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받을 용기' 장착한 백승수 단장 심리, 파헤쳐보니

[컬처]by 오마이뉴스

SBS <스토브리그> 백승수 단장

"이 정도 댓글은 시즌 중 경기를 크게 져도 보지 않습니까. 그냥 우리는 우리가 하던 일 계속 잘하면 됩니다."

야구라는 특별한 소재와 박진감 있는 스토리 전개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 8회 길창주 선수(이용우)의 조작된 인터뷰가 나가고 팀이 술렁이자, 백승수(남궁민) 단장은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직원들은 계속 술렁이며 대책 마련을 요구한다. 백 단장은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저는 드림즈에 오면서 딱 하나 편할 거라고 기대했던 게 있는데, 욕먹는 건 다들 익숙하겠지 그런 거였는데. 욕먹고 뼈아픈 거 시즌이 끝났을 때 아닙니까. 어차피 우리가 성적을 내면 바뀔 여론 같은 거 신경 쓰지 맙시다."

백 단장은 진정 멋지다. 어떤 상황에서도 세간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며 위기에 대처한다. 그의 소신은 드라마 초반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던 드림즈 직원들의 마음을 돌려놓기에도 충분했다.


그런데, 이런 백 단장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어딘가 어색하다고 느껴졌다. 당당한 행동과는 다르게 그의 눈빛은 단호해 보이면서도 슬픔과 체념을 가득 품고 있었다. 표정과 행동이 불일치하는 백 단장. 아슬아슬해 보이는 그의 '미움 받을 용기'는 어디서 온 것일까?

인정욕구와 과제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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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꼴찌팀인 드림즈에 백승수 단장이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SBS ⓒ SBS

몇 해 전 큰 인기를 끌었던 책 <미움 받을 용기>로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심리학자 아들러는 인간의 사회적 특성을 중요하게 다룬 '개인심리학'을 주창한 학자다. 그는 인간의 삶이 무의식에 지배를 받는다고 보았던 프로이드와는 반대로, 사람은 용기와 의지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바꿔갈 수 있다고 했다. 아들러는 사람이 자기 자신답게 살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으로 '인정욕구'를 들었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고 타인의 평가에 휘둘려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인정욕구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아들러가 제시한 것은 '과제분리'다. 과제분리는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구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에는 책임을 지지만, 타인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 자세를 말한다. 아들러는 이를 통해 인정욕구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으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지켜본 백 단장은 바로 이 '과제분리'의 달인이었다. 드라마 초반 하는 일마다 직원들이 반기를 들었을 때 백 단장은 이들을 설득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드림즈의 각종 현안들을 둘러싸고 여론이 악화될 때에도 그는 여론의 소리를 자신의 일과 연결시키지 않는다. '비난하고 떠드는 것은 그들의 몫'이고 '나는 단장으로서 할 일을 한다'는 철저한 과제분리의 자세다.


때문에 백 단장은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타인의 평가와 인정에 영향 받지 않겠다'는 신념을 실천하는 백 단장의 '미움 받을 용기'는 5회 한국행을 망설이는 길창주 선수를 설득하는 대사에서 매우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아무한테도 미움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저는 길창주씨가 정말로 절실한 건지 모르겠어요."

어린 시절부터 경쟁과 평가에 익숙해진 채, 타인의 인정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미움 받을 용기'를 지닌 백 단장은 분명 '사이다'같은 존재다.

상처에서 비롯된 방어적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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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수 단장은 '미움받을 용기'를 지닌 자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단호하면서도 어딘가 슬퍼보인다. ⓒ SBS

아들러의 이론에 따르면, 과제분리를 통해 인정욕구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은 스스로도 행복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사회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어간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백 단장은 그토록 과제분리를 철저히 하는데도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대인관계가 매우 제한된 채 고립되어 살아가고, 그나마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늘 불친절하다. 때문에 자신을 믿어주는 운영팀 직원들로부터도 종종 오해를 받는다.


이는 백 단장의 '미움 받을 용기'가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가 아닌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9회 방송분에 따르면, 야구선수였던 백 단장의 동생이 다치자 아버지가 쓰러진다. 동생은 하반신 마비를 얻게 되고, 아버지는 그 이후 병원에서 지내고 있다. 아마도 그 즈음 백 단장은 아내 배 속의 아기를 잃고, 사랑하는 여인과도 이별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동생이 다치던 날 동생에게 "앞 만 보고 달려"라고 자신 있게 충고했던 백 단장은 가족에게 닥친 불행에 심한 죄책감을 느낀다. 동생, 아버지, 아기,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까지 곁에 있는 사람을 모두 잃은 백 단장. 그의 내면에 새겨진 것은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신념일 것이다.


