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동시에 사랑한다고" 불륜남의 항변, 이건 틀렸다

[컬처]by 오마이뉴스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이태오

"완벽했다."

가족, 결혼, 사랑에 대해 많은 질문들을 던지고 있는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드라마는 지선우(김희애 분)의 이 단순한 독백으로 시작한다. 탄탄대로 이어지던 의사의 길, 경제적 여유와 화목한 가정. 빈틈없는 그녀의 삶은 남편 이태오(박해준 분)의 외도로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의아했던 건 이 '완벽한' 삶을 선우만 살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태오 역시 단란한 가정에서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로 만족스런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도 태오는 외도를 멈추지 못한다. 그가 사랑한다고 믿는 파트너들의 삶이 무너져 내리는 것도, 외도가 자신의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전혀 통찰하지 못한 채 말이다.


주변 인물들의 걱정에도 그는 오히려 "미치겠는 건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한다는 거야"라며 항변할 뿐이다. 부족한 것 없이 행복한 가정을 꾸린 태오는 도대체 왜 바람을 피우는 걸까?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한다는 태오의 항변은 과연 타당한 걸까?

외도에 끌리는 심리적 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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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가정을 꾸린 태오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외도를 한다. ⓒ JTBC

최근까지만 해도 많은 심리학자들은 외도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았다. 부부관계가 만족스럽지 않거나, 상대방이나 그 가족들을 둘러싼 갈등, 경제적 문제 등 결혼생활의 문제가 있을때만 외도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도와 관련된 부부 문제를 10년 넘게 연구해온 심리치료사 에스터 페렐은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에서 '행복한 사람들도 외도를 한다'고 단정 짓는다. 그녀는 외도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것은, 피해자에게 원인을 제공했다는 책임을 전가하고, 외도 당사자의 심리내적인 문제를 간과하는 편의주의적인 사고라며, 행복한 사람이 외도를 하는 원인을 파헤쳤다.


그녀는 행복한 사람들이 외도를 할 때 매료되는 대상은 자신이 사랑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 중 만족스런 일상을 살고 있으면서도 외도를 했던 내담자들은 대부분 외도의 경험을 '자기만족'으로 묘사했다. 즉, 새로운 사랑을 느끼고 즐기는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외도가 주변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외도를 통해 느끼는 짜릿함과 즐거움, 이를 누리는 자신의 매력에 푹 빠질 뿐이다.


드라마 속 태오 역시 그렇다. 태오는 3회 "대체 어쩔꺼냐"고 묻는 명숙(채국희 분)에게 "걔랑 있으면 내가 살아 있는 거 같아. 창작자로서 막 영감이 떠올라. 애틋하고 소중하지"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외도 경험에는 상대방의 매력이나, 파트너를 위하는 마음은 빠져있다. 오직 자신이 느끼는 기쁨을 이야기할 뿐이다. 이렇게 시선이 자기 자신에게만 향해있는 태오는 임신까지 한 다경(한소희 분)을 배려하지도, 선우가 받게 될 상처를 예측하지도 못한다. 그는 '사랑하는' 파트너들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즐겁게 하려 애쓸 뿐이다.


페렐은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들은 관습이나 규칙을 중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나르시시즘은 과대자기를 낳고, 이는 세상의 어떤 제약도 자신을 침범하지 못할 것이라 여기게 만든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불륜이 사회적 금기라는 사실쯤은 가볍게 무시한다. 별다른 죄책감도 없이 이중생활을 유지하며, 이를 즐기는 자기 자신을 사랑할 뿐이다. 딱 태오의 모습이다. 자신의 행위에 아무런 죄책감도 책임감도 느끼지 못하는 그는 그저 두 여자가 떠날까봐 전전긍긍하며 두 파트너로부터 얻는 기쁨을 잃을까봐 불안해 할 뿐이다.

남자의 외도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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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세계>속 사회는 현실보다도 더 남성중심적이다. ⓒ JTBC

그렇다면 이렇게 관계를 통해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고픈 사람들이 모두 외도를 택할까? 그건 아니다. 외도를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이런 욕망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억제시킨다. 그런데 태오가 살고 있는 드라마 속 세상은 어떤가. 드라마가 보여주는 세상은 무척이나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이다.


