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김희애가 연하남과 연주한 이 곡

[컬처]by 오마이뉴스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에 담긴 슬픈 사랑 이야기


요즘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남편의 불륜에 고상하면서도 냉정한 사이다를 안겨주고 있는 배우 김희애의 연기가 화제인데요. 그런 김희애가 <부부의 세계>와 정반대의 입장에서 열연을 펼쳤던 2014년 드라마 <밀회>를 기억하시나요?


음대 피아노 교수의 부인이자 예술재단 기획 실장(김희애)이 남편의 피아노 제자(유아인)이자 젊은 천재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인데요. 마치 '금단의 사과'를 손에 쥐고 있는 듯 서로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아슬하게 그리고 있는 장면들이 생각나시는지요. 특히 유아인과 김희애가 한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연주하는 장면으로 크게 주목받은 클래식 곡을 많이 떠올리실 텐데요.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곡이 바로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입니다.

드라마 '밀회'의 테마 곡으로도 계속 등장하던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은 현악기나 관악기 등의 앙상블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마력을 지닌 네 손을 위한 작품의 특성을 온전하게 보여주고 있는 매우 서정적이고 슬픈 멜로디의 곡입니다. 슈베르트가 그의 허락되지 않은 슬픈 사랑, 이루지 못한 사랑의 모습을 가장 슈베르트답게 표현한 작품이 바로 이 '네 손을 위한 환상곡'인데요. 이 곡에 얽힌 슈베르트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소심한 음악가 슈베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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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앞의 슈베르트(구스타프 클림트, 1899. ) ⓒ 위키피아

'가곡의 왕'이란 별명을 가진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는 31세의 짧은 삶을 살았음에도 700여 곡의 가곡을 포함한 수많은 명곡들을 작곡한 음악가입니다.


그는 가곡뿐만 아니라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String Quartet in d minor, D.810),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Arpeggione Sonata for Cello & Piano in a minor, D.821), 미완성 교향곡 (Symphony No.8 in b minor, D.759 'Unvollendete')과 같은 많은 작품들을 후세에 남겼는데요.


특히 가곡 '송어 (Die Forelle, D.550)'는 슈베르트가 직접 피아노 오중주로 편곡할 정도로 애정을 가졌던 곡으로 현재까지도 가곡, 피아노 오중주 모두 사랑받고 있는 슈베르트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슈베르트가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둔 원인을 놓고 '매독이다, 장티푸스다, 식중독이다' 등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그중에서 매독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사망설입니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보수적인 사회에 반항하던 젊은 예술가 그룹이자 슈베르트의 음악을 사랑하고 세상에 알리고 싶어한 슈베르트 친구들의 모임은 '슈베르티아데 (Schubertiade)'였습니다. 친구들은 매일밤 하우스 콘서트를 열어 슈베르트의 연주를 감상하고 춤을 추고 예술에 대한 토론을 벌이곤 하였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시인이었던 '프란츠 쇼버(Franz Adolf Friedrich Schober, 1796-1882)'의 집에서 시작된 이 슈베르트의 추종자들의 모임은 '슈베르티아드 (Schubertiad)'라고도 불렸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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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티아데(모리츠 폰 슈빈트,1868) ⓒ 위키미디어 커먼스

당시 활발한 예술 활동을 하던 화가 '레오폴트 쿠펠비젤', 바리톤 '요한 미하엘 포글'과 같은 예술가뿐만 아니라 '안톤 프라이헤르 폰 도블호프디어', '요제프 폰 슈파운'과 같은 젊은 정치가들도 함께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과 술을 사랑하였던 자유로운 영혼 슈베르트는 '슈베르티아데'를 통하여 폭넓게 알게 된 친구들과 함께 사창가를 출입하게 됩니다. 특히 시인이었던 프란츠 쇼버와 함께 문란한 생활에 빠지게 된 슈베르트는 매독에 걸려 합병증으로 고생한 일화는 매우 잘 알려져 있습니다.


