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천은사에도 봄이 옵니다

[여행]by 오마이뉴스

코로나19로 어수선하지만... 소나무 향기 따라 차분히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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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은사를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 숲. 숲에 서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코로나19의 걱정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다. ⓒ 이돈삼

절기상 우수(2월 19일)를 앞두고 한차례 눈이 내렸다. 꿈결 같은 이틀간의 겨울이었다. 봄을 향해 달음박질하던 날씨도 잠시 주춤했다. 우수가 지나면서 다시 봄날을 찾아가고 있다. 계절은 봄을 향하는데, 코로나19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확진자도 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사회가 받는 타격이 크다. 나다니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여기저기서 장사가 안 된다고 울상이다. 식당과 술집은 물론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학생들의 졸업식이 취소되면서 꽃 재배 농가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의 일상도, 나들이도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문제는 '경제'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현명한 소비, 현명한 여행이 필요한 요즘이다. 코로나19로 위축된 몸과 마음을 조금 털어내고, 힐링을 할 수 있는 지리산 숲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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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은사 일주문과 어우러진 소나무. 소나무는 단순한 나무라기보다 우리와 함께 해온 '한국인의 나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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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를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 숲길. 호젓한 숲길이 일상의 근심을 금세 털어내 준다. ⓒ 이돈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가 소나무다. 우리 국민의 절반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소나무를 꼽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소나무는 그냥 나무라기보다 한국인의 나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평생을, 살다가 죽을 때까지 소나무와 함께 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는 나무다.


버릴 것도 하나 없는 유용한 나무가 소나무다. 건물의 서까래, 대들보로 썼다. 옷장, 지게 등을 만드는 생활용구로도 쓰였다. 솔잎과 가지는 땔감으로 썼다. 소나무 장작이 좋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솔잎은 차, 약, 음식 등의 재료로 썼다. 송진은 화학약품을 만드는 데 쓰였다.


이런 소나무를 우리 조상들은 예찬했다. 사철 푸르다고 곧은 절개를 나타낼 때 소나무를 가져다 썼다. 오래 산다고 장수를 상징할 때도 썼다. 자연스레 우리 정신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문학작품에도 자주 등장했다. 윤선도는 '오우가'에서 물, 돌, 대, 달과 함께 다섯 벗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그가 하얀 눈과 함께 소나무를 배경으로 그린 세한도는 국보(제180호)로 지정돼 있다. 세조가 충성을 기려 벼슬을 내렸다는 정이품송도 소나무다. 애국가에도 소나무가 나온다.


소나무의 이파리는 두 개. 한 잎자루에 두 개의 잎이 들어 있다고, 예부터 부부의 금슬을 나타냈다. 무성한 솔잎은 집안의 번성과 다복을 상징했다. 꿈에 소나무가 보이면 좋은 일이 생기고, 만사형통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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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 숲에서 만나는 300살 된 소나무. 예부터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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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살 된 소나무. 나무의 키가 10m를 웃돌고, 가슴 높이 둘레가 1m를 넘는다. 주변 풍광까지 돋보이게 해주는 풍치목이다. ⓒ 이돈삼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분포돼 있는 나무가 소나무다. 국립산림과학원 통계에 의하면 단일수종으로 소나무가 우리나라 전체 산림에서 21.9%를 차지한다. 우리 환경에서 잘 자라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견딘 덕이다. 하지만 최근 솔잎혹파리, 소나무재선충이 빠르게 퍼지고 산불이 자주 나면서 소나무 면적이 갈수록 줄고 있다.


대신 참나무류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졸참, 갈참, 굴참, 신갈, 떡갈 등 참나무 종류가 전국 산림에서 24.2%를 차지하고 있다. 참나무류의 면적이 소나무류보다 더 많다. 키가 큰 참나무는 소나무보다 위에서 햇볕을 가려 소나무를 괴롭힌다. 갈수록 소나무는 줄고 참나무가 느는 또 하나의 이유다.


