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박을 떠났는데... 내가 마주친 특별한 풍경들

[여행]by 오마이뉴스

캠핑의 시작부터 오토캠핑, 지금의 차박 문화까지


캠핑의 시작은 25살 사회 초년생, 고등학교 때 단짝이었던 친구의 어려움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옆자리에 앉았던 친구였다. 남들보다 영민하던 그 녀석은 군대 전역 후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상실감을 깊이 느끼고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자살충동도 종종 있다고 했다.


무슨 이유였는지 문득 거친 여행을 함께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나와 함께 떠날 준비를 하라며 통보했다. 우리 둘 사이에 항상 끼어 있던 친구 한 명도 포함하였다.


차를 몰고 순천으로 내려가 발코니 한켠 창고를 뒤져 초등학교 때 부모님과 함께 썼던 무거운 텐트를 찾아냈다. 그럴 듯한 장비는 그것이 전부였다. 침낭 대신 자취방에서 쓰던 침구류를 트렁크에 넣어두었고, 식기 등은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없다.


무작정 진안으로 달렸다. 운일암반일암 계곡 옆에는 많은 사람들이 텐트를 쳐 놓은 상태였다.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는 계곡 가장 가까운 곳에 텐트를 쳤고 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야 시작부터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수포를 깔지 않은 텐트 바닥으로 계곡의 습기가 그대로 투과되었고 면과 솜으로 이루어진 자취방 이불은 탈수기에서 막 나온 상태처럼 변해 있었다. 우리는 마치 물 속에서 잠을 자는 듯한 느낌에 새벽에 눈을 떴고 "이게 뭐야!"라고 동시에 외치며 바보처럼 웃었다.


오래 전이라 사진도 없고 어렴풋한 기억만 있지만 그 여행이 내 캠핑의 시작이었다. 나의 처음이 되어주었던 그 친구는 현재 건실한 직장인이 되어 있다. 그 녀석은 아마도 모를 것이다. 그 여행이 나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시간이었는지.

본 기사의 사진은 필름을 이용하여 촬영하고 직접 스캔하였으며 사이즈조정 등 기본적인 보정만 했음을 밝힙니다. 괄호 안에 간단한 기종과 필름 종류를 기재하였습니다.

만남의 장이 되는 오토캠핑장 그리고 장박

캠핑은 그 장소와 여건에 따라 네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야영장으로 운영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으로 먼저 나눌 수 있고, 그중에서도 차를 텐트 옆으로 가져갈 수 있는 곳과 그럴 수 없는 곳으로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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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안까지 들일 수 있는 오토캠핑장. (MZ-S/Gold200)졸업한 제자들이 그토록 원했던 캠핑 모임 ⓒ 안사을

야영장으로 운영되면서 차를 텐트 옆에 댈 수 있는 곳을 '오토캠핑장'이라 흔히 부른다. 주차장에 따로 차를 대고 짐을 따로 옮겨야 하는 곳은 '오토'라는 글자가 붙지 않는다. 야영장으로 운영되지 않는 곳은 보통 '오지캠핑'이나 '노지캠핑'이라고 말한다.


내가 주로 취하는 형식은 오지캠핑이나 노지캠핑이다. 물론 주의할 점이 많다. 불법을 저지르지 않아야 하고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 그 부분을 잘 숙지하니 자연 속에서 호젓하게 휴식을 취하면서도 보람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오토캠핑장을 가더라도 1~2박만 머무르고 자리를 옮기곤 했다.


그런데 사람들을 초대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적게는 2명, 많게는 8명까지 사람들을 모으다 보니 장비를 설치하고 철거하는 수고가 너무나도 컸다. 방법을 모르니 마음이 굴뚝이라도 도와줄 수가 없어서 손님들의 마음 또한 덩달아 불편했다.


그래서 여러 날 묵을 수 있는 장박지를 알아보게 되었고 짧게는 1달, 길게는 4달 정도 장비를 그대로 설치해 놓고 사람들을 초대했다. 서로 마음도 편하고 이야기도 깊어졌다. 직장의 워크숍을 그곳에서 하기도 했다. 딱딱한 장소에서 하던 것과 달리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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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박지에 초대된 손님들. (휴대폰)작년에 함께 일했던 분들을 초대하여 추억어린 하룻밤을 보냈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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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캠핑장에서나 가능한 요리. (67ii/Portra400)이런 요리는 오토캠핑장이어야 무리 없이 가능하다. ⓒ 안사을

현재도 임실의 한 캠핑장에 야영장비가 설치되어 있고 매주 빠짐없이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다. 함께 땀흘리고 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는 과정 동안 어떤 나들이에서도 찾을 수 없는 기분과 동질감을 느끼곤 한다.