'슈베르트가 사창가를 기웃거렸다'는 사실에 조금 놀랄 수도 있는데요. 평소 부끄러움이 매우 많았던 슈베르트의 모습과는 또 다른 면모라 더 그럴 것입니다. '슈베르트가 부끄러움이 많은 게 정말 사실일까?'란 의구심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슈베르트가 아주 소심한 성격이었다는 점은 자신이 평소에 존경해오던 베토벤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는 순간에도 드러납니다. 베토벤이 사망하기 일주일 전,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처음으로 방문합니다.


슈베르트의 악보를 보고 감탄한 베토벤은 "슈베르트, 그대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좋았을텐데, 내 숨은 꺼져가고 있어. 슈베르트 자네는 세상을 빛내는 위대한 음악가가 될 것이야!"라고 극찬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슈베르트는 병이 들어 말 한 마디조차 고통스럽게 뱉어내는 베토벤의 모습을 보고 괴로워하였습니다. 또 듣지 못하는 베토벤이 필담을 요구하였음에도 그러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는 자신의 소심한 성격 때문에 평소 존경하는 음악가가 왕성한 활동을 하고 건강했을 때 용기를 내서 미리 찾아 오지 못했다는 사실에 괴로워서 일찌감치 자리를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베토벤이 죽은 뒤 장례에 참석하여 관지기를 자처하였던 슈베르트는 그를 따라가듯 1년이 지난 1828년 사망하였습니다. 이에 슈베르트의 형 '이그나츠 슈베르트(Ignaz Schubert, 1785-1844)'는 베토벤을 존경하던 슈베르트를 위해 베토벤의 무덤 바로 옆에 슈베르트의 유해를 안치하였습니다.


1827년, 자신이 사망하기 1년 전까지 피아노도 없이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대로 900곡이 넘는 작품을 작곡을 하였던 천재 작곡가 슈베르트. 아마 그가 10년만 더 살았다면 클래식 음악사는 또 다른 길로 흘러갔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필자 역시 2014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위치한 슈베르트의 탄생 생가에서 슈베르트의 작품들만을 가지고 독주회를 가진 적이 있는데요. 남겨진 슈베르트의 작품들만으로도 충분히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독주회를 가질 수 있었지만, 만약 슈베르트가 조금 더 오래 살며 더 많은 작품들을 남겼더라면 더 많은 아름다운 작품들을 관객들에게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란 아쉬움이 남기도 했습니다.

슈베르트가 첫사랑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그는 짧은 삶을 사는 동안 사랑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양성애자였을 것이다'와 같은 오해를 지금까지도 받고 있는 슈베르트는 사실 소프라노였던 '테레제 그로브(Therese Grob, 1798-1875)'와 첫사랑에 빠져 '들장미 (Heidenroeslein, D.257)'와 같은 가곡을 헌정하고 18세가 되던 1815년, 테레제에게 청혼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테레제와 5년에 가까운 사랑을 이어갔으나 결국 두 사람은 테레제 가족들의 반대로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첫사랑의 실패가 슈베르트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는데요. 이때부터 슈베르트는 프란츠 쇼버의 집에 머물며 '슈베르티아데' 모임을 만들고, 한 사람을 온전하게 사랑하기보다는 음악과 예술 속에서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슈베르트 앞에 '캐롤라인 에스터하지(Caroline Esterhazy, 1805-1851)'라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헝가리 귀족 가문 출신의 여성 캐롤라인은 1818년, 13살의 나이였을 때 음악 레슨을 받았던 슈베르트의 제자였는데요. 당시 슈베르트는 '안정된 삶을 보장해줘야만 딸과의 결혼을 허락하겠다'는 테레제의 부모를 설득하기 위해 당시 비엔나의 부호이자 음악애호가였던 에스터하지 백작의 딸들의 피아노 레슨 제의를 수락하였고, 그렇게 캐롤라인을 만나게 되었죠.


