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그리고 이국종

[컬처]by 오마이뉴스

끝내 청새치를 포기하지 않았던 노인과 중증외상센터를 지키는 이국종

"때려 치워, 이 XX야. 인간 같지도 않은 XX 말이야, 나랑 한 판 붙을래? 너?"

믿을 수 없는 뉴스였다. 이 적나라한 쌍욕을 들은 사람이, 온 몸의 피가 다 빠져나간 사람도 그의 손길을 거치면 살아난다는 명의 이국종 교수라는 사실은 더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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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에게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동시에 안겨준 ⓒ 민음사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망망대해에서 거대한 청새치를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노인과 바다> 속 노인의 모습이 파노라마 영상처럼 떠올랐다. 노인의 모습은 어느새 이국종 교수와 겹쳐졌다. 청새치를 잡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였던 노인처럼 이국종 교수도 외상센터를 지키기 위해 적나라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음을 만천하에 공개된 녹음 파일은 짐작하고도 남게 했다.


헤밍웨이에게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동시에 안겨준 중요한 작품 <노인과 바다>, 멕시코만을 낀 쿠바 하바나 어촌마을에 사는 노인 산티아고는 84일째 큰 고기를 잡지 못한다. 깡마르고 여윈 목덜미에 두 뺨에는 갈색 반점까지 나 있는 영락없는 노인네지만 문제는 그의 눈길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두 눈을 제외하면 노인의 것은 하나같이 노쇠해 있었다. 오직 두 눈만은 바다와 똑같은 빛깔을 띠었으며 기운차고 지칠 줄 몰랐다.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눈이 살아있는 사람은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운이 이미 그를 떠났다"라고 수군대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늘 바다에 나간다.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던 것처럼 그는 85일 째도 바다를 향한다. 비록 변변한 어구도 없고 심지어 돛마저 다 떨어져 밀가루 포대로 덕지덕지 기운 볼품없는 것이긴 해도 그는 바다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85'는 행운의 숫자이길 바란 노인의 기대는 들어맞았는지 다랑어 떼를 만났고 점점 깊은 바다로 나간다. 그리고 정오 무렵, 그가 드리운 낚시 바늘이 갑자기 물 속으로 푹 잠기는 것을 목격한다. 노인의 예상대로 '85'는 행운의 숫자였는지 그의 낚시 바늘 문 것은 그토록 기대해했던 큰 고기였다. 그때부터 노인과 청새치의 싸움은 시작된다.


청새치는 바다에서 뼈가 굵은 노인만큼이나 호락호락하지 않고 노련하기까지 하다. 수심 180미터의 심해에서 사는 놈은 낚시를 물고도 좀처럼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노인과 청새치의 팽팽한 싸움, 팔의 힘만으로는 놈을 감당할 수 없자 노인은 본격적인 싸움을 위해 낚시 줄을 등에 건다. 그래도 조금도 힘이 약해지지 않는 놈은 낚시 줄을 놓지 않는 노인의 배를 끌고 자꾸 먼 바다로 나간다.


어느새 육지라고는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까지 나왔지만 놈과의 밀고 당기기는 계속된다. 배에 있는 먹을 것이라곤 달랑 한 병의 물, 그나마 식량은 아무것도 없다. 날치 몇 마리를 잡아 소금도 없이 생으로 먹으며 놈과의 싸움을 버티지만 싸움은 지난하고 끝이 없다. 노인은 자신이 어부가 된 것을 순간 후회하기도 한다.

차라리 어부가 되지 말 걸 그랬나보다,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렇지만 어부가 되는 게 내가 타고난 운명이 아닌가.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9월 밤바다는 한기가 느껴질 정도, 미끼 상자를 덮어둔 비닐을 몸에 감아 추위를 견디는 노인의 사투는 철저히 고독하다. 낚시 줄을 멘 등의 통증은 점점 심각해 오고 손은 경련이 나서 시체처럼 뻣뻣해진다.


낚시 줄 하나로 연결된 둘의 팽팽한 대립, 예상치 못한 청새치의 반격으로 노인의 얼굴은 찢어져 피가 나고 낚시 줄을 당겨야 할 왼손도 심하게 상처를 입는다. 이때쯤 그만 포기하고 낚시 줄을 놓아버리면 좋으련만 그는 결코 낚시 줄을 놓지 않는다.

하지만 난 녀석에게 인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얼마나 참고 견뎌낼 수 있는지 보여 줘야겠어.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망망대해에서 꼬박 이틀 밤낮을 낚시 줄을 풀고 당기는 팽팽한 시간을 보낸 뒤에야 겨우 청새치는 바다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노인의 승리다. 자신이 가진 밧줄 400미터 전부를 풀어 700kg은 족히 돼 보이는 큰 고기를 배의 옆면에 묶고 때마침 부는 무역풍을 따라 항구를 향하며 그는 비로소 안도와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그의 순조로운 항해는 불과 한 시간여 만에 끝이 난다. 노인의 말처럼.

