성전시관 1-5관(경북 경주시 경감로 614)
  2. 전시기간: 2019년 11월 25일~2020년 3월 29일

추미전 기자(chu815@dreamwiz.com)

2020.01.1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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