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앞에서 용감했던 여성들이 쓴 한시

[컬처]by 오마이뉴스

봉건시대의 금기도 사랑은 막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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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류시인 이옥봉. 박연옥이 쓰고 그린 책 '조선의 여류시인 미인도'에 나오는 이옥봉 그림. ⓒ 배남효

여성에게 폐쇄적이던 봉건시대에도 사랑하는 마음은 참기도 막기도 어려웠던 모양이다. 여성이 먼저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한시들이 있어 흥미롭다. 그 사랑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못하기도 하지만, 용감하게 고백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 앞에는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었던 것 같다.

戀募詩 사모하는 시


​馬上誰家白面生 말위에 어느 집 도련님일까

爾來三月不知名 석달이 되도록 이름조차 몰랐네

如今始識金台鉉 지금 비로소 김태현이라 알았는데

細眼長尾暗入情 가는 눈, 긴 눈썹에 남몰래 정들었네

고려말 문인이던 김태현(金台鉉, 1261-1330년)의 젊은 시절에 동문수학한 선배의 여동생이 연모하여 바친 시라고 한다. 그 여인이 누구인지는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선배의 여동생으로 과부가 되어 집에 돌아와 있었다는 이야기만 전해온다.


여인은 김태현이 자주 집에 출입하자, 준수한 모습을 보고 남몰래 반했던 모양이다. 어느새 깊게 사랑하게 되고 참을 수가 없어, 시를 써 창틈으로 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태현이 거부하고 그 집의 출입을 금함으로써,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사랑은 당사자들만의 고유한 문제라 어떻게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써보낸 여인이면 사랑을 받아줘도 좋을텐데, 거부했다고 하니 안타깝다. 힘들게 고백했는데 실연을 당했으니, 여인의 마음도 무척 아프고 괴로웠을 것이다.


조선의 실학자 이덕무는 이 시를 고려 500년 동안 여인이 쓴 시로 감상할 만한 단 한 수로 꼽았다. 여인이 사랑하는 남자를 묘사하고 마음을 드러내는 솜씨가 아주 탁월한 것이다. 실패로 끝나버린 연애시이지만 감상하는 재미는 아름답고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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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연애하는 모습. 수표교 전시회 영상물에 나오는 조선시대 남녀가 밤에 연애하는 모습 ⓒ 배남효

이와는 반대로 첫눈에 반해 여자가 사랑을 용감하게 고백하고, 남자가 바로 받아들인 경우도 있다. 중국의 남북조 시대에 소소소(蘇小小)의 연애 이야기는 유명한데, 그녀의 과감한 프로포즈는 정말 아름답고 시원하다. 어떤 남자라도 이런 연애시로 사랑을 고백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西陵歌 서릉가


妾乘油壁車 저는 유벽거를 타고,

郞騎靑驄馬 낭군은 청총마를 탔네요.

何處結同心 어디서 마음을 맺을까요?

西陵松柏下 서릉의 송백나무 아래지요

소소소는 미모와 재능으로 이름난 기생이고, 상대인 완욱(阮郁)도 명문가의 귀공자였다. 두 사람은 신분의 차이는 있었지만 선남선녀의 만남이었던 것이다. 어린 소소소의 당돌한 프로포즈로 사랑이 시작되어, 두 사람은 서로 좋아하면서 즐거운 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소문을 들은 완욱의 아버지가 기생과 사랑에 빠진 아들을 두고 볼 수 없어 금릉(金陵, 난징)으로 불러들였다. 완욱과 헤어진 소소소는 좌절과 실의에 빠져 병으로 고생하게 되었다. 얼마후 19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가인박명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아버지의 명에 따라 자신을 버리고 간 그런 남자를 못 잊어 병까지 났다니 당돌했던 소소녀답지 않아 보인다. 못마땅하지만 사랑은 저마다 다르게 하는 내밀한 것이라서 뭐라고 탓하기는 어렵다. 이후 소소소의 연애담은 소설과 희곡으로 성행하여 인구에 회자되고 유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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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시인 허난설헌. 박연옥이 쓰고 그린 책 '조선의 여류시인 미인도'에 나오는 허난설헌 그림 ⓒ 배남효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시와는 달리 부끄럽게 사랑을 표현하는 연애시도 있다. 조선의 가장 뛰어난 여류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이 쓴 채련곡(采蓮曲)이다.

秋淨長湖碧玉流 맑고 긴 가을 호수는 푸른 옥이 흐르고

荷花深處繫蘭舟 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를 매어두었네

逢郞隔水投蓮子 임을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遙被人知半日羞 멀리서 남에게 들켜 반나절이나 부끄러웠네

호수에서 연밥을 던지며 임을 기다리는 아리따운 여인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임을 부를려고 슬며시 연밥을 던지지만, 남에게 들켜버려 부끄러워하는 광경이 그대로 그려진다. 임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앞서는데, 남의 눈치도 봐야 하는 여인의 모습이 재미있게 다가온다.


조선 초기의 여류시인 이옥봉(李玉峯)은 임과 헤어지고 그리는 정한을 애절하고 아름답게 노래했다. 몽혼(夢魂)이라고 많이 알려진 시인데, 원제목은 자술(自述)이다.

近來安否問如何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月到紗窓妾恨多 사창에 달빛 비쳐 저의 한은 깊어갑니다

若使夢魂行有跡 만약 몽혼이 오가는 자취를 남긴다면

門前石路半成沙 문 앞 돌길이 반은 모래가 되었겠지요.

이옥봉은 시를 좋아하여 스스로 남편을 문인으로 선택할 정도로 적극적인 여성이었다. 그러나 억울하게 억지로 남편과 헤어지게 되어 애타는 그리움이 깊었다. 독수공방의 외로움을 달래며 꿈속의 혼이라도 자주 찾아가 만나고 싶은 간절함을 돌길이 모래가 되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하늘은 재능을 주었지만 행복은 주지 않았다는 말처럼, 여류시인들이 먼저 시작한 사랑은 기구하다. 처음부터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나 중간에 끝나버린 사랑이나 애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쓰라린 아픔을 헤아리다 보니, 남겨진 연애시도 아름답지만 슬픔이 함께 느껴지는 것이다.


배남효 기자(qoskagy@hanmail.net)

2020.02.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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