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없는 학교로 출퇴근, 매일 이런 풍경을 봅니다

[여행]by 오마이뉴스

전주-완주 자전거 통근 하이킹...

아이들 만나 들려주고픈 자연의 순간들


나는 공립 중등 교사이다. 한 지역에서의 근무는 6년을 넘을 수 없기에(특수한 상황에서는 연장이 가능) 주기적으로 전북 도내에서 전보를 다닌다. 5년 동안 5km 정도 떨어진 매우 가까운 곳에서 근무를 하다가 올해 3월 1일 완주군 고산면으로 전근을 왔다.


2월 인수인계 기간부터 나의 첫 번째 관심사는 단연 학교의 교육과정이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출퇴근 경로에 대해 탐방을 하기 시작했다. 가장 짧은 경로를 찾기도 했지만 차도를 지나지 않는 자전거 길의 연결 상황을 직접 견학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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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팝나무꽃과 자전거길. (C200) 차량 및 보행자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 이른 아침의 천변길 ⓒ 안사을

자전거에 본격적으로 애정을 쏟은 것은 3년 전 전주 근무 시절부터였다. 학생안전인권부장으로 근무하면서 전주시와 연계를 맺어 자전거시범학교를 운영했다. 학생들과 함께 자전거대행진 행사도 함께하고 개인적으로 자전거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현재도 전주는 '지속가능한 생태도시'를 위해 자전거관련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으며 다양한 계층의 크고 작은 반대를 겪기도 하지만 기본 방향에 대한 설문에 89.5%가 찬성하는 응답을 했다(2018년 10월 오마이뉴스 김길중 시민기자 설문조사 결과 보기).


완주군도 적극적으로 자전거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완주는 전주를 둘러싸고 있는 만큼 많은 자전거도로가 두 지역을 연결하고 있다. 필자가 출퇴근로로 주로 이용하는 곳은 전주천-만경강-고산천이 연결된 길, 혹은 아중천-소양천-만경강-고산천이 연결된 길이다.


집 앞에서 근무처까지 500m 정도를 빼면 차가 다니지 않는 자전거 전용길이기 때문에 매우 안전하고 여유롭게 자전거를 탈 수 있다. 대신 찻길보다 경로가 길다. 차로는 21km이지만 천변 자전거 길을 연결하면 28km가 된다.

학생 없는 학교로 매연 없는 출근

매일 자전거로 왕복하지는 않는다. 힘들다기보다는 지루할 때가 있고, 업무에 지장이 있기도 하다. 목표는 딱 절반이다. 출근을 자전거로 하면 퇴근은 차로 하고, 다음 날은 차로 출근 후 자전거로 퇴근하는 방식이다. 근무지에서도 차가 필요할 때가 있는데, 차로 출근하는 날 차량이 필요한 업무를 집중해서 배치하면 편하다.


코로나19로 인해 두 달이 넘도록 학생 없는 학교가 계속되고 있다. 건국 이래 최초의 상황이다. 학교 현장은 그야말로 긴장스러운 '스탠바이 상태'이다. 특히 3월부터 4월 초반까지는 매주 바뀌는 지침으로 인해 하루 걸러 한 번씩 교무회의가 열렸다.


모 드라마에서 '보고있어도 보고싶은'이라는 역설적인 제목의 구수한 노래가 나온 적이 있다. 지금 나의 상황은 그와 반대이면서도 역설적이라는 것은 비슷하다. 알지도 못하는 학생들을 그리워하는 신기한 감정을 겪고 있는 것이다.


매일 학급 학생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단톡(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공지 및 근황을 나누면서 자전거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 한다. 실내에서 하는 맨손운동을 권유하면서 하는 얘기다. 우리반 아이들은 담임교사의 출퇴근 하이킹에 대해, 대단하다는 반응과 함께 약간의 동기를 얻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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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강 반영. (C200) 3월 중순의 아침 만경강(고산천) 풍경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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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강변. (C200) 4~6도의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강변을 달리면 황홀하기까지 하다. ⓒ 안사을

계절의 변화를 온 몸으로 느꼈다. 두 달 동안 목련이 피었다 졌고 조팝나무꽃이 튀밥처럼 피어올랐다. 개나리와 벚꽃이 동시에 피는 것이 꽤나 드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두 꽃이 함께 피어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마치 만나기 힘든 연인이 간신히 만나게 된 광경을 보는 것처럼 애틋하기도 했다.


