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륜산이 꼭꼭 숨겨놓은 비밀의 정원, 진짜 있네

[여행]by 오마이뉴스

겨울에 만나는 숨겨진 초록세상, ‘해남 설아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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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산이 품은 해남 설아다원 풍경. 차밭과 어우러지는 녹나무에 자전거와 기타가 올려져 있다. ⓒ 이돈삼

겨울에 초록세상을 찾아간다. 그것도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별천지 같은 비밀의 정원이다. 매달 관광지 두 곳을 '이 달의 여행지'로 추천하고 있는 전라남도가 2020년 새해 첫 번째 달에 추천한 곳이기도 하다.


전라남도는 '1월의 여행지'로 진도 운림산방과 해남 설아다원을 추천했다. 진도 운림산방은 소치 허련(1808-1893)이 말년을 보내면서, 일가족 직계 5대가 그림을 그려온 남종화의 산실이다. 첨찰산과 어우러지는 풍경만으로도 한 폭의 수묵화를 그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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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운림산방 풍경. 첨찰산과 어우러지는 풍경이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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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와 어우러진 차밭 풍경. 다른 지역의 차밭과 달리 설아다원에는 녹나무와 삼나무, 소나무가 한데 자라고 있다. ⓒ 이돈삼

해남 설아다원은 겨울에 만나는 초록세상이고, 비밀의 정원이다. 차밭이 그렇게 생겼다. 두륜산의 뒤편,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에 있다. 도로변에서는 산만 보이고, 차밭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도로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다원 입구까지 가더라도, 돌과 흙으로 지은 집만 보인다. 가끔 산골에서 볼 수 있는 멋진 집이라 생각하며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이 집 뒤에 초록의 차밭이 숨겨져 있다. 차밭도 꽤나 넓고 풍경이 다소곳하다. 두륜산이 품고 있는 차밭이다. '차밭'하면 보성이나 강진, 하동이 많이 알려져 있다. 해남차밭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해남은 예부터 차의 성지(聖地)였다. 차를 통해 경지에 올랐고, 다도를 정립한 초의선사(1786-1866)가 머물던 곳이 해남이고 두륜산 일지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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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설아다원 풍경. 두륜산과 주작산, 덕룡산이 품은 차밭을 녹나무와 삼나무, 소나무가 둘러싸고 있다. ⓒ 이돈삼

설아다원은 차문화 성지의 명맥을 소리 없이 잇고 있는 곳이다. 오근선(58)·마승미(49)씨 부부가 가꾸고 있다. 초의선사가 머물던 일지암의 스님을 만나 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 지금까지 차나무를 재배하며 유기인증을 받았다. 사람과 자연이 함께 키운 차밭이다.


단순히 차나무만 재배하는 게 아니다. 방문객들이 차를 마시고, 찻잎을 직접 따서 덖으며 차도 만들 수 있다. 차밭 이랑을 따라 뉘엿뉘엿 거닐며 초록세상을 만끽할 수 있다. 제철 음식도 먹고, 우리 가락까지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차밭이다.


차밭의 면적이 3만3000㎡. 축구장 5개 정도 크기다. 30여 분 산책 코스로 맞춤이다. 오근선·마승미씨 부부가 무등산 춘설헌과 강진 금곡사, 해남 녹우당 등지에서 차 씨앗을 가져와 심고 가꿨다. 씨앗을 뿌리고 일일이 가꾼 정성도 지극했다. 잡목을 일일이 없애고, 크고 작은 돌도 손으로 주워냈다. 골라 낸 돌을 재료로 집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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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설아다원의 겨울 풍경. 겨울에도 봄같은 초록의 세상을 만날 수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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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아다원 차밭에 새잎이 돋아나고 있다. 녹나무, 배롱나무와 어우러진 차밭 풍경이 싱그럽다. ⓒ 이돈삼

다른 지역의 차밭과 달리, 차밭에 상록활엽수인 녹나무와 삼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것도 색다르다. 겨울에 초록이 더욱 짙다. 꽃망울을 머금고 있는 목련도 차밭을 둘러싸고 있다. 때죽나무와 배롱나무, 소나무도 많다. 차밭 고랑에는 광대나물이 지천이다. 햇볕이 내리쬐면, 계절이 겨울인지 봄인지 헷갈릴 정도다.


