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나영석, 둘 다 혁신에 나섰건만...시청률 격차 왜일까?

[컬처]by 오마이뉴스

두 스타PD의 엇갈린 평가에 대하여


기존의 형식을 부정하(고 더 나아가 파괴하)는 것에서 혁신은 출발한다. 개혁을 부르짖는 정당들이 당명을 수시로 바꾸고 (입맛에 맞게) 조직을 재편하는 건 그 때문이다. 미술, 음악, 문학 등도 끊임없이 앞선 세대의 방식을 깨는 과정을 거치며 발전했다. 묵은 틀을 바꾸거나 시대에 맞게 뜯어고쳐 새롭게 하는 건 혁신의 전제조건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했던가.


예능이라고 다를까. 한때 신선하게 다가왔던 관찰 예능은 언제부턴가 우후죽순 생겨나 이젠 시청자들의 피로감을 야기하고, '평타'가 보장된다는 이유로 먹방, 쿡방, 여행, 가족 예능 등 뻔한 소재들이 반복되는 상황에 시청자들은 지루함을 호소하고 있다. '예능의 위기'라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분명한 건 변화에 대한 열망이 부글부글 끓어오른 시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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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 이정민

대한민국 예능을 대표하는 두 사람, 김태호 PD와 나영석 PD는 변화의 최전선에 섰다. 업계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와 더불어 거머쥔 최고라는 포지션은 그들에게 새로운 것을 시도할 용기(한 번의 실패를 감내할 수 있는 심리적 안도감)와 새로운 미래를 제시해야 한다는 부담을 동시에 줬다. 김태호와 나영석은 도전을 선택했다. 역시나 출발점은 형식이었다.


MBC <무한도전>의 종영 이후 휴식기를 가졌던 김태호 PD는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복귀를 알렸다. 트렌드에 발맞춘 신박한 행보였다. 본격적인 방송에 앞서 선공개 됐던 MBC <놀면 뭐하니?> '릴레이 카메라'는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릴레이 음원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연 '유플래쉬', 유산슬 신드롬을 불러 일으킨 '뽕포유'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큰 주목을 받았다.


같은 시기에 제작됐던 MBC <같이펀딩>의 경우에는 공익 프로젝트를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실현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줬다. 김태호는 <무한도전>을 연출하던 시절부터 플랫폼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언급했다. 여러 매체를 통해 "(TV)플랫폼 밖으로의 도전이 필요했던 상황"이라고 답답함을 호소해 왔다. 고민이 많았던 그가 복귀와 함께 시도한 도전은 성공적이라 평가할 만하다.

"다들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방송 환경이 변화를 하고 있고 TV만 보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클립들로 보는 사람들이 늘었다. '전체를 보여주기 힘든 환경이구나!', '시청 패턴이 변했구나!' 이런 걸 느꼈다." (김태호 PD)

형식의 파괴라는 면에 있어서 나영석 PD의 보폭은 누구보다 컸다. 나영석은 일찍부터 유튜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tvN <신서유기 외전: 삼시세끼-아이슬란드 간 세끼>와 <라면 끼리는 남자>는 유튜브 채널(채널 십오야)를 통해 (방송되지 못한) 풀버전이 공개됐다. 오히려 무게중심을 유튜브 쪽에 찍은 듯 보였는데, 방송을 통해 화제성을 끌고 유튜브를 주무대로 사용한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더 흥미로운 점은 <아이슬란드 간 세끼>와 <라면 끼리는 남자>의 방송 분량이었는데, 두 프로그램은 고작 5~6분에 불과했다. 굉장히 파격적이었다. 나영석은 변화하는 대중의 콘텐츠 소비 습관에 착안해 새로운 전략을 짰고, 그것을 그것을 숏폼(short-form)형식의 프로그램으로 구체화했다. 판매자가 구매자의 요구에 맞추듯, 제작자가 대중의 니즈에 맞춰 변화한 것이다.