그러나 당시 테레제와의 결혼을 꿈꾸고 있던 슈베르트에게 돌아온 것은 테레제의 결혼 소식이었습니다. 그 때문이었을까요? 목적을 잃은 슈베르트는 에스터하지 백작 딸들의 음악 수업 역시 4개월 만에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짧은 기간, 사제 지간의 연을 맺었던 캐롤라인은 6년의 시간이 흐른 1824년, 다시 슈베르트에게 찾아와 음악 수업을 받게 됩니다. 처음 레슨 때는 그저 어린 소녀에 불과하였던 캐롤라인이 19세의 아름다운 아가씨가 되어 슈베르트의 앞에 다시 나타나게 된 거죠.


캐롤라인은 슈베르트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신분의 차이로 첫사랑의 상처를 지니고 있던 슈베르트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캐롤라인의 고백에 섣불리 답하지 못합니다. 결국 슈베르트는 캐롤라인을 사랑하지만 이별을 고하는 편지를 남기고 그녀를 떠나고 말죠. 슈베르트의 사랑을 얻지 못한 캐롤라인은 당시 귀족 가문의 여성으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독신의 삶을 이어갑니다. 그러다가 슈베르트가 사망하고 16년이 흐른 1844년, 39세의 나이에 판사였던 '칼 그라프 폴리엇'과 결혼을 합니다. 그후 몇 개월 만에 파혼을 하고 평생 홀로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슈베르트가 캐롤라인을 테레제보다 먼저 만났더라면 그들의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엘가나 바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처럼 클래식 음악사를 대표하는 공처가 음악가가 되진 않았을까요?

이루지 못한 사랑은 가고, 음악만 남았네

캐롤라인에게 이별을 고한 슈베르트 역시 평생 자신이 이루지 못한 사랑을 가슴에 품은 채 남은 삶을 살아갔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슈베르트의 애틋한 마음이 잘 담겨진 작품이 바로 슈베르트가 사망하던 해인 1828년에 작곡한 '네 손을 위한 환상곡 작품번호 940번(Fantasy for four hands in f minor, D.940)'입니다.


보통의 작곡가들이 피아노 레슨을 위하거나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연주하기 위하여 피아노에 나란히 앉아 함께 연주하는 연탄곡을 작곡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슈베르트 역시 언젠가 캐롤라인과 함께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을 꿈꾸며 작곡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 피아노에 앉은 두 연주자가 서로 살짝 스치거나 겹치도록 작곡된 '네 손을 위한 환상곡'은 '알레그로 몰토 모데라토(Allegro molto Moderato)', '라르고(Largo)', '알레그로 비바체(Allegro Vivace)', '알레그로 몰토 모데라토(Allegro molto moderato)', 이렇게 4개의 악장으로 이루져 있습니다.


슈베르트는 애처롭고 안타까운 금지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네 손을 위한 환상곡'을 1828년 1월에 쓰기 시작하여 4월에 완성하고 5월에 초연하며 캐롤라인에게 헌정하였습니다. 그리고 6개월 뒤 세상을 떠나고 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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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과 김희애가 한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연주하는 장면으로 크게 주목받은 클래식 곡,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 ⓒ JTBC

슈베르트가 '나의 마지막 사랑이자 평생의 사랑'이라 칭송하였던 캐롤라인은 그녀가 숨을 거둘 때까지 '네 손을 위한 환상곡'을 소중하게 간직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네 손을 위한 작품들은 2대의 악기로 연주하는 '듀오'나 각자의 피아노에 따로 앉아 연주하는 '2대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각자의 악기로 컨트롤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악기를 역할을 분담하여 배려도 하고 살짝 선을 넘기도 하면서 서로의 호흡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느낄 수 있는 편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박소현 기자 tschiny@naver.com

2020.05.0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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