산자락이지만,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차밭이다. 설아다원에서 보면 서쪽으로 두륜산이, 동쪽으로는 주작산과 덕룡산이 펼쳐진다. 병풍처럼 둘러싼 산들이 매서운 산바람을 막아준다. 남쪽은 남창과 완도다. 이쪽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감미롭다. 해남읍내와 비교해 기온이 3℃ 이상 높다.


두륜산 자락을 차의 성지라 하는데, 허투루 나온 말이 아니다. 해질 무렵의 차밭 풍경도 몽환적이다. 달빛에 비치는 차밭도 멋지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옥민박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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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승미 씨가 북을 치며 남도민요를 부르고 있다. 설아다원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별난 공연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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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근선 씨가 장작난로에 나무를 넣고 있다. 오 씨는 전통문화를 지키며 농사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 이돈삼

다원에서 우리 가락을 들을 수 있는 건 설아다원의 큰 장점이다. 오근선·마승미씨 부부가 해주는 공연이다. 마승미씨가 장구를 치면서 진도아리랑, 흥부가, 흥타령, 사랑가, 사철가 등을 구성지게 한다. 남편 오근선씨가 고수를 맡아 북채를 들고 박자를 맞춘다.


이들은 젊었을 때부터 우리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마승미씨는 결혼하기 전에 장구, 꽹과리를 익혔다. 판소리는 10년 정도 했다. 오근선씨는 농민운동을 하면서 문화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데이트도 차를 마시면서 했다. 고천암 간척지에서 벼농사를 짓다가, 26년 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전통문화를 지키며 농사로 삶을 이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일하고 있다. 한옥찻집에서 우리가락 공연을 하는 것도 이런 연유다.


설아다원을 찾아가는 여정은 초록의 차밭은 물론 춤과 노래, 남도문화까지 만날 수 있는 여행이 된다. 오근선·마승미씨 부부가 추구하는 여행이기도 하다. 예술회관 같은 틀에 박힌 무대가 아닌, 창 밖으로 차밭이 내다보이는 한옥집에서 남도문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공연을 보고 있으면 흥겨운 가락에 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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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설아다원의 한옥찻집. 차밭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창밖으로 차밭을 보며 차를 마시고 공연도 볼 수 있는 곳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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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밭쉼터에서 본 설아다원 풍경. 두륜산이 보이고, 삼나무가 차밭을 둘러싸고 있다. ⓒ 이돈삼

설아다원은 강진에서 완도로 가는 길목,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에 자리하고 있다. 다산초당과 석문공원이 있는 도암면과 신전면을 차례로 지나면, 남창과 대흥사로 갈라지는 불일초등학교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대흥사 방면으로 조금만 가면, 왼편 두륜산 자락에 설아다원이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다. 왜 '비밀의 정원'인지 실감할 수 있다.


부근에 다른 가볼 만한 곳도 많다. 강진군 도암면에 다산 정약용의 흔적이 남아있는 다산초당과 백련사 그리고 석문공원이 있다. 해남군 삼산면으로 가면 대흥사와 일지암, '혁명시인' 김남주와 고정희 시인의 생가도 있다. 북평면으로 가면 임진왜란을 전후한 이야기와 함께 이진진성과 달량진성을 만날 수 있다. 산행을 좋아하는 이들은 두륜산이나 주작산, 덕룡산에 올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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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시인'으로 불리는 김남주 시인의 생가. 설아다원에서 가까운 해남군 삼산면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이돈삼 기자(ds2032@korea.kr)

2020.01.2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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