"좋은 일은 오래가지 않는다."

먹구름 같은 피가 바다 밑으로 조용히 퍼져나가면서 피 냄새를 맡은 상어가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달려든 놈은 청상아리, 노인의 손가락 길이 만한 이빨을 가진 사나온 놈이다.


다시 싸움은 시작된다. 그러나 노련한 어부인 노인은 상어의 골을 정확히 공격하고 상어는 물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다. 이쯤에서 끝이 나면 좋으련만 연이어 상어 두 마리가 공격을 한다. 배가 고프면 노도 좋고 키도 좋고 사람까지 공격하는 갈라노에게 청새치 4분의 1을 빼앗기지만 이번에도 노인의 칼날은 상어의 골통을 가른다.


피는 피를 부르고 상어는 상어를 부른다. 계속되는 상어 떼의 공격에 청새치의 살점은 점점 뜯겨 나가고 볼품이 없어진다. 그때쯤에서 노인은 배에 매달린 청새치를 잘라 버려야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노인의 귀향은 그렇게 고단하지는 않지 않았을까? 그러나 노인은 고집스럽게 청새치를 버리지 않고 달려드는 상어 떼와 싸우는 방법을 택한다. 그는 왜 이 싸우는 방법을 택해야 했을까?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이때 쯤이면 노인의 싸움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헷갈릴 정도다. 이미 살점은 다 뜯겨 나가 고기를 시장에 내다 팔 수도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노인은 배에 묶은 청새치의 줄을 풀지 않는다. 결국 상처뿐인 몸을 이끌고 항구에 닿았을 때 청새치는 살점은 다 뜯겨 나간 채 거대하고 앙상한 뼈만 남아 있었다. 노인의 싸움은 패배였을까 ?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중증 외상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홀로 사투를 벌여온 의사 이국종, 국회에 증인으로까지 출석해 중증 외상센터 건립의 중요성을 알렸던 그는 지난한 싸움 끝에, 노인이 청새치를 잡는 데 성공하듯 중증 권역 외상센터 건립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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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 교수 - 헬기 앞에 서있는 이국종 교수의 모습이다. ⓒ 아주대학교병원

그 뒤 국민들은 잠시 그를 잊고 있었다. 새롭게 건립된 외상센터에서 헬기를 타고 응급현장들을 누비며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에 전념하는 줄 알았다. 다만 한 번씩 언론에서 보는 그의 표정이 늘 엄숙하다 못해 비장해 염려가 되긴 했다. 그런데 그의 승리는 겨우 힘들게 청새치를 잡은 정도였고 그 후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난데없이 들려온 소식은 그가 한 달 여 동안 외상센터를 떠나 해군 함정을 타고 바다를 떠돌고 있었다고 한다. 해군 함정을 타고 태평양을 떠돌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조선의 운명을 홀로 지고 왜적과 외로운 싸움을 벌인 이순신을 그린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외우다시피 한다는 그는, 가끔 바다에서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을 떠올리지는 않았을까? 마을 사람들은 노인이 잡아온 그 거대한 뼈를 보고 경탄 섞인 말투로 말한다.

"그렇게 큰 고기를 본 적이 없어."

이국종 교수의 싸움 역시, 지금은 앙상한 뼈밖에 남지 않은 청새치와 함께 귀환한 듯 보여도 그의 싸움은 결코 패배가 아니다. 앙상하지만 거대한 뼈를 보고 마을 사람들이 노인의 사투를 짐작하듯, 현 사태를 지켜 본 이들은 패배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왔을 이국종 교수의 지난 시간을 비로소 돌아볼 수 있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그가 받았을 고통을 공감한 많은 이들이 그가 결코 '홀로'가 아님을 그의 편에 함께 서고 싶은 마음을 알리고 싶어 한다.


1954년 헤밍웨이에게 노벨문학상이 수여될 때 스웨덴 한림원은 <노인과 바다>를 이렇게 평했다.

폭력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현실 세계에서 선한 싸움을 벌이는 모든 개인에 대한 자연스러운 존경심을 다룬 작품 -스웨덴 한림원,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이국종 사태에 <노인과 바다>가 떠오른 이유는 그의 전장이 우리의 전장과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냉혹하고 무자비한 바다에서 매일 매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모두에게, 매순간 포기하고 싶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싸움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노인과 바다>는 읽을 때 마다 고전이 고전인 이유를 느끼게 해 주는 명작이다.


추미전 기자(chu815@dreamwiz.com)

2020.01.2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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