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비가 보인 유쾌한 반응, '1일 1깡 시대' 만들다

[컬처]by 오마이뉴스

실패한 노래, 밈 시대의 '성공한 놀이터'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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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6일 방송된 MBC 에 출연한 가수 비의 모습. ⓒ MBC

언젠가 2020년 대한민국의 인터넷 문화를 기억할 때, 비의 노래 '깡'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2017년 12월, 비의 가수 복귀작이었던 '깡'은 발매 당시 결코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던 곡이다. 트랩과 힙합, 알앤비를 합친 편곡은 조악했으며, 힙합의 자기 과시적 문법을 '그대로' 빌려온 가사 역시 우스꽝스러웠다. 뮤직비디오와 안무 역시 혹평을 받았다. 비는 차트 진입 실패라는 결과를 받아 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이 노래와 뮤직비디오에서 '재미'를 발견했다. 가사, 안무가 유머 코드로 소비되는 것은 기본이었다. 비가 무대에서 짓는 표정은 '꾸러기같은 표정'이라고 불렸다. '깡'뿐 아니라 '차에 타봐'와 '어디 가요 오빠' 등 비의 다른 노래들 역시 유희 거리가 되었다. '30 Sexy', 'La Song', 'Rainism' 등 비의 노래를 주로 작곡 해 온 작곡가 배진렬 역시 '사회생활 잘하는 작곡가'라는 별명을 얻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댓글 문화에 이어 파생되는 영상도 많았다. 여고생 유튜버 '호박전시현'은 '깡'의 퍼포먼스를 익살스럽게 흉내냈고, 비의 제자인 엠블랙의 멤버들도 비의 노래에 대한 리액션 영상을 공개했다. '깡'을 소비하는 네티즌들은 스스로를 '깡팸'으로 정체화했다. '1일 1깡(하루에 한 번 '깡'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은 기본적인 의식이 되었다. 공통의 유머 코드를 공유하는 이들은 하나의 '재미 공동체'를 형성한 셈이다.


MBC < 놀면 뭐하니 >는 현재 혼성 댄스 그룹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여름을 맞아 90년대의 분위기를 재현할 수 있는 댄스 그룹을 만들겠다는 것. 춤을 좋아하는 메인 진행자 유재석이 이효리 등 시대를 풍미한 댄스 아이콘들을 만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16일 방송분에서 유재석은 비를 만났다. 유재석이 비를 만나는 예고편 영상이 공개되자, 이 영상은 다시 한 번 인터넷 공간을 흔들어 놓았다. '깡'이 거대한 유머 코드가 된 상황에서, 당사자인 비가 '깡'을 직접 언급한다는 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 들여졌기 때문이다. 비는 '깡팸'들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1일 1깡으로는 부족하다. 3깡은 해야 하지 않느냐'고 스스로 입을 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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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6일 방송된 MBC 에 출연한 가수 비의 모습. ⓒ MBC

유재석이 "요즘 분들이 보기엔 그 춤이 신기했던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운을 떼자, 비는 "신기했던 것이 아니라 별로였던 것이다"라고 답했다. 비는 오히려 예능 프로보다 댓글을 읽는 것이 더 재미있다며, 함께 '깡'의 댓글들을 함께 읽었다. '입술을 깨물지 말라'는 팬의 댓글에 '안 하도록 노력해보겠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한편 비는 이날 방송분에서 '깡'의 안무 뿐 아니라, 'Rainism', '널 붙잡을 노래' 등 과거의 히트곡 안무를 선보였다. 40대에 가까워졌지만, 자신이 건재한 댄스 가수라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실패한 노래, 그러나 성공한 놀이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은 1995년 < HIStory > 앨범을 발표했다. 'History'의 뮤직비디오에서 마이클 잭슨은 개선장군처럼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등장하며, 앨범 재킷과 뮤직비디오에는 거대한 마이클 잭슨의 동상이 함께 등장한다. 완전히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겠지만, 전성기의 비 역시 마이클 잭슨처럼 스스로를 우상화하는 전략을 취하곤 했다(비 역시 마이클 잭슨을 롤모델로 삼았던 솔로 가수 중 한 명이다. 그는 2009년 아시아 투어 당시 마이클 잭슨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Billie Jean' 퍼포먼스를 재현하기도 했다).


'월드 스타'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이후 발표한 4집 < Rain's World >(2006)에서는 사랑과 평화의 전령으로 연기했고, 'Rainism'에서는 자신의 이름에 '주의'를 붙이는, 다소 나르시시즘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전략은 유효하지 않다. 군 제대와 함께 전성기를 지나 보낸 비는 다른 전략을 꾀하기 시작했다. 6년 전, 'LA SONG'의 후렴구가 트로트 가수 태진아의 목소리 같다는 반응을 접하고, 직접 태진아를 무대 위로 무대 위로 부르는 식으로 응수한 것이 대표적 예다.


'깡'은 'LA SONG'보다 경우가 더 심했다. 대중음악으로서 철저한 실패였다. 음악적인 인정도 받지 못했고, 상업적인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지금의 인기 역시 '멋지다'는 반응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이 과거에 두고 온 것들이 밈(meme)이 되는 상황을 유쾌하게 받아들이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자신의 노래를 가지고 '많이 놀아줬으면 좋겠다'고 반응했다. 이것은 전략적으로도 더 좋은 선택이다. 소위 '월드 스타'의 자존심보다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함께 즐기는 법을 택한 것이다. 2000년대 톱스타의 '실패한 노래'는 2020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놀이'가 되었다. 비가 기대한 방향의 인기는 아니었지만,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었는가. '깡' 열풍은 유튜브로 상징되는 네트워크 사회가 낳은, 아주 독특한 형태의 인기일 것이다. 비의 다음 행보가 그 어느 때보다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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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6일 방송된 MBC 에 출연한 가수 비의 모습. ⓒ MBC

이현파 기자(2hyunpa@naver.com)

2020.05.1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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