만경강은 새도 참 많다. 흔히 볼 수 있는 종이긴 하지만 이른 아침 잔잔한 물 위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노니는 새들을 보자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스민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자전거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수십마리의 새들이 좀 더 먼 곳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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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과 하늘. (C200) 하얀 목련과 파란 하늘의 대비가 싱그럽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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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과 개나리. (RDP3) 벚꽃과 개나리가 나란히 피어있고 멀리 조팝나무꽃도 보인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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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물 그림자를 흐리었는가. (RDP3) 물에 반영된 나무를 찍으려 서둘러 카메라를 꺼냈는데 그새 오리 두 마리가 수면에 낙서를 했다. 항상 예상치 않은 행동을 하지만 그 모습조차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같다. ⓒ 안사을

같은 길, 다른 색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침의 길과 같지만 풍경은 전혀 다르다. 방향상 조석으로 역광을 바라보고 진행하는 것은 같은데 그 색채가 다르다. 출근 때보다 시간적 여유도 더 많아서 사진을 담기에 참 좋은 시간이다. 날이 좋을 때는 10분이 멀다하고 자전거를 멈추고 카메라 가방을 뒤적인 적도 있었다.


도심을 통과하는 길에도 자전거 길은 있다. 하지만 자동차 매연 때문에 오히려 건강이 더 나빠지는 느낌이 든다. 지나가는 행인에게는 자전거가 흉기일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도 하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천변길을 택하는 이유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풍경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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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벚꽃과 자전거. (RDP3)오후 5시 이후 남쪽으로 진행하면 따스한 햇살이 오른쪽 뺨을 간질인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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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와 석양. (RDP3) 평야지대를 지나는 만경강은 산간지방보다 저녁 빛이 진하다. ⓒ 안사을

아래 두 사진 중 첫 번째 것은 저녁무렵 자전거 길과 이팝나무꽃을 한 필름 위에 동시에 기록한 '다중노출' 사진이다. 요즘에는 이미지 프로그램으로 합성하여 간단하게 만들 수 있지만 필름으로 찍는 과정에서는 되도록 디지털 작업을 지양하고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한 컷을 찍고 필름을 이송하지 않은 채 같은 면에 또 다른 컷을 찍으면 된다.


가끔 정말 운이 좋으면 환상적인 빛내림도 만날 수 있다. 날씨가 맑은 와중 해를 가려줄 수 있는 굵은 구름이 적당히 있어야 가능하다. 두 번째 사진은 회포대교 위에서 저녁 빛내림을 찍은 것이다. 필름이 딱 떨어진 뒤였지만 이런 순간이 흔치 않아 급한 대로 휴대폰으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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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꽃. (RDP3> 다중노출. 석양빛을 해치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하얀 꽃을 택했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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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강과 빛내림. (휴대폰) 회포대교 위에서 ⓒ 안사을

오전과 오후의 빛이 서로 다르고 각자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가장 벅차는 날은 이슬이 촘촘하게 맺힌 아침이다. 일교차가 큰 날이 연속되면 그런 풍경이 만들어진다. 더구나 진행방향 중 3분의 2가 역광을 보고 가기 때문에 수억 개의 물방울들이 나를 향해 반짝인다. 그럴 때면 자전거에서 내려, 바닥에 배를 깔고 접사렌즈를 가까이 들이댄다.


하루빨리 안전한 날이 되어 학생들을 만나고 싶다. 아마도 새롭게 만나는 학생들은 아래의 사진처럼 초록의 모습일 것이다. 바라기는,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이 아름다운 길을 계절별로 탐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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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과 이슬. (RDP3) 역광으로 들어오는 빛이 이슬방울을 영롱하게 밝혀주고 있다. ⓒ 안사을

이 기사의 사진은 모두 네거티브 및 포지티브 필름을 이용해 촬영 후 직접 스캔했으며 사이즈 조정 등 기본적인 보정만 했음을 밝힙니다. 괄호 안에 필름의 명칭을 표기했습니다.


안사을 기자(tkdmf41@naver.com)

2020.05.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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