<부부의 세계>의 남성들은 폭력에 가까운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2회 태오의 생일잔치 날 제혁(김영민 분)은 자신의 와이프 앞에서 "어떻게 평생 한 사람 하고만 하냐"며 태연하게 남성의 외도를 옹호한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인사들 중 제혁의 이 무례한 발언을 막아서는 이는 없었다. 이들은 오히려 여성을 대상화하는 성적인 농담들을 즐긴다. 자신의 아내마저 성적 대상화하고, 평등한 관계를 맺을 줄 모르는 남자들이 득실대는 <부부의 세계>. 현실보다도 가부장적인 드라마 속 사회 분위기는 태오가 외도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제공했을 것이다.


가부장적 사고에 갇혀있긴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선우의 환자로 왔다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한 중년여성은 잠시 분노하지만 곧 다시 선우를 찾아와 "그깟 여자랑 한 번 놀아난 거 용서하고 말고 할게 뭐 있겠어요. 남자한테 섹스는 배설 같은 거잖아요" 라며 비밀을 지켜달라고 호소한다(4화). 아들의 외도를 알고 있었던 선우의 시어머니는 선우에게 "너만 안 흔들리면 돼. 한 번 실수 용서하고 품어주면 지나갈 일이야"라며 조언한다(3화). 자신 역시 외도하는 남편 때문에 고생한 그녀는 "평생 아비없는 자식으로 가슴에 피멍든 내 아들"이라며 태오를 두둔한다. 그녀의 이런 태도는 태오의 자기중심성을 키웠을 것이다. 또한 만연해 있는 남성성에 대한 편견은 외도를 타당화했을 것이다.


선우의 친구이자 산부인과 의사인 명숙의 대사도 뼈아팠다. 이혼한 어머니에게서 자란 명숙은 괴로워하는 선우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혼녀로 사는 게 얼마나 치사한 일인지 너 잘 모르지? 아무리 태오가 잘못했고 니가 당당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돌아서서 손가락질 할 거야. 어디가 모자라서 이혼했냐 밤마다 남자 불러대는 건 아닐까." (3화)

귀책사유가 명백해도 이혼이라는 단어 앞에 여성이 더 불리해지는 현실을 잘 보여주는 대사였다. 외도로 인해 상처받은 여성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이혼마저 남성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사회. 이런 세상에서 나르시시즘에 빠진 태오가 외도에 죄책감을 가질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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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둘을 모두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상 그가 사랑하는 건 '자기 자신' 뿐이다. ⓒ JTBC

그렇다면 태오는 정말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한 걸까? 대표적인 사랑에 대한 심리학 이론인 스턴버그의 사랑의 삼각형 모형에 따르면, 진정한 사랑은 친밀감, 열정, 헌신의 세 가지 요소가 균형 잡혀 있을 때를 말한다. 여기서 친밀감이란 사랑하는 관계에서 가까움과 연결감, 유대감을 느끼는 것, 열정은 신체적 혹은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것을, 헌신은 특정한 사람을 사랑하겠다는 결심 그리고 그 사랑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뜻한다. 스턴버그는 완전한 사랑은 이 세 가지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형태라 강조했다.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를 쓴 정신분석의 한성희도 사랑에 있어 '의지'를 중요시한다. '사랑에 빠지는' 첫 번째 단계 이후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투사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결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최종적으로 완전한 신뢰감으로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끼는 '사랑이 머무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의 저자 스콧 펫 박사 역시 "사랑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자신을 확장하려는 의지"라고 썼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태오의 사랑에는 '헌신'과 '의지'가 배제되어 있다. 친밀감과 열정만 있는 이런 사랑은 '사랑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랑에 빠지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서로의 성장을 촉진하기는커녕, 자기 중심성을 키우고 때로는 파괴적 결과를 낳는다. 한 사람에게 '헌신'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함께 '성장'에 이르는 진짜 사랑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동시에 두 여자를 모두 사랑한다"는 태오의 항변은 틀렸다. 그는 상대방을 사랑한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느낌의 두 가지 사랑에 빠진 자신의 상태를 즐겼을 뿐이다.


태오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선우의 독한 눈빛과 이에 연대하는 현서(심은우 분)의 자세를 봤을 때 아마도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태오가 받게 될 이 대가는 어쩌면 나르시시즘에 빠진 그에게 꼭 필요한 약이 될지도 모른다. 이들의 복수를 통해 태오가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면, 태오만큼 자기중심적으로 여성을 대상화하는 드라마 속 남성들이 반성하게 된다면, 이들의 복수는 쓰지만 몸에 좋은 약이 될 것이다. 부디 태오가 이 쓴 약을 달게 받고, 나르시시즘에서 빠져나와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럴 때 그는 비로소 '진짜' 사랑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송주연 기자(serene_joo@naver.com)

2020.04.1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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