나영석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갔다. 지난 1월 첫방송을 시작한 <금요일 금요일 밤에>는 각기 다른 소재의 6개의 코너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제작됐다. 각 코너의 분량은 15분 남짓이다. 나영석은 "내가 안방극장 시청자라면 어떻게 TV를 소비하고 싶은지에 초점을 맞췄다"며 시청자들이 "마음에 드는 코너만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기존 예능의 문법을 과감히 뒤흔든 것이다.

"(타 방송사와의 협업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타방송사 PD들도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래서 내부 보고보다는 일단 저질렀던 측면이 크다." - MBC <탐나는 TV>, 김태호 PD의 인터뷰

예능의 미래를 고민하며 형식의 변화를 궁리한 '선각자' 김태호와 나영석의 '다음'은 어땠을까. 냉정하게 말하면 두 사람의 성적표는 다소 엇갈린다.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을 내세운 캐릭터 쇼가 자리잡았고, 부캐들(유고스타, 유산슬, 라섹)을 통해 세계관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뿐만아니라 타방송사의 협업을 주도하며 새로운 방송 문화를 선도해 나가고 있다. 형식과 내용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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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 PD ⓒ 이정민

<놀면 뭐하니?>는 KBS1 <아침마당>을 시작으로 SBS <영재발굴단>, 코미디TV <맛있는 녀석들>과의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했고, 최근에는 EBS <최고 요리 비결>과도 손을 잡았다. EBS에 소속된 펭수와의 만남도 가졌다. 이에 힘입어 <놀면 뭐하니?>의 시청률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데, 8일 방송(28회)은 10.9%(닐슨코리아 기준)로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한편, <금요일 금요일 밤에>의 경우는 조금 암울하다. 시청률이 2.889%(1회)→2.837%(2회)→2.827%(3회)에 그쳤다. 물론 나영석은 "파편화한 프로그램이라 캐릭터가 뭉쳐서 케미를 주고받으며 폭발력을 키우는 문법은 전혀 없"기 때문에 "(시청률이) 낮게 나올 것을 각오하고 만들었다"고 밝혔지만, 그가 예상했던 4%에 비해서 상당히 낮은 수치이다. 동시간대 꼴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내용적인 아쉬움이 발목을 잡았다. 가장 반응이 좋은 '이서진의 뉴욕뉴욕'은 나영석표 여행 예능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고, '이승기의 체험 삶의 공장'은 KBS2 <체험 삶의 현장>와 다를 게 없다. '신기한 과학나라', '신기한 미술나라'는 JTBC <차이나는 클라스>나 tvN <알쓸신잡>의 향기가 난다. '내 친구네 레시피'는 산만하고, '당신을 응원합니당'은 선한 예능이나 재미 면에서 아쉽다.


형식의 변화에 치우쳐 내용의 혁신에는 조금 안일한 게 아니냐는 지적은 괜한 말이 아니다. 아무래도 숏폼 형식으로는 나영석의 장점이었던 스토리텔링이나 캐릭터 간의 케미가 잘 드러나기 어렵다. <삼시세끼>, <꽃보다 할배>, <윤식당> 등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물론 <금요일 금요일 밤에>를 통한 나영석의 시도는 완결판도 아니고, 다양한 실험의 일환일 뿐이다.


<놀면 뭐하니?>의 경우에도 초반에 시청률 난조로 어려움을 겪었던 걸 생각해 보면 <금요일 금요일 밤에>도 낙담하긴 이르다. 숏폼 형식에 부합하면서도 나영석의 장점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아이템이 보강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한편으로는 "재밌는 콘텐츠면 플랫폼은 상관없을 것 같았다"는 김태호의 말이 형식에 몰두해 자신만의 색을 잃은 나영석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시대에 발맞춰, 대중의 요구에 따라 제작자 스스로 변화해 나가는 건 매우 반가운 일이다. 전위적이라 할 만큼 큰 변화를 제시하고 있는 김태호와 나영석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다만, 형식에 얽매여 자신만의 색을 잃는 우를 범하지는 않길 바랄 뿐이다. 대중이 왜 김태호의 예능, 나영석의 예능을 사랑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답은 쉽게 나올지도 모르겠다.


김종성 기자(transcendme@hanmail.net)

2020.02.1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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