깊은 상실을 경험했을 때 필요한 것은 공감과 위로, 그리고 상처를 수용하고 보듬는 시간이다. 하지만 백 단장은 이 힘든 시기에 사회로부터 버림받는다. 회사는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백 단장에게 퇴사를 종용하다 해체가 예정되어 있던 씨름단으로 발령을 낸다. 이런 경험은 백 단장이 가지고 있던 세상과 타인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렸을 것이다. 이에 백 단장은 '세상은 믿을만한 곳이 아니며, 다른 사람은 절대 믿을 수 없다'는 신념을 추가하게 된다.


이제 백 단장은 이 두 가지 신념에 의해 살아간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겐 늘 안 좋은 일이 생기니,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또한 나를 지켜주지 않는, 믿을 수 없는 세상에 마음을 닫아건다. 때문에 백 단장은 휴대폰에 누구의 전화번호도 입력하지 않는다. 사람 대 사람으로 교류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직원들의 권유에도 회식에 참여하지 않고, 업무상 딱 필요한 말만 하는 것도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은 백단장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들이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완전히 차단한 백 단장은 그 누구에게 비난 받는 것도 별다른 자극이 되지 않는다. 그저 아픈 부모님과 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절실함 때문에 최선을 다해 할 일을 할 뿐이다.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타인의 감정도 헤아리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처럼 백 단장이 지닌 '미움 받을 용기'는 아들러가 말한 '용기'와는 결이 다르다. 아들러가 이야기한 삶을 변화시키는 용기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면, 백 단장의 용기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고 세상과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때문에 그는 용기 있게 행동하지만, 여전히 슬프고 외롭다.

'음식 사진'에 담긴 욕구

하지만 이 깊은 상처도 차단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인정욕구보다도 더 근원적인,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마땅히 간직하는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다. 백 단장의 내면에 이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때문에 그는 식사시간마다 음식사진을 찍는다.


9회 방송에서 백 단장의 동생은 드림즈 직원들에게 백 단장이 음식사진을 찍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엄마가 끼니를 걱정해주면 안심이 된대요. 엄마가 아직 우리를 걱정해줄 여유가 있구나. 그렇게 확인하는 거예요"라고. 이 말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단지 어머니의 안부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방법을 택할 수도 있었다.


'음식 사진'으로 매개된 어머니의 걱정은 어머니의 사랑이기도 하다. 백 단장은 음식 사진을 보내고 돌아오는 어머니의 반응을 통해 내가 관심 받고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즉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음식 사진을 통해 표현하고, 이에 대한 어머니의 답변으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왔던 것이다. 9회 어머니가 "이젠 사진을 보내지 않아도 돼"고 말했을 때 백 단장이 "계속 보낼 건데"라고 답한 것은 이 때문이다.


어쩌면 음식 사진은 백 단장이 다시금 세상과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스스로를 사랑할 가능성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드라마가 중반에 이른 요즘, 백 단장의 웃는 모습이 가끔씩 카메라에 잡히고 있다. 언뜻 비치는 그의 미소는 무척이나 따뜻했다. 9회에는 자신을 복귀시키기 위해 애쓰고, 환영식을 해준 직원들에게 '고맙다'고 전해달라고도 한다. 자신의 감정을 내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도 단장님을 지켜주지 않았네요. 우리가 지켜줘야 겠어요."

백 단장의 사연을 알게 된 이세영 팀장(박은빈)은 9회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드림즈 직원들은 힘을 모아 이 말을 실천한다. 누군가 나를 믿어주고 지켜주는 경험은 백 단장의 무너진 세상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켜 줄 것이다. '음식 사진' 속에 남아 있는 백 단장의 사랑에 대한 욕구를, 그의 따뜻한 미소를 드림즈 직원들이 되살려 주길, 그래서 드라마가 끝날 때쯤엔 백 단장의 휴대폰에 지인들의 이름과 별칭이 저장되길 기대해 본다. 그럴 때 백 단장이 보여주고 있는 용기는 자신과 세상에 대한 신뢰에서 우러난 진정한 '미움 받을 용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드림즈 선수단과 직원들에게도 이 용기가 전파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송주연 기자(serene_joo@naver.com)

2020.01.2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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