소나무는 우리말의 '솔', '수리'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으뜸, 우두머리의 뜻을 지녔다. 나무의 으뜸이 되는 소나무다. 요즘 보기 드문 소나무 숲이 지리산 자락에 있다.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에 있는 천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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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 수홍루. 천은사 계곡의 물이 흘러들어 모이는 저수지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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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 소나무 숲길. 요즘 보기 드문 소나무로 숲을 이루고 있다. 참 귀한 소나무 숲이고, 숲길이다. ⓒ 이돈삼

지난 9일 찾은 천은사. 소나무 숲이 천은사를 둘러싸고 있다. 천은사 주차장에서 절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난 숲길을 따라가서 만난다. 일주문 옆의 소나무 군락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소나무 숲길로 들어간다.


소나무 숲길도 단아하다. 숲길이 700∼800m 된다. 나무마다 저마다의 이야기도 품고 있다. 옛사람의 마음가짐으로 숲길을 걸으면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눌 수 있다. 소나무의 향이 몸과 마음까지 편안하게 해준다.


300살 된 소나무도 만난다. 나무의 키가 10m를 웃돈다. 가슴 높이 둘레도 1m가 넘는다. 사철 푸르고 수피가 붉은 소나무다. 주변 풍광까지 돋보이게 해주는 풍치목이다. 예부터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해마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 학부모들이 많이 찾아와 소원을 비는 나무다.


소나무숲이 품은 계곡도 있다. 천은사 계곡이다. 버들개지가 피고 있는 계곡은 봄기운을 잔뜩 머금고 있다. 계곡은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천은사 옆으로 흐른다. 계곡물은 구례 들녘을 적시고 섬진강으로 흘러 강물과 몸을 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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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기운을 머금은 천은사 계곡. 계곡의 물이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천은사로 흘러 내려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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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 계곡에서 피어난 버들강아지. 새봄의 기운을 가득 머금고 있다. ⓒ 이돈삼

소나무 숲이 감싸고 있는 천은사도 호젓하다.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의 3대 절집으로 꼽힌다. 재작년에 방영된 이병헌·김태리 주연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 배경으로도 나왔다.


천은사의 본디 이름은 감로사(甘露寺)였다. 신라 흥덕왕 때(828년) 인도의 승려 덕운이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려 때 번성했지만 임진왜란 등 병란을 겪으면서 불에 탔다. 이후 다시 짓고 고치면서 절 이름도 천은사로 바뀌었다. 절 이름과 엮이는 전설도 전해진다.


절집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났다. 사람들이 무서워했다. 한 스님이 용기를 내 구렁이를 잡아 죽였다. 이후 샘에서 물이 나지 않았다. 샘이 숨었다고, 절 이름을 천은사(泉隱寺)라 했다. 절 이름을 바꾼 뒤부터 불이 자주 났다. 사람들은 절의 수맥을 지켜주던 이무기가 죽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절집을 찾은 원교 이광사가 이 말을 전해 들었다. 이광사는 동국진체를 완성한 명필가다. 이광사는 그 자리에서 물이 흘러 떨어질 듯한 필체, 수체(水體)로 '지리산 천은사'를 썼다. 그 글씨를 일주문에 현판으로 내걸었더니 불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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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 일주문의 현판으로 걸린 지리산 천은사. 원교 이광사가 물이 흐르는 듯한 필체로 글씨를 써 불의 기운을 잦아들게 했다고 전해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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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로 지정돼 있는 천은사 극락보전 풍경. 천은사에는 극락보전을 포함해 모두 6점의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 이돈삼

천은사 일주문과 극락보전의 현판이 이광사의 글씨다. 극락보전도 보물로 지정돼 있다. 유려한 곡선의 기와지붕과 화려한 색채의 단청이 돋보이는 천은사의 주불전이다.


극락보전 안에 있는 삼장보살도, 부처가 대중에게 설법하는 모습이 담긴 후불탱화도 보물이다. 조선초기의 금속공예와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금동불감, 목조 관세음보살상, 초대형 괘불도 보물로 지정돼 있다.


절집으로 오가는 길에서 만나는 매화, 산수유꽃은 덤이다. 일찍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가 섬진강변과 지리산 자락을 화사하게 밝히고 있다. 산자락을 샛노랗게 물들일 산수유꽃도 하나씩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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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과 어우러진 천은사의 전각들. 코로나19의 영향인지, 절집을 찾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뜸하다. 지난 2월 9일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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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에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산수유꽃. 지난해 가을에 맺힌 열매와 어우러져 두 세대가 함께 살고 있다. ⓒ 이돈삼

이돈삼 기자(ds2032@korea.kr)

2020.02.2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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