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나, 몸치가 운동 중독자가 되다니

[라이프]by 오마이뉴스

달리기부터 필라테스까지... 운동에 도전해 온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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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선천적으로 운동신경이 없다. 엄청난 몸치. 그러나 안타깝게도 난 내 운동신경과 상관없이 몸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사지를 열심히 움직일 때의 느낌이 좋다. 팔과 다리를 앞뒤로 휙휙 움직이며 달리면 머릿속 가득했던 걱정과 고민이 내 손 끝, 발 끝에서 떨어져 날아간다. 스트레스로 머리 한쪽이 지끈거릴 때, 슬픔이 머리 끝까지 차올라 찰랑거릴 때 내 몸은 나에게 말한다.


"달려, 달려!"


달리면서 스트레스가 풀렸던 첫 기억은 고등학교 2학년때다. 난 짜증나고 화나고 슬픈 상태로 집밖으로 나왔다. 깜깜한 아파트 단지 사이를 달리며 기도를 했다. 내 슬픔은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고 나의 기도는 하늘로 올라가 닿는 듯 했다. 한참을 달리고 나니 힘이 났다.


슬플 때 가만히 있으면 슬픔이 나를 냠냠 먹어버려 나는 없어지고 커다란 슬픔만 덩그러니 남는다. 슬플 때 달리면 슬픔 이외의 다른 감정들이 생겨날 자리가 만들어진다. 숨이 가빠지고 땀이 나면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지가 생기고 갑자기 웃음이 나기도 한다. 슬픔이 견딜만해진다.


학교 다닐 때부터 달리기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난 100미터 달리기를 하면 항상 20초가 넘어서 들어오는 학생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았다. 선생님은 달릴 때의 내 동작을 아이들 앞에서 흉내내셨고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다.


그때는 달리는 것이 정말 싫었다. 달리기를 좋아하게 된 것은 혼자 달리면서이다. 경쟁에서 벗어나 달릴 때의 여러 감각을 온전히 느끼게 되면서 달리기가 좋아졌다. 달리기가 좋아진 이후, 난 여러 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몸이 둔한 나는 어떤 운동을 하게 되면 운동신경이 있는 사람보다 훨씬 더 강력한 쾌감을 느낀다. 운동신경이 있는 사람은 그냥 하는 동작도 몸치인 나는 '우아, 내가 이런 동작을 할 수 있다니!' 하고 감격한다. 그러나 감격을 느끼기까지는 선생님의 구박과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 의식, 나만 못한다는 열등감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운동을 배울 때마다 내 마음은 열등감과 쾌감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저울 바늘처럼 정신없이 움직였다. 어느 날은 열등감의 승리, 어느 날은 쾌감의 승리. 그러다가 열등감이 한계를 넘으면, '내가 왜 여기서 이런 수모를 받고 있어야 해? 그만 둬, 그만 둬.' 하고 쿨하게 포기했다. 그러나 난 자꾸 정신을 못차리고 또 다른 운동을 기웃거린다. 새로운 운동에 도전할 때마다 꼭 내가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회사 동료들과 함께 한 요가는 선생님이 하시는 동작을 제대로 따라할 수가 없어서 그만 두었고 무한도전을 보고 찾아간 스포츠 댄스 학원에서는 자꾸 동작을 틀려 파트너에게 미안해 그만두었다. 나에게 스케이트를 가르쳐 주던 소개팅남은 어느새 연락 두절. 볼링은 자꾸 팀 점수를 깎아 먹는 민폐를 끼쳐서 이제 절대 하지 않고 포켓볼도 동아리 오빠에게 핀잔 받은 후로 치지 않는다.


또 다른 운동을 찾고 있던 나에게 한 친구가 말했다. "수영을 하면 다른 세상이 열려." 그래? 나도 그 세상을 알고 싶었다. 난 몸치이므로 1:1 수영 강습을 신청했다. 1:1 강습이니 비교할 사람이 없어 좋았다. 나는 두 달이 넘는 시간이 걸리긴 했으나 어설프게나마 자유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몸에 힘을 빼고 물 위에 엎드려 발차기를 한다. 왼손을 돌리며 천천히 코로 '음~' 하며 숨을 내쉬고 오른손을 돌리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들어 '파하~' 하며 입으로 숨을 들이마신다. 내 몸이 앞으로 간다. 우아, 신난다! 새로운 소리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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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이 넘는 시간이 걸리긴 했으나 어설프게나마 자유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Pixabay

물 속에서 보글보글 내 숨이 나가는 소리와 '파하!' 하고 공기가 내 몸으로 거칠게 들어오는 소리. 처음에는 수영을 하고 나면 기진맥진했는데, 조금 익숙해지니 수영을 해야 기운이 났다. 감기에 걸리거나 생리를 할 때면 수영장에 가지 못한다는 생각에 우울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매일 새벽마다 연습을 하는데도 숨이 차서 레인 끝까지 갈 수가 없다.


"선생님, 숨이 너무 차는데요."

"원래 숨이 차는 거예요. 달리기 할때도 숨이 차잖아요."


뭔가 찝찝하다. 이번엔 배영. 자꾸 가라앉고 발차기를 해도 제자리다.


"여자들은 90% 이상이 물에 누우면 뜨는데, 신기하네요."


뭐가 신기해. 내가 나머지 10%인 거지. 선생님의 구박을 이기고 처음 누워서 물 위에 떴을 때는 나도 모르게 '하하하하' 큰 웃음이 났다. 선생님이 급히 와 주위를 둘러보며 '쉿, 쉿' 하는 바람에 웃음을 멈추긴 했지만 정말 기뻤다.


선생님은 희안하게 내가 자유영을 다 마스터 하지도 않았는데 배영 진도를 나가고 배영도 잘 못하는데 평영 진도를 나갔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후딱후딱 진도를 나가서 날 빨리 떼어내고 싶은 건가.' 하이라이트는 접영. 동작이 전혀 되지 않는다. 선생님도 지치고 나도 지쳤다. 새해가 될 무렵 선생님은 나에게 물었다.


"계속 배우실 거예요?"


내가 선생님을 빤히 보자 선생님은 자기가 사정이 생겨서 가르칠 수 없다며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래, 어짜피 겨울에 일어나기 힘들어서 나도 그만 둘 참이었어. 어쨌든 난 처음으로 한 운동을 8개월 동안 지속했다. 조금이나마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물 속에서 몸을 움직이는 쾌감을 느꼈다. 나는 이제 달리기 말고 수영도 할 수 있다!


수영을 그만둔 후 필라테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남편은 나에게 운동하는데 돈 좀 그만 쓰라며 운동 중독자라고 했다. 어머나, 몸치가 운동 중독자가 되다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장족의 발전이다.


TV에서 군대의 체력훈련이나 '미운우리새끼'에서 김종국이 운동하는 장면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몸이 들썩인다. 옆에서 같이 TV 보던 남편이 눈치채고 "지금 운동하고 싶지?" 하고 묻는다. 난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을 잡아달라고 한 후, 윗몸 일으키기를 시작한다.


김지은 기자(whitekje@naver.com)

2020.03.0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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