까만 밤과 새파란 아침을 만난다, 오지 캠핑의 묘미

이 단락에서 다룰 내용은 야영장으로 운영되지 않는 곳에서의 캠핑에 관한 것이다. 꼭 일치하지는 않지만 까만 밤을 만나기 위해서는 사업자등록이 되어 있는 정식 캠핑장을 피해야 한다. 작은 불빛도 없는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지캠핑 중에서도 차가 도달할 수 없는 곳으로 향하는 행위를 보통 '백패킹 야영'이라고 한다. 차가 갈 수 있는 곳은 민가가 가까울 수밖에 없고 가로등이 있기 마련이다. 걸어서만 갈 수 있는 곳에는 순수한 어둠이 존재한다. 특히 해발 1,000미터에 가까운 곳까지 올라가면 미세먼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밤하늘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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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자령에서. (LX/AgfaCT100)한 여름에도 14도를 밑도는 선자령. 아침 공기가 푸르다. ⓒ 안사을

물론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다. 첫 번째로는 무거운 짐이고 두 번째로는 전무한 편의시설이다. 텐트와 침낭에 촬영장비까지 담고 가려면 25kg이 넘는 배낭을 짊어지고 산길을 올라야 한다.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거의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시간을 보낸다. 간혹 산 위에서 취사를 하는 무리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명백한 불법이니 유념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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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와 별궤적. (SW612/Ektar100)인제군 산 속에서 2시간 동안 담은 밤하늘 ⓒ 안사을

바다, 특히 섬은 산간지방과는 또 다른 묘미를 준다. 가장 차이가 나는 것은 취사 가능 여부이다. 공원이 아닌 지역, 삼림이 아닌 지역, 하천유역이 아닌 지역에서는 취사가 가능한데 바닷가가 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배들의 불빛 등으로 칠흙같은 어둠은 없지만 대신 일출과 일몰 풍경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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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들어가는 길. (nF-1/RHP3)다리가 완공되기 전 무녀도를 통과해 선유도로 들어가는 모습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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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초. (nF-1/RHP3)걸으며 만난 풍경. 차를 타고 지나가면 이런 풍경을 여유롭게 담을 수 없다. ⓒ 안사을

하지만 여러 조건으로 인해 야영 및 취사가 금지된 곳도 당연히 있으니 잘 확인해야한다. 무인도서나 해상국립공원 등이 해당한다. 그리고 섬 내의 삼림이나 하천 유역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제외하면 생각보다 많은 항구와 해변에서 취사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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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저녁식사. (nF-1/RHP3)취사도구는 보이는 것이 전부. 미리 양념을 한 고기를 팩에 넣어서 끓이기만 했다. ⓒ 안사을

물론 이런 곳에서 오토캠핑에서나 가능한 요리를 요란하게 해 먹으란 얘기는 아니다. 지역 주민과 관광객을 적절히 배려하는 개인의 자세가 필요하다. 아래의 사진들은 군산 선유도에서 간단히 백패킹 야영을 하며 담은 것이다.

지금은 차박 시대

21세기 들어서 우리나라에 두 번의 캠핑 붐이 있었다. 첫 번째는 2000년대 초반이었는데 상당히 고급스러운 장비를 뽐내는 무리들로 인해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가져오기도 했다.


두 번째는 현재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국내 여행지로, 특히 실외에서 지내는 야영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요즘 보이는 특징 중 하나는 '차박문화'이다.


SUV의 넉넉한 공간에 잠자리를 꾸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왔고 최근 캠핑카 개조에 대한 법이 대폭 완화되면서 '지금은 차박시대'라는 말이 무리가 없을 만큼 종전과는 다른 캠핑 모습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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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캠핑장에서의 차박. (휴대폰)쉘터를 생활공간으로, 차를 숙박공간으로 삼은 모습. 생활시에는 차를 좀 더 앞으로 빼놓는다. ⓒ 안사을

차박은 오토캠핑장에서도 가능하고 오지에서도 가능하다. 오토캠핑장에서도 차에서 자는 이유는 텐트를 하나 덜 쳐도 되고, 텐트에 비해 방열이나 방음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차박의 매력은 간단한 채비로 한적한 오지를 향해 훌쩍 떠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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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특별한 와인바. (645N/Pro400H)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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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차박의 묘미. (휴대폰)아무도 없는 곳에서 즐기는 차박 야영 ⓒ 안사을

아래 사진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진안군 용담면 금강 유역에서의 모습이다. 남들과 다른,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을 했고 결론은 역시나 야영이었다. 24일 밤 9시, 도착한 곳에는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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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없는 곳에서. (SW612/Pro400H)겨울밤 오지 캠핑의 묘미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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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릿발 화이트크리스마스. (645N/Pro400H) ⓒ 안사을

하늘에는 별들이 가득했다. 겨울이라 오리온 자리가 매우 선명하게 보였다. 영하 8도의 기온은 와인을 계속해서 시원하게 유지시켜 주었고 치즈를 탱탱하게 해주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모든 것이 얼어붙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눈은 오지 않았지만 화이트크리스마스였다.


안사을 기자(tkdmf41@naver.com)

